전설의 해적들: 소설이 아닌 역사적 기록이 있다

많은 사람은 책이나 영화를 통해 허구적인 해적을 만난다. 하지만 해적들은 역사 속에 실제로 존재했다.

그들은 보물을 훔치고, 칼을 휘두르며, 희생자들을 나무판자 위를 걷게 했다. 한때 세계 곳곳의 해군 함대가 해적에 의해 대혼란에 빠지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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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소설 속에서 종횡무진 바다를 누비는 해적들이 상상 속의 존재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역사 속에 실재했던 유명한 해적이 여럿 있다.

1680년과 1730년 사이 세계 무역이 활성화되기 시작하면서 해상무역 또한 덩달아 성장했다. 하지만 당시 해상무역에 종사하던 많은 선원이 실직하게 되면 해적이 됐다. 일종의 선원-해적 전업 문화가 생기면서 해적의 전성기가 도래했다.

이 기간에 몇몇 해적들은 세계에서 가장 무시무시한 무법자가 돼 악명을 떨쳤다.

'검은 수염(Blackbeard)'

'검은 수염'은 해적 이야기에서 한 번쯤 들어봤을 만한 이름이다.

이 악명 높은 해적은 약 2년간 바다를 공포로 다스렸다.

그는 1680년 영국 브리스틀에서 에드워드 티치로 태어나, 미국 근해에서 가장 무서운 해적이 되기에 이르렀다.

그는 400명의 선원을 거느리고 '앤 여왕의 복수(Queen Anne's Revenge)'라 불리는 거대한 노예선을 항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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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해적은 상선과 군함을 공격하고 약탈해 세계 곳곳의 바다에 혼돈을 일으켰다.

'앤 여왕의 복수'는 노예들을 싣고 카리브해로 향하던 1717년 어느 날 검은 수염에 의해 접수당했다. 당시 많은 선원은 병에 걸려 해적과 대적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진다.

검은 수염의 부하들은 이어 더 많은 배를 빼앗았다. 그는 바다를 누비며 약탈을 일삼았지만, 영국 해군은 속수무책이었다. 그가 장악한 지역에서 검은 수염의 함대는 정부 당국보다 거대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그는 1718년 5월 그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타운 항구를 장악하고 봉쇄하는 데 성공했다.

버지니아주 주지사는 검은 수염에 대한 체포 영장을 발부하고 현상금 100파운드를 내걸었다.

결국, 그는 찰스타운을 접수한 같은 해 11월 붙잡혀 목숨을 잃었다.

'키드 선장(Captain Kidd)'

'키드 선장'도 꼭 알아야 할 해적이다.

그는 1645년경 스코틀랜드 그리넉 혹은 던디 지역에서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롭게도 영국 당국은 본래 그를 해적 소탕을 위해 고용했었다. 그런데 해적 키드 선장은 소탕은커녕 스스로 해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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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윌리엄 키드 선장은 본래 해적 소탕을 위해 파견됐으나 도리어 스스로 해적이 됐다.

키드는 1960년대에 '사나포선(민간 소유이지만 교전국의 정부로부터 적선을 공격하고 나포할 권리를 인정받은 배)'을 운영했지만, 결국 스스로 해적질을 일삼은 것에 대한 처벌로 1701년 영국 정부에 의해 사살됐다.

그는 죽음을 피하고자 영국 정부를 매수하고자 했을 정도로 막대한 보물을 축적한 것으로 알려졌다. 많은 이들은 키드가 보물을 숨겨뒀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 누구도 이를 찾지 못했다.

바로 이 '숨겨진 보물'이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유명 저서 '보물섬'의 영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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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어떤 사람들은 이 은괴가 키드 선장의 배 '어드벤처 갤리'호 에서 나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하지만 2015년 5월, 마다가스카르는 흥분에 휩싸였다. 해적 황금기 당시 중요한 통상로이자 인도양 해적의 본거지 역할을 했던 이곳 해저에서 키드 선장의 보물로 추정되는 유물의 일부가 발견됐다.

유물을 발견한 해저 탐험가들은 50kg 은덩이를 해안으로 가져와 마다가스카르 대통령에게 선물로 줬다.

헨리 에이버리 선장(Captain Henry Avery)

헨리 에이버리는 역사상 가장 수익을 낸 습격을 감행했다.

간단히 말해 한 번에 가장 많은 물건을 훔친 '한탕'에 성공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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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헨리 에이버리 선장은 끝까지 붙잡히지 않은 해적으로 유명하다.

에이버리 선장은 사실 무역선의 일등항해사로 선출됐었다. 그러나 배를 납치해 마다가스카르로 항해한 뒤 스스로 선원을 뽑아 해적으로서의 삶을 새로 시작했다.

1695년 9월, 에이버리 선장은 '간즈-이-사와이(Ganj-i-Sawai)'라는 매우 중요한 상선을 나포했다. 상선은 60만 파운드 상당의 귀금속과 보석을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 화물의 가치는 오늘날 5000만 파운드(744억 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된다.

에이버리 선장은 철저히 무장돼 있던 이 상선을 털었을 뿐만 아니라 무사히 달아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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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남아프리카 동쪽 마다가스카르 섬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

정부 당국이 현상금 1000파운드를 내걸고 에이버리를 수배하면서 역사상 최초의 국제 범인수색이 펼쳐졌다.

하지만 에이버리 선장은 붙잡히기에는 너무 똑똑했다. 그의 행방에 대한 여러 가지 소문은 있지만, 아무도 그의 결말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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