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공연예술 통해 '화음' 낼 수 있을까?

  • 김형은
  • BBC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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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북한 '아리랑' 공연

지난 27일 오후 서울 마포구 MBC 상암홀.

어두운 정장 차림의 중년 남성으로 구성된 북한 선발대는 태권도 시범단 공연이 열릴 시설을 점검하고 있었다.

우연찮게 현장에서는 '쇼 음악 중심' 방송 리허설이 진행 중이었고, 걸그룹 '오마이걸'의 흥겨운 무대가 한창이었다.

조선일보에 따르면 북한 선발대는 '어쩔 수 없이' 오마이걸의 노래를 4분 정도 듣게 됐고, 관계자들은 그들이 "허공 또는 바닥을 쳐다보거나 제자리에서 뱅뱅 도는 등 시선을 어디다 둬야 할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틀 후인 29일 밤, 북한은 2월 4일 금강산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공동문화행사를 일방적으로 취소했다. 공식적인 이유는 북한의 평창올림픽 참여와 2월 8일 열릴 것으로 보이는 열병식을 둘러싼 한국의 비판 여론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금강산 합동 공연 외의 행사는 진행하는 것으로 봐서 다른 배경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중 하나로 언급되는 게 북한 정권의 케이팝(K-POP) 공연에 대한 거부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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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아 2005년 공연 모습

MBC 보도에 따르면 보아, 이적 등이 출연 예정이었다. 보아의 소속사인 SM엔터테인먼트와 이적의 소속사인 뮤직팜 관계자 역시 정부로부터 섭외 요청을 받았다고 확인했다.

상대방이 어떤 무대를 올릴지 양측 다 걱정하는 이 아이러니한 상황의 이면을 짚어본다.

문화적 차이

흔히들 예술엔 국경이 없다고들 말하지만, 공연예술에서의 남북 간의 시각차는 뚜렷하다.

큰 그림은 북한 정권은 케이팝에 대한 반감을, 한국 국민은 체제 선전에 대한 우려를 가진 상황이다.

금강산 합동 공연에 대해서 한국 정부 관계자는 "우리 측은 현대음악이나 전통음악, 문학행사를 제안했고 북측도 전통음악을 제안했다"라고 말한 바 있다. '현대음악'에 대한 북한의 우려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북한에서 한국 대중 음악∙영상은 '남조선 날라리 풍' '자본주의 황색 바람'으로 묘사되고 불순출판물로 분류되어 시청, 청취와 언급이 엄격히 금지돼 있고 실정법이라는 법규도 있다.

북한에서 한국 음악∙영상을 시청, 청취하다 발각되면 수용소에 수감되거나 심한 경우 사형이나 무기징역에도 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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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신화 공연

이 때문에 2003년 케이팝 그룹 베이비복스신화의 경쾌한 댄스 공연을 북한 주민은 박수 등의 호응이 전혀 없이 경직된 표정으로 지켜봤다.

하지만 탈북자 중 대부분은 한국 음악이나 영상을 접한 적이 있고, 특히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듣거나 뮤직비디오를 본 적이 있다고 한다. MP3, USB(이동식 저장장치), SD카드 등을 통해서다.

체제 색 뺄 수 있을까?

한국 측도 북한이 어떤 무대를 올리지 우려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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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월 10일 평양에서 열린 핵과학자와 기술자를 찬양하는 공연

북한 예술단의 한국 공연이 확실시되자 언론과 네티즌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을 찬양하는 내용이 포함될까 걱정했고, 중앙일보에 따르면 한국 정부 관계자도 남북 회담에서 이런 우려를 전달했다. 심지어 북측에서 "사전에 공연 내용이 담긴 영상을 보여 주겠다", "USB에 담아서 주겠다"라고 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체제 색이 완전히 빠질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박영정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예술기반정책연구실장에 따르면 "북한에는 외부세계와 다르게 공연예술단체가 국가에서 운영하는 회사처럼 운영이 된다"며 "민간공연단체가 없고 대중이 임의로 하는 것도 없다"며 북한 문화예술의 특수성을 설명했다.

그는 "반드시 김정은 위원장 (얘기가) 아니더라도 알고 보면 체제와 무관한 건 없다"며 "정도는 많이 다르지만 예술 행위 자체가 선전과 관련이 깊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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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방남한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

북한에서 공연예술과 정치색의 뗄 수 없는 관계는 현송월 삼지연관현악단 단장을 보면 알 수 있다.

그가 단장으로 있었던 모란봉악단은 단원 전원이 군 신분이고 '그이 없인 못 살아' '자나 깨나 원수님 생각' 등 대부분 김 위원장 찬양 노래를 선보여왔다.

현송월이 이끈 모란봉악단은 2015년 12월 중국 베이징에 공연하러 갔지만 무대 배경에 미사일 발사 장면이 포함된 김 위원장 찬양가 '단숨에'를 공연에서 빼달라는 요청에 반발해 철수한 바 있다.

'나의 살던 고향은'

지난달 15일 실무접촉 수석대표로 나섰던 이우성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예술정책실장은 "북측에 순수예술 성격의 민요나 가곡, 고전음악 등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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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의 북한 식당에서 공연하는 북한 여성

당시 회담 대표로 나왔던 현 단장 등 북측 대표단은 "공연 내용을 민요와 세계 명곡 위주로 하겠다"고 답했다.

가능한 민요로는 '아리랑'이 있다. 2002년 KBS교향악단은 평양 공연 당시 조선국립교향악단과 연합오케스트라를 구성해 '아리랑' 등을 연주했다. 2003년 평양 모란봉 공원에서 열린 KBS '평양 노래 자랑'에서는 '고향의 봄'을 불렀다. '홍도야 울지 마라', '찔레꽃' 등도 북한에서도 알려진 곡이다.

세계 명곡은 디즈니 만화 영화 사운드트랙도 가능한 레퍼토리다. 북한 전문가들에 따르면 북한 어린이들은 디즈니 책으로 '신데렐라'와 같은 명작동화를 접한다고 한다. 이 때문에 북한 관현악단은 디즈니 만화 영화를 종종 연주하고, 추가로 '오페라의 유령'의 사운드트랙도 연주한다고 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