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안 어산지는 용감한 운동가인가, 관심종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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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줄리안 어산지는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에서 약 7년을 살았다.

줄리안 어산지 지지자들에게, 그는 진리를 추구하는 용감한 운동가다. 하지만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어산지를 민감한 정보를 대중 앞에 공개해 위험을 자초하는 관종(병적으로 관심을 받고 싶어하는 사람)으로 생각한다.

어산지와 함께 일했던 사람들에 따르면, 그는 컴퓨터 코딩에 비상한 능력을 가졌다. 성격적으로는 열정적이고 일에 몰두하는 타입이라고 한다.

2006년 어산지는 비밀 자료를 공개하는 위키리크스를 설립했다. 위키리크스는 미군 헬기가 이라크에서 민간인 18명을 사살하는 영상을 2010년 4월 공개한 뒤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하지만 그해 어산지는 스웨덴에서 성폭행을 혐의에 휘말린다. 국제체포영장이 발부됐고 영국에서 붙잡혔지만, 이후 보석으로 풀려났다.

스웨덴 당국은 그가 2010년 강연차 스톡홀름에 왔을 때 한 여성을 강간하고 또 다른 여성을 성추행했다는 혐의를 조사하고 있었다.

이에 대해 어산지는 합의에 의한 관계라고 주장했고, 오랜 법적 다툼 끝에 런던에 있는 에콰도로 대사관으로 피신해 정치적 망명을 신청했다.

어산지는 그 곳에서 거의 7년을 보냈다. 그러다 2019년 4월 11일 영국 경찰에게 체포됐다. 레닌 모레노 에콰도르 대통령이 어산지의 망명 인정을 철회한다는 트윗을 한 이후에 벌어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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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체포되고 있는 어산지

어산지는 항상 대사관을 나가면 스웨덴이 그를 미국으로 인도하고, 미국의 기밀 문서 유출에 대해 재판을 받을 것이라며 두려워했다. 그런 그를 영국 경찰이 대사관에서 끌어내, 런던중앙경찰청 유치장에 가두었다.

해킹

어산지는 자신의 배경에 대한 거의 말하지 않았다. 하지만 위키리크스가 나온 뒤로 미디어는 그에 대한 몇 가지 이야기를 공개했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퀸즐랜드주에 있는 타운즈빌에서 1971년에 태어났다. 유랑극단을 운영하는 부모와 함께 이곳저곳을 떠돌며 자랐다. 18살에 아버지가 됐고, 양육권 분쟁에 휘말렸다.

인터넷 발전은 그에게 수학적 재능을 사용할 기회가 됐다. 하지만 훗날 이게 곤경으로 이어졌다.

(사진) "해킹"에 대해 유죄를 인정한 어산지는 초범인 점을 고려돼 징역을 면했다.

1995년 어산지는 수십 차례 해킹을 했다는 혐의로 친구와 함께 기소됐다.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했다.

그는 초범인 점을 감안해 벌금형을 받았다.

이 사건 이후 어산지는 3년간 인터넷의 연구하는 쉴렛 드레이퍼스와 함께 일하며 '언더그라운드'라는 책 출간에 힘을 보탰다. 드레이퍼스는 어산지를 "윤리, 정의 관념, 정부의 역할 등에 매우 관심이 많고 아주 실력도 뛰어난 연구자"라고 했다.

이후 그는 멜버른 대학에서 수학과 물리학을 공부했다. 그곳에서 정교한 퍼즐을 만들어 동료들에게 호평을 받기도 했다.

위키리크스

2006년 그는 생각이 비슷한 사람들과 함께 웹 기반으로 "데드 레터박스(dead-letterbox)"를 만들었다. 무언가 폭로하고 싶은 게 있는 이들을 위한 인터넷 서비스였다.

어산지는 2011년 BBC 인터뷰에서 "자료를 안전하게 보관하기 위해, 자산은 한 곳에 모아두지 않는다. 모든 것을 암호화했으며, 통신과 인적 자원을 국가마다 상이한 사법체계에서 보호받을 수 있게 옮겨 놓았다"고 말했다.

그는 위키리크스를 운영하느라 떠돌이 삶을 살게 됐다. 몇 주간 그를 따라다니며 취재했던 뉴요커의 라피 카차두리안 기자에 따르면, 어산지는 오랜 시간 자거나 먹지 않고도 일에 집중하는 타입이었다고 한다.

"그는 주변의 사람들이 그를 좋아하고 그가 하는 일을 지속하도록 돕고 싶게 만드는 묘한 분위기를 뿜어냈어요. 아마 이게 그의 카리스마인 것 같아요."

주요 법적 분쟁 일지

• 2012년 5월: 영국 대법원, 어산지를 스웨덴으로 인도하라고 판결

• 2012년 6월: 어산지,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

• 2012년 8월: 에콰도르, 어산지가 스웨덴에 인도되면 인권이 침해될 우려가 있다며 망명 지위 부여

• 2015년 8월: 스웨덴 검찰, 성추행 및 불법적인 강요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 만료로 기소 중단. 하지만 강간 혐의는 남아있음.

• 2017년 5월: 스웨덴 검찰청, 어산지의 강간 혐의에 대한 조사 중단 발표

• 2017년 12월: 어산지, 에콰도르 시민권 획득

• 2018년 10월: 런던 주재 에콰도르 대사관, 어산지에게 대사관 내에서 따라야 할 규칙 제시

'인신 공격'

어산지와 위키리크스는 미군 헬기가 이라크에서 민간인에게 발포하는 영상을 공개한 뒤로 유명세를 타게 됐다.

2010년 6월과 10월에는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 전쟁과 관련된 다량의 미군 기밀문서를 공개했다. 500만 여통에 달하는 미국 정보연구소 스트렛포의 기밀 서한도 공개 대상에 포함됐다.

하지만 2010년 많은 미국에서 위키리크스를 후원하던 단체의 후원이 끊겼다. 그러자 생존을 위한 투쟁이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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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어산지는 BBC 인터뷰에서 자료를 보호하기 위해 "모든 것을 암호화한다"고 말했다.

이후 어산지와 관련된 언론 보도는 2010년에 터져나온 성폭행 혐의가 중심이 됐다. 어산지는 이 상황에 대해 정치적인 의도가 있고, 일정 부분 인신 공격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어산지 자유에 대한 생각이 같았던 라파엘 코레아 에콰도로 대통령에게 도움을 청했다.

에콰도르 대사관에 머물면서도 때때로 인터뷰 등으로 목소리를 냈다. "미디어가 틀린 정보와 부정적인 관점으로 나를 보도한다"며 영국 내 미디어 청문회를 제안하기도 했다.

2014년 8월 건강이 나빠져서 치료차 대사관을 나갈 것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하지만 어산지는 이를 부인했다.

'의미있는 승리'

이후 어산지는 대사관을 나가기만 하면 체포되는 불법적인 구금 상태에 있다고 UN에 탄원했다.

2016년 2월 UN은 "강제 구금" 상태에 놓여 있는 어산지가 자유롭게 다닐 수 있어야 하고 "박탈된 자유"에 대해 보상받아야 한다며 그의 손을 들어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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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산지는 이를 "의미있는 승리"라고 말하며, 이 결정이 "구속력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자신의 변호사를 통해 즉시 송환 요청을 중단하라고 스웨덴에 요구했다.

하지만 그 UN의 결정은 영국에서 법적 구속력이 없었다. 영국 외무부는 "아무 것도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2016년 잉그리드 이스그렌 스웨덴 검찰청 수석 검사가 강간 혐의에 대해 심문하러 런던에 있는 에콰도르 대사관을 찾아갔다. 당시 검찰은 성추행 혐의에 대해서는 공소시효를 넘겨 조사를 중단한 상태였다.

스웨덴이 어산지에 대한 수사를 중단했기 때문에, 국제 체포 영장은 효력이 없는 상태다.

하지만 영국 경찰은 어산지가 2012년 6월 영장 불복종으로 인해 징역 1년 또는 벌금형에 해당하는 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 때문에 2019년까지 체포가 가능하다. 경찰은 2012년 6월 29일 웨스트민스터 치안 법원이 발부한 영장에 따라 어산지는 "법정에 출석하기 전에 런던 중앙 경찰청 유치장에 수감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에콰도르의 태세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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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의 강력한 지지자였던 코레아 대통령에 이어 레닌 모레노 대통령이 에콰도르의 대통령으로 취임했다. 그러자 어산지에 대한 에콰도르의 입장이 달라졌다.

모레노 정부는 대사관에서 당부했던 규칙을 따르지 않는 어산지를 조금씩 포기하게 됐다.

모레노 대통령은 영상 메시지를 통해 어산지는 "규칙을 존중해달라"는 에콰도르의 요청을 무시해왔다고 말했다.

모레노 대통령은 "국제 협약과 일상적인 약속 등을 어산지가 거듭해 위반한 터라"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말했다.

2019년 1월 위키리크스가 바티칸의 문서를 공개하는 등, "타국의 내정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겼다"다는 것이다.

모레노 대통령은 이와 함께 "자신은 영국 정부에게 '어산지를 고문이나 사형에 처할 수 있는 국가로 보내지 말아 줄 것'을 요청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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