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명의료결정법: 곧 전면시행… "전문인력 양성 시급"

사용 기기에서 미디어 재생이 지원되지 않습니다
이미경(54) 씨는 "딸이 호스피스 병동에 입원한 뒤 모녀가 전보다 훨씬 안정을 되찾았다"고 털어놨다.

지난 7일 찾은 경기도 일산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완화의료 병동. 번호가 붙어 있는 다른 병실과 달리 간호사실 옆엔 아무런 표시가 없는 방이 하나 있다. 죽음이 가까워진 환자가 중환자실 대신 머무는 임종실이다. 방문 너머에서 느린 곡조의 찬송가가 들려왔다. 지나가던 간호사가 "오늘만 두 명의 환자가 여기서 돌아가셨다"고 말했다.

호스피스는 임종 직전의 환자가 수명 연장을 위한 고통스러운 치료 대신 최대한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하는 의료 시설이다.

통증 완화 치료뿐 아니라 심리적 안정을 위한 음악·미술 치료, 마사지 등 다양한 서비스가 제공된다. 국립암센터는 2015년 7월 이런 호스피스 병상 9개를 개설했다.

센터 관계자는 "입원을 기다리는 대기자가 200명을 넘어섰다"고 설명했다.

이미지 캡션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라 임종기 환자와 보호자는 무의미한 생명연장을 위한 인공호흡기 착용, 심폐소생술, 혈액과 항암제 투여를 거부할 수 있다.

이미경(54) 씨는 10년간 뇌종양 치료를 받아 온 26살 딸을 최근 이곳에 입원시켰다.

이 씨는 "오랜 항암 치료로 몸이 힘들어진 데다 청력까지 망가져 딸이 조금만 시끄러워도 예민해 했다"며 "누가 와서 말을 걸거나 위로하는 것도 싫어했다"고 지난 투병 생활을 떠올렸다.

이어 "마음의 문이 닫혀 있던 딸이 여기에 와서 문을 많이 열게 됐다"며 "이제는 말도 많아져 오히려 내가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이 씨는 얼마 전 담당 의사와 함께 딸의 연명치료 계획서를 썼다.

계획서엔 건강 회복이 더 이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될 경우, 인공호흡기 착용과 심폐소생술 시행 등 단순히 생명 연장을 목적으로 하는 시술을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딸의 죽음을 미리 생각하고 대비하는 건 쉽지 않았다.

이 씨는 "딸을 위한 길이 무엇일지 고민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엄마 입장에선 하루라도 더 아이를 곁에 두고 싶지만, 엄마의 욕심을 조금 내려놓고 아이를 편하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미지 캡션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병동의 자원봉사자들이 환자를 마사지 하고 있다.

과연 실효성은?

지난해 1월 국회를 통과한 '호스피스·완화의료 및 임종과정에 있는 환자의 연명의료 결정에 관한 법률(연명의료결정법)'은 시범 사업을 거쳐 내년 2월 본격 시행된다.

이 법은 환자나 보호자가 연명의료 중단 여부를 직접 결정할 수 있도록 명시했다.

또 그동안 말기암 환자에게만 제공되던 호스피스 서비스를 후천성 면역 결핍증, 만성 폐쇄성 호흡기 질환, 만성 간경화 등 여러 질환을 앓는 환자들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연명의료결정법은 법안 논의 단계에서부터 논란이 적지 않았다. 이 법이 규정하는 연명의료 결정 대상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불구하고 회복되지 않고 증상이 악화돼 사망이 임박한' 환자다.

찬성하는 쪽에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보장하는 법'이라며 법안 통과를 주장했다.

그러나 법안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임종기 환자는 대부분 의식이 또렷하지 않아 자신의 의사를 표시할 수 없다는 게 이유다.

의료진의 판단과 환자·보호자의 입장이 충돌하는 경우도 법 시행 후 예상되는 문제점 중 하나다. 최근 영국에선 희소병을 앓는 한 살배기 아기의 연명치료를 놓고 법적 공방까지 벌어졌다.

미토콘드리아결핍증후군(MDS) 환자인 찰리 가드는 심각한 뇌 손상으로 병원에서 회생 불가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병원의 연명 치료 중단 결정을 찰리의 부모가 반대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빚어졌다.

찰리의 부모는 법원에 "호스피스 시설로 옮겨 아이와 함께 있게 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법원은 이를 기각했다. 찰리는 법원의 결정 이튿날 숨을 거뒀다.

'연명의료 계획서'와 '사전 연명의료의향서'

한국 정부는 '연명의료 계획서'와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가 이같은 갈등을 최대한 줄여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연명의료 계획서는 의사가 환자의 의사를 반영해 연명의료 중단 및 호스피스 치료의 세부 계획을 미리 써 두는 문서다.

사전 연명의료 의향서는 연명의료에 대한 자신의 의사를 담은 서류로, 갑작스러운 사고나 질병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질 경우 의료진과 보호자가 참고할 수 있게 했다.

19세 이상 성인이라면 누구나 의향서를 작성할 수 있고, 연명의료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면 언제든지 내용을 바꿀 수 있다.

본인 서명 외 전문 상담자의 서명을 반드시 받도록 했다.

이미지 캡션 공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는 본인 이외에 상담자의 서명이 반드시 필요하다.

"호스피스에 대한 인식 개선이 먼저"

한국에선 2008년 호스피스 관련 법안이 처음 발의됐다.

이후 여러 의료기관이 본격적으로 호스피스 병동을 열었고, 중환자실 대신 호스피스 병동을 택하는 환자 수도 빠르게 늘었다.

전문가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스피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호스피스 치료의 확산을 방해한다고 주장한다.

국립암센터 호스피스완화의료사업과 장윤정 과장은 "호스피스는 말기 환자의 신체와 심리 등 모든 고통을 치료하는 것"이라며 "치료의 목적이 다를 뿐 치료를 중단하는 게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장윤정 과장
이미지 캡션 국립암센터 장윤정 과장

장 과장은 "암 질환의 경우 더는 치료가 불가능한 순간인 '말기'가 오는데, 이 때 항암치료는 더 이상 의미가 없다"며 "삶의 마무리를 도와주는 게 호스피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수요 늘어나는데 전문인력은 부족

최근 호스피스 서비스에 대한 수요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는 데 비해 전문인력 수는 한참 모자란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가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환자는 물론이고 의료진조차 호스피스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장 과장은 "아직 호스피스라는 영역이 정규 의학교육 프로그램에 포함되지 않았다"면서 "현재 전문의들이 추가적 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의사뿐 아니라 간호사, 사회복지사 등 각 분야의 전문인력을 양성해 체계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사전연명의료의향서실천모임 윤서희 팀장은 연명의료결정법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가장 시급한 문제로 꼽았다.

윤 팀장은 "최근 연명의료와 관련된 문의 전화가 부쩍 늘었다"며 "문의자 중 상당수는 아직 관련법이 생겼다는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고 했다.

관련 토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