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을 신의 선물로 여겼던 미국의 종교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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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사랑의 여름'은 이후 비슷한 유형의 여러 히피 축제들을 낳았다. 사진은 1967년 버킹엄셔에서 열린 히피 스타일의 결혼식 모습

'영원한 사랑의 형제단(The Brotherhood of Eternal Love)'은 1960년대 캘리포니아의 히피 문화에서 파생된 단체였으나 그들의 야망은 거대했다. 이 단체의 근간이 된 서적과 사상에 대해 벤자민 램이 들여다 본다.

2017년은 20세기의 거대한 문화적 사건 중 하나였던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이 개최된 지 50년이 되는 해다. 흔한 계절 행사로 기억되겠지만 실은 시위로 인해 촉발된 사건이었다.

1967년 1월 샌프란시스코의 골든게이트 공원에서 있었던 히피족들의 집회가 그 시발점인데 이는 LSD의 규제에 반대하여 열린 것이었다.

주 정부와 연방 정부는 보통 '애시드(acid)'라고 불리우는 이 환각제가 미국인의 삶을 위협한다고 주장했다. 맞는 말이었다.

베트남 전쟁이 진행 중이던 시기에 LSD는 사용자를 충실한 소비자로 만들어 주지도 못했고 애국심 넘치는 시민으로 만들어 주지도 못했다.

정부에 반발하여 집회를 결성한 주체는 사람을 변화시키는 LSD의 힘을 찬양하는 교회를 만든 '영원한 사랑의 형제단'이라는 무법단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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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사랑의 여름' 50주년 기념 전시가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렸다

형제단은 유토피아의 청사진을 갖고 있었다. 환각제에 대한 위대한 철학자였던 앨더스 헉슬리의 마지막 소설 <섬>에서 이를 찾을 수 있었다.

환각성의 '매직 머쉬룸'에 들어있는 사일로사이빈의 사용을 지지했던 헉슬리는 티모시 리어리와 리처드 앨퍼트가 이끄는 하버드 대학의 연구 프로젝트의 창립 멤버였다.

리어리와 앨퍼트는 1962년 4월 보스턴대학의 마쉬 채플에서 '굿 프라이데이' 실험을 주관했다.

이 실험에서 10명의 대학원생 중 9명이 사일로사이빈으로 인해 종교적 체험을 했다.

<섬>에 영감을 받은 리어리와 앨퍼트는 '시와타네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환각제를 사용한 훈련을 제공하는 센터였다.

멕시코 남서쪽 해변에 위치한 이 센터에서 둘은 <환각 체험: 티벳 사자의 서에 기반한 매뉴얼>이란 책을 저술하기 시작했다.

책은 헉슬리에게 헌정되었으며 그가 1954년에 메스칼린의 환각 효과에 대해 쓴 에세이 <지각의 문>을 인용한다.

<티벳 사자의 서>가 티벳의 승려들로 하여금 죽음과 환생을 준비하도록 했던 것처럼 <환각 체험> 또한 '자아의 죽음'과 재탄생의 경험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가르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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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강력하게 LSD의 사용을 옹호했던 티모시 리어리

섬의 삶

<섬>은 헉슬리가 썼던 디스토피아 소설 <멋진 신세계>의 대척점에 있는 이상향을 그렸다.

소설은 팔라라는 가상의 섬을 배경으로 하는데 캘리포니아 남부의 팔로마 산 인근의 마을의 이름을 딴 것이다. 헉슬리의 친구인 에드윈 허블은 이곳에서 하늘을 관찰했고 형제단의 멤버들은 여기서 LSD를 복용했다.

팔라의 거주자들은 환각성 버섯을 풍부하게 경험하면서 헉슬리의 이상을 반영하고 있는 사회를 건설한다. 평화주의적이고 이지적이며 성적으로 실험적이고, 영적이면서도 교조주의에는 반대하는 그런 사회였다.

<섬>은 현재를 사는 삶에 대한 축전이며 <멋진 신세계>와는 달리 마약이 화해보다는 깨달음과 연민의 근원으로 그려진다.

소설이 출간되기 전, 로스엔젤레스에 있는 헉슬리의 집은 화재로 소실됐다. 그의 말을 빌자면 화재는 그를 '소유물도 과거도 없는 남자'로 만들었다. 그는 후두암 진단을 받았고 죽음과의 화해가 소설의 주된 테마였다.

소설의 섬 주민들은 죽음을 평정심과 함께 받아들였다. 잘 알려졌다시피 헉슬리는 임종 직전 다량의 LSD를 주사해줄 것을 요청했다. 그 과정을 지켜본 헉슬리의 부인은 이를 두고 "가장 고요하고 가장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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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30년대의 앨더스 헉슬리

LSD는 형제단의 경범죄자들에게도 마찬가지로 심대한 효과를 끼쳤다. 형제단 멤버의 3분의 2는 과거에 범죄로 체포된 적이 있었다.

형제단의 창설자인 존 그릭스는 헐리우드의 영화 제작자를 총으로 위협하며 강도질을 할 때 헤로인에 취해 있었다. 그러나 처음으로 LSD를 복용한 이후 그는 폭력행위를 중단하고 사과한 다음 훔친 물건을 되돌려주었다.

이러한 변화는 그리 이상한 게 아니다. 리어리의 하버드 사일로사이빈 프로젝트가 1962년 실시한 실험은 죄수들에게 환각제 치료를 제공하면 재범률이 급격히 감소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처음에 형제단의 목적은 사회에서 도피하여 낙원의 섬에서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었다.

"우리에게 섬은 자유를 상징했습니다." 형제단의 초기 멤버였던 에드워드 파디야는 이렇게 말한다. 많은 멤버들이 하와이에 정착하는 것을 선호했지만 파디야의 친구는 태평양 멀리 떨어진 미크로네시아의 섬들을 정찰하러 갔다.

헉슬리의 추천으로 리어리에게 LSD를 처음으로 소개한 영국의 연구자 마이클 홀링셰드는 형제단에게 집을 제공하는 것에 대해 통가의 국왕과 얘기를 하기까지 했다.

고립된 상태에서 생존할 수 있어야만 형제단이 번성할 수 있다는 합의 하에 형제단은 자급자족의 삶을 시도했다.

오렌지 카운티의 모제스카 캐년에서 형제단은 직접 작물을 재배하고 옷을 만들고 집을 만들었다. 심지어 어떻게 아이 낳는 것을 돕는지도 익혔다.

"사회에서 도피하는 대신 자신들의 사회를 만들었던 거죠." 형제단에 대한 책을 쓴 니콜라스 쇼는 이렇게 말한다. 그러나 임시로 만든 교회에서 발생한 화재로 정착지가 모두 소실되자 이들은 떠나야 했다.

오, 형제여!

종교는 형제단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었다. 멤버들은 스스로를 '제자'라고 불렀으며 LSD에 치유와 깨달음의 효능이 있다고 믿었다.

쇼는 형제단이 LSD를 "영성체, 신으로 통하는 창문, '지각의 문'을 여는 열쇠"로 여겼다고 한다.

크기 비교를 위해 LSD를 동전 위에 올려놓은 모습 Image copyright PAUL J. RICHARDS/AFP/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LSD는 보통 우표 모양의 약 형태로 유통된다

히피들이 많은 샌프란시스코의 하이트-애쉬버리 지역에서 형제단을 대표했던 로버트 애컬리는 "우리는 신의 섭리를 대신하고 있다고 느꼈다"고 말한다.

형제단을 교회로 등록했던 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종교적인 이유로 마약 금지 규정을 피해보려는 것이었다.

리어리 또한 자신의 '영적 발견을 위한 연맹(League of Spiritual Discovery)'에서 같은 전략을 썼다.

LSD 금지 조치에 반대하여 열린 집회는 LSD로 활기를 띠었다. 엄청난 양의 LSD가 소비되어 헬즈엔젤스가 탁아소를 맡아달라는 요청을 받을 정도였다.

3만 명의 군중이 리어리가 그 유명한 슬로건 "흥분하라, 함께하라, 이탈하라(Turn on, tune in, drop out)"를 만든 연설을 들었다.

앨런 긴즈버그의 시와 제퍼슨 에어플레인과 그레이트풀 데드의 음악이 집회에 울려 퍼졌고 이를 모방한 집회들이 뒤따랐다.

1967년 버킹엄셔에서 열린 히피 스타일 결혼식에 참석한 커플 Image copyright Express/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1967년 버킹엄셔에서 열린 히피 스타일 결혼식에 참석한 커플

형제단은 '오렌지 선샤인'이라고 일컬어지는 자체 제조 LSD를 (종종 무료로) 배포하기 시작했다.

아프가니스탄의 카불과 칸다하르에서 직접 대마초를 구입해 카라치, 이스탄불, 프랑크푸르트, 런던을 통해 밀수하여 마련한 재원을 썼다.

악기나 폴크스바겐 캠퍼 밴, 심지어는 안을 비운 서핑 보드에 마약을 숨기는 방법 등을 동원한 글로벌한 마약 밀수 작전이었다.

파도와의 교감은 형제단의 영적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었다. 그들은 종종 이를 '물마루 속의 그리스도'라고 부르곤 했다.

급격한 추락

형제단의 종교적 영감의 근원은 <주역>부터 리어리의 '환각적 기도문'까지 다양했다. 특히 헉슬리의 소설에 나오는 섬 주민들이 갖고 있는 동양적 개념들을 선호했다.

형제단은 라구나 해변에 '신비적 기예의 세계'라는 이름의 환각제 상점을 열었다. <도덕경>에 나오는 것처럼 상점은 모든 모퉁이가 둥글었다.

리어리가 1969년 로널드 레이건에 대항하여 캘리포니아 주지사 선거 출마를 선언했던 것도 바로 이 상점 앞에서였다. 존 레논은 리어리의 선거 운동을 위해 '컴 투게더'라는 노래를 작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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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69년 3월 1일 부인 오노 요코와 함께 캐나다의 호텔에서 '평화 시위'를 하며 노래를 부르는 존 레논

프라이버시를 추구하는 몇몇 멤버들은 내륙으로 들어가 아이딜와일드 근방의 목장에 자리를 잡았다.

리어리는 이곳에서 커플들만 모인 공동체를 만들었는데 자신과 그릭스가 '신의 사도'이며 '새로운 종족'을 이끌기 위해 태어났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곧 그릭스는 25세의 나이로 사일로사이빈 크리스탈 과용으로 사망했다.

형제단은 10kg의 LSD를 만들기 위해 마약 밀수 사업을 더 확장하는 것으로 응답했다.

형제단의 창립 멤버였던 마이클 랜덜에 따르면 대량생산으로 LSD의 가격을 낮추는 것이 계획이었다. "많은 양의 오렌지 선샤인을 배포하여 거의 무료나 다름없어지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우리는 우리가 하는 일에 영적으로 깊이 헌신했다."

경찰 당국이 '히피 마피아'라고 불렀던 형제단의 멤버들은 정탐을 피하기 위해 다양한 위장을 하고 다녔지만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상당한 영향력을 구가했다.

1970년 캘리포니아의 감옥에서 리어리의 탈옥을 도운 후, 형제단은 2만5천달러를 블랙팬서에게 주었고 블랙팬서는 급진 좌익 단체인 웨더 언더그라운드에게 이 돈을 전달하여 리어리를 알제리를 거쳐 아프가니스탄에 은신시켰다.

1970년 크리스마스에 라구나 해변에서 열린 예수 그리스도의 생일을 기념하는 시끌벅적한 파티에서 형제단은 2만5천 정의 LSD를 비행기로 참가자들에게 투하했다. 집단적 영적 혁명을 기도한 것이다.

형제단은 유명세는 매우 기이한 영화인 <레인보우 브리지(1972)>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 영화는 지미 헨드릭스 최후의 미국 공연 영상을 담고 있는데 하와이의 화산 꼭대기에서 형제단을 위해 독점적으로 연주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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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70년 8월 한 페스티벌에서 연주 중인 기타리스트 지미 헨드릭스의 모습

영화는 형제단의 활동을 화려하게 묘사한다. '마우이 우위'라고 불리는 캐너비스의 한 종류를 만드는 모습은 물론이고 서핑 보드를 마약 밀수에 활용하는 방식까지 공개하여 몇몇 멤버들은 경악했다.

영화는 뚜렷한 히피 스타일을 보여주고 있지만 좋은 평가를 받진 못했다. 한 평론가는 영화를 두고 이렇게 평했다. "LSD에 대한, 진정성은 결여된 사이비 신비주의적 횡설수설로 점철된 우스꽝스러운 잡동사니… <레인보우 브리지>의 가장 좋은 점은 71분 후에 영화가 끝난다는 점이다."

모두가 형제단의 활동을 해방운동으로 보진 않았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1968년의 마지막 의회 연설에서 "젊은이에게 노예제를 판매하는 것을 막아야 할 때입니다"라며 마약 배급을 비난했다.

LSD를 알약 형태로 만든 오슬리 스탠리는 형제단을 두고 "통제불능"이라고 묘사했다. 인도에서 구루를 만난 후 '람 다스(Ram Dass; 신의 종)'로 개명한 리처드 앨퍼트는 형제단의 야망을 우려했다. "그들은 반항적이었고 정부에 도전하는 데 환각제를 사용하고자 했다. 호랑이의 꼬리를 잡고 있던 격이었다."

반면 리어리는 자신이 현대의 구세주라고 믿고 있었다. 그는 스스로를 '20세기 최고의 현자'라고 일컬었다.

리어리는 형제단 내에서 분열을 초래하는 인물이 됐는데 부분적으로는 그가 형제단의 섬에서 서핑하며 사는 유토피아의 이상향에 공감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궁극적으로 형제단을 붕괴시킨 것은 닉슨 대통령의 마약과의 전쟁이었다. '영적이지 않은' 환각제 코카인의 인기가 는 것도 한 가지 원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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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지난 4월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사랑의 여름' 50주년 기념 전시

'사랑의 여름'이 개최된 지 50년이 지난 오늘날, 처음 환각물질에 대해 관심을 보였던 의학 연구자들이 다시 환각물질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소설 <섬>에서 한 등장인물은 환각제를 복용하고 '좋은' 죽음을 맞이한다. 마치 헉슬리 본인이 그랬던 것처럼.

뉴욕대와 존스홉킨스대의 연구 프로젝트는 암 환자의 고통을 경감시키는 치료에 사일로사이빈의 효능을 연구하고 있다. 반세기동안 잠들어 있던 헉슬리의 비전이 마침내 그 결실을 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