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한인 유학생 집단폭행: 초기 대응 논란의 이유와 피해자의 현재 심경을 들어봤다

집단폭행 현장 주변 CCTV에는 사건 당시의 장면이 담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미지 캡션 집단폭행 현장 주변 CCTV에는 사건 당시의 장면이 담기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파만파 번지는 한인 유학생 집단폭행 사건. 논란의 핵심은 무엇인지, BBC 코리아가 이 사태의 본질을 파헤쳐봤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런던 중심가인 옥스퍼드 스트리트의 유명 대형 상점 앞에서 한국인 유학생 이 씨가 영국인으로 추정되는 7~8명의 청소년으로부터 집단폭행을 당했다.

당시 이 씨는 폭행 사건이 발생했음에도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지 않은 점에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이에 일부 교민들이 재발 방지를 촉구하는 촛불시위를 벌이겠다고 예고하면서 늑장대응 논란은 갈수록 커지는 모양새다.

사용 기기에서 미디어 재생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집단폭행을 당한 피해자 이 씨가 사건 발생 십여 일만에 BBC 코리아에 심경을 전했다

"한국으로 말하자면 강남 한복판에서 여성이 집단폭행을 당한 거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까지 조용할 수가 있나요."

폭행 사건 직후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참담한 심경을 밝혔던 이 씨. 사건 발생 십여 일이 지난 22일, 이 씨의 심경에는 어떤 변화가 있을까.

폭행 충격으로 심리치료

이 씨는 피해 사건 현장에 경찰이 오지 않았다는 점에 여전히 큰 충격을 받은 듯했다.

"길 한복판에서 집단폭행 사건이 발생하면 경찰이 출동하는 게 당연하잖아요. 특히 다문화 국가인 영국 런던에서 이런 일이 일어났는데, 경찰들이 오지 않았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갑니다."

경찰은 왜 현장에 가지 않았던 것일까. 이 씨에 따르면 경찰은 피해자의 신고 전화를 받고 '기다려달라. 지금 (출동할 경찰차 등을) 찾아보고 있는데 오래 걸릴 것 같다'고 말한 뒤 현장에 나타나지 않았다.

영국 캔터베리 대학에 재학 중인 이 씨는 사건 이후 충격으로 학업을 일시 중단한 채 심리 치료를 받고 있다.

이미지 캡션 이 씨는 사건 발생 당시 영국 경찰과 주영국 한국대사관으로부터 적절한 조치를 받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건 초기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대사관의 초기 대응 미흡을 지적했던 이 씨.

그는 "이제 한국대사관을 향한 섭섭함은 조금 사라졌다"면서도 "뒤늦게 대사관이 잘해주고 있지만, 사실 이건 제가 SNS에 올린 글이 이슈화가 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한국인이라면 응당 대사관으로부터 보호받을 권리가 있고, 대사관은 자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는데 이 모든 게 사건이 이슈화가 되고 난 후에야 이뤄졌다는 얘기다.

인종차별 범죄 여부

피해자 이 씨와 한국대사관 측은 이번 사건은 여러 가지 정황상 인종차별 범죄가 유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이번 집단폭행 사건이 인종차별 범죄인지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한국 외교부 측은 이번 사건이 한영 관계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외교부 관계자는 "국내 언론에 크게 다뤄졌고 영국이 인종차별 국가라는 이미지가 증폭될 수 있기 때문에, 결국 한영관계 차원에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고 토로했다.

최근 영국의 통계자료를 보면 인종차별 범죄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 내무부가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7년에서 2018년 사이 영국 잉글랜드와 웨일스 지역에서 발생한 혐오 범죄는 94,098건이다. 이는 전년 대비 17% 늘어난 것이고, 5년 전보다는 두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영국 내에서 발생한 혐오 범죄 중에선 인종차별 범죄가 76%로 가장 많이 차지했다. 이 밖에도 성별(12%), 종교(9%), 장애(8%) 등으로 인한 범죄가 뒤를 이었다.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런던 옥스퍼드 스트리트는 영국에서 유동인구가 가장 많은 곳 중 하나다

사건 발생 후 대사관은 무엇을 했나

현지 경찰의 수사가 진행되는 가운데, 이 사건 이후 대사관에는 비상이 걸린 모양새다. 초기 대응 미흡이라는 비판이 제기된 상황에서, 인종차별 범죄 유형으로 한국 언론에 알려지면서 여론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대사관 측은 최근 피해자를 찾아 병원 및 심리 치료에 필요한 조치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했다.

지난 16일 박은하 대사는 영국 외교부 차관보에게 이번 한인 유학생 집단폭행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재발 방지 입장을 촉구했고, 20일에는 선남국 공사 겸 총영사가 런던경찰청 담당관을 만나 조속하고 엄중한 수사를 요청했다.

런던경찰청 측은 이번 사건에 대해 유감을 뜻을 전하며 철저히 수사하겠다고 밝혔다.

일각에선 대사관 측의 대처가 사후약방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사태가 터지고 도마 위에 오르고 나서야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피해자 이 씨는 "대사관이 뒤늦게 저를 도와주시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 감사하다"면서도 "그러나 제가 SNS에 글을 올리지 않았더라면, 대사관이 지금처럼 저를 도와줬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대사관은 일단 비판을 달게 받겠다는 입장이다.

대사관 관계자는 "초기 대응이 부족했다는 비판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면서 "피해자 보호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수사 단서는 어디에...CCTV는 무용지물?

이번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용의자들을 특정할 만한 유력한 단서를 아직 찾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폭행 당시 영상이 담긴 CCTV 영상도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

영국은 세계에서 CCTV가 가장 많은 나라 중 하나로 꼽힌다. 영국보안산업위원회는 영국에 약 500만 대의 CCTV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문제는 정작 사건이 일어났을 경우 CCTV를 확인해보면 각도가 맞지 않거나 화질이 좋지 않아 용의자를 특정할 수 없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

일각에서 '영국에 CCTV 숫자는 많지만, 범죄검거용으로는 무용지물'이라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이번 집단폭행 사건 현장인 건물에도 CCTV가 있지만, 현지 경찰은 "확인 결과, 화면 각도가 사건 현장에 맞춰져 있지 않아 폭행 당시 상황이 담기지 않았다"고 말했다.

주영국 한국대사관 담당 영사는 이번 사건을 철저히 수사하도록 요구하는 차원에서 사건 현장에서 직접 수집한 10여 개의 CCTV 위치를 찾아 수사 담당 경찰관에게 보냈다.

Image copyright NEWS1
이미지 캡션 영국 런던 한인 유학생 집단폭행 사건과 관련해 현지 일각에서는 촛불시위 움직임이 일고 있다

촛불시위에 행동요령까지

영국에서 한국인 유학생 폭행 피해 사건이 언론에 크게 조명된 건 약 1년 만이다. 앞서 지난해 10월에도 영국 브라이턴 중심가에서 한 한국인 유학생이 영국인 10대 2명으로부터 샴페인 병으로 얼굴을 가격당한 바 있다.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한국인 폭행 피해 사건이 발생하자 일부 교민들은 촛불 시위를 통해 당국의 철저한 수사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재영 교포인 A씨 등은 오는 25일(현지시간) 집단폭행이 발생한 곳에서 촛불 시위를 열겠다고 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한인 커뮤니티에서는 비슷한 폭행 피해를 겪을 경우를 대비한 행동요령이 나돌 정도다.

일본 간사이 대학 장부승 교수는 "경찰이 현장에 직접 나오지 않았을 경우 무조건 가까운 경찰서로 직접 출두해야 한다"며 "이때 증거를 최대한 많이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고 목격자와 함께 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장 교수는 이어 "(사태 해결을 위해) 해당 사건이 발생한 지역 신문사를 활용하라"며 "보통 대사관 민원응대는 정식 외교관이 아닐 경우가 많기 때문에 국제법적 의견을 줄 만한 사람이 아닐 경우가 많다"고 주장했다.

한인 피해 사건이 반복되고 있음에도 현지 당국의 적절한 대응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국제 소송 제기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용 기기에서 미디어 재생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집단폭행 사건이 일어난 런던 시내 한복판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최원목 교수는 BBC 코리아와의 통화에서 "모든 국가는 자국민과 외국인의 안전을 보장해야 할 국제 관습법적 의무를 갖고 있다"며 "현지 당국이 이 의무를 위반한 게 인정된다면 피해 당사자나 국가는 국제 소송이나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다"고 밝혔다.

단순폭행이 아닌 인종차별로 보이는 집단폭행 사건에 경찰이 현장에 출동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특히 최 교수는 "이런 사건이 단발적이라면 현지 대사관의 역할이 중요할 것"이라며 "반면 한국인에 대한 집단폭행 사건이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음에도 영국 경찰이 이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하지 않고 있다면, 한국 정부가 국제적 방어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태국 젊은이들은 왜 이번 한인 폭행사건에 분노했나

최근 이 사건이 태국 젊은층 사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태국 젊은 여성들은 왜 한국인 유학생 집단 폭행 사건에 분노할까.

BBC 태국어 편집장에게 그 이유를 들어봤다.

사용 기기에서 미디어 재생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태국 젊은층이 한인 유학생 폭행 사건에 분노한 이유

관련 토픽

관련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