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다이스 페이퍼: '슈퍼리치'들의 조세 피난처 자료 유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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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이 1000만 파운드에 달하는 개인 자산을 역외 금융에 투자해온 사실이 드러났다.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등 권력층과 부유층이 역외 조세 피난처에 대규모의 자금을 비밀리에 투자해 왔다는 내용이 담긴 방대한 양의 재무 관련 문건이 새롭게 유출됐다. 미국 상무부 윌버 로스 장관이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러시아 연관 기업의 지분을 소유 중인 사실도 드러났다.

'파라다이스 페이퍼'로 이름 붙여진 이번 유출 문건은 1340만 건의 서류를 포함하고 있다. 대부분 역외 금융 회사 한 곳에서 흘러나온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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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세피난처는 어떻게 운영될까?

영국 BBC의 탐사보도 프로그램 파노라마는 이번 문건을 취재한 언론 기관 100곳 중 하나다. 지난해 공개된 이른바 '파나마 페이퍼'와 마찬가지로 이번 문건도 독일 일간지 쥐트도이체 자이퉁(Süddeutsche Zeitung)이 입수했다. 쥐트도이체 자이퉁은 이어 국제탐사보도 언론인협회(ICIJ)와 공조 취재를 진행했다.

5일 보도는 앞으로 며칠간 이어질 폭로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문건에 등장하는 수백 명의 인물과 기업의 조세 및 재정 관련 문제들이 연이어 공개될 예정이다.

이어지는 보도들은 정치인과 다국적자, 유명인사, 고액순자산보유자 등이 신탁과 재단, 유령회사의 복잡한 구조를 이용해 어떻게 세무 당국으로부터 자신들의 자금을 보호해 왔는지, 또 어떤 식으로 비밀 장막 뒤 거래들을 숨겨 왔는지에 집중했다.

거래의 대부분은 법적으로는 문제될 게 없다.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이름이 등장한 까닭

'파라다이스 페이퍼'에 따르면 약 1000만 파운드(1300만 달러) 상당의 엘리자베스 여왕 개인 자산이 역외 금융에 투자됐다.

해당 자금은 랭캐스터 영지에 의해 케이맨 제도와 버뮤다 등의 펀드로 흘러 들어갔다. 랭캐스터 영지는 여왕에게 수입을 제공하고 5억 파운드 상당의 사유지 관련 투자 관리도 도맡는다.

해당 투자 행위는 물론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 여왕이 세금을 내지 않았을 거라고 추론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왕실이 역외 금융에 투자를 해도 되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남는다.

빈곤층을 착취한 혐의로 기소된 업체 브라이트 하우스(Bright House)를 비롯해 파산으로 175백만 파운드의 세금을 체납하고 6000명의 실업자를 낳은 업체에 대한 소액 투자 건도 발견됐다.

랭캐스터 영지 측은 해당 투자는 펀드에 의한 것으로 관련이 없고, 또 대리인들이 진행한 구체적인 투자 건에 대해 여왕이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없다고 해명했다.

랭캐스터 영지 측은 과거 "여왕의 명성에 악영향을 줄 수 있는 행위는 물론이고 의도적으로 필요한 조치를 하지 않는 일에 대해서도 지속적으로 신경쓰고 있다"고 밝힌 바 있으며 여왕은 재산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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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여왕의 자산은 소액 투자에도 활용됐다.

윌버 로스와 트럼프가 받을 타격은?

윌버 로스 장관은 1990년대 파산 위기에 놓였던 트럼프 대통령을 도운 공로로 트럼프 내각에 들어갔다.

이번 문건엔 로스 장관이 러시아 에너지 회사에 석유와 가스를 수송하며 매년 수백억 달러를 벌어들이는 운송 업체와 손을 잡고 있다는 사실도 담겨 있다. 해당 업체의 주주 가운데는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사위와 제재 대상 인물 2명이 포함돼 있다.

이같은 사실은 트럼프 정부와 러시아 간 연결고리에 대해 또다시 의문을 불러 일으킨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러시아 개입설과 관련해 공모 의혹을 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해당 의혹은 가짜 뉴스"라고 일축했다.

문건은 어디서 유출됐나

자료 대부분은 버뮤다의 역외금융 및 절세 전문 법률 회사 '애플비(Appleby)'에서 유출됐다. 애플비는 고객들에게 0% 또는 낮은 세율로 세금 역외 지역에 업체를 설립 할 수 있도록 돕는 회사다.

쥐트도이체 자이퉁이 입수한 해당 문건들은 카리브해 관할 법인 등기소에서도 나왔다. 자료를 누가 제공했는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공조 취재를 진행한 언론사들은 역외 금융지에서 흘러나오는 자료들을 통해 계속해서 각종 비리가 드러나고 있는만큼, 이번 조사가 공공의 관심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문건 유출과 관련해 애플비 측은 "자사든 고객이든 범법 행위를 했다는 증거는 없기 때문에 괜찮다"면서 "우리는 어떤 불법 행위도 용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역외 금융은 무엇인가

본질적으로는 기업이나 개인이 세금을 아끼기 위해 자국 규정을 벗어나 자산이나 이익을 빼돌릴 수 있도록 하는 장소에 관한 문제다.

이들 관할 지역은 '조세 피난처'로 알려져 있다. 업계에선 역외 금융가(OFC)로도 통한다. 대개 작은 섬들로 안정적이며 은밀하고, 신뢰할 수 있다는 평가를 받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해당 지역들이 범법 행위를 얼마나 단속하느냐에 달려 있다.

영국은 조세 피난처의 '큰 손'이다. 본토 밖 영국령과 왕실령들이 역외 금융지이기도 하지만, 역외 금융 분야에서 일하는 상당수의 변호사와 회계사, 은행가들이 영국의 금융 중심지인 시티오브런던에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은 '슈퍼리치'들의 영역이다. '국경 없는 자본(Capital Without Borders)'과 '1%'의 저자 브룩 해링턴은 역외 금융은 1%도 아닌 0.001%를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50만 달러 정도의 큰 돈도 역외 금융 수수료엔 미치지 못할 거라고 덧붙였다.

조세 피난처, 우리에겐 어떤 영향을 미칠까

큰 돈이 오가는 문제다. 보스턴 컨설팅 그룹은 10조 달러가 역외 금융지에 숨겨져 있을 거라고 했다. 이는 영국과 일본, 프랑스의 국내 총생산을 다 합친 데 맞먹는 액수다. 게다가 이는 가장 보수적으로 추정한 금액이다.

이에 대해 역외 금융 비평가들은 범법 행위로 가는 문을 열어주는 비밀과 불평등의 문제라고도 입을 모은다. 이들은 역외 금융을 차단하기 위한 정부들의 노력이 느리고 비효율적이라고도 지적한다. 해링턴은 부자들이 세금을 피하면 그로 인한 영향은 빈곤층이 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돌아가기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이 있고, 이는 부유층과 기업들이 숨기고 있는 데서 회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 노동당 의원이자 공공회계특별위원회 위원장인 메그 힐리어는 BBC 파노라마 취재진에게 "우리는 역외 금융을 주시해야 한다. 역외 금융이 비밀스러운 일이 아니었다면 이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며 "투명해야 하고, 햇볕이 비추어질 필요가 있는 영역"이라고 전했다.

역외 금융지들의 해명

역외 금융지 측은 자신들이 없었다면 정부가 세금을 물리는 데 아무런 제한이 가해지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자신들이 현금 뭉치를 깔고 앉아 있지 않음으로서 오히려 자금이 전 세계에 순환되도록 돕는 중재 역할을 한다는 입장이다.

버뮤다의 밥 리처드 전 재무장관은 BBC 파노라마와의 인터뷰에서 다른 나라의 세금을 받는 것은 자신의 책임이 아니며, 이는 각 나라가 처리할 문제라고 밝혔다.

리차드 전 장관은 이번 문건유출에서 큰 역할을 한 영국 왕실령 '맨 섬(Isle of Man)'의 하워드 퀘일 수석 장관과 함께 BBC 파노라마와의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은 모두 자신들의 관할지역은 국제 재무 보고 규칙을 철저하게 따르고, 규제가 잘 마련돼 있기 때문에 조세피난처로 여겨질 수조차 없다며 관련성을 부인했다.

한편 애플비 측은 과거 역외 금융가가 "사람들을 '탐관오리(Venal Government)'로부터 보호해 범죄와 부패, 박해의 희생자가 되지 않도록 막는다"고 말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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