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능력시험 풍경: 수험생들을 위한 한 나라의 엄청난 배려

수능 시험을 치르는 수험생들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대학 수학능력시험일에는 나라 전체가 수험생들을 위해 느리게, 그리고 조용하게 움직인다.

한국에선 매년 대학 수학능력시험 날이 되면 기이한 광경이 펼쳐진다. 출근 시간이 늦춰지고, 증권시장이 늦게 열릴 뿐 아니라 비행기 이착륙도 금지되며 말 그대로 '올 스톱(All Stop)' 상태에 접어든다.

올해 수능 시험은 당초 지난 16일 치러질 예정이었지만, 15일 경상북도 포항에서 규모 5.4 지진이 발생해 일주일 연기됐다.

수능 시험 연기는 학생 안전과 시험 시행의 형평성을 고려한 한국 교육부의 결정이었다.

지진과 같은 큰 변수가 없어도 수험생의 안전 및 시험의 형평성, 그리고 차질 없는 진행을 보장하기 위한 한국 정부의 노력은 막대하다. 교육부뿐 아니라 국토교통부, 법무부, 행정안전부까지 거의 모든 부처가 총동원된다. 심지어 일반 기업과 한국증권거래소, 전국은행연합회까지 동참한다.

한국 정부가 차질 없는 수능 실시를 위해 총력을 기울이는 것은 수능이 흔히 한국 사회에서 '인생을 결정짓는 중대사'로 여겨지기 때문만은 아니다. 23일 약 59만3000명이 전국 1180개 시험장에서 동시에 수능 시험을 치른다. 대규모 시험인 만큼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

한국에선 24년간 이어져 온 수능 시험일 풍경이 익숙할 수 있지만, 온 나라가 하루 동안 수험생을 위해 전념하는 것은 사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기 어려운 모습이다.

BBC 코리아가 수능 시험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특별한 일들을 모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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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인생을 결정 짓는 중대사'로 여겨지는 수능 시험엔 매년 수십만 명의 수험생이 참여한다.

비행기 이착륙 금지… "듣기평가 차질 없게"

이날 한국 전 지역에 비상 및 긴급 항공기를 제외한 모든 항공기 비행이 전면 통제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시험 내내 비행기가 못 뜨는 것은 아니다. 항공기 운항 통제는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 소음을 막으려는 조치다. 소음으로 인해 수험생이 미리 녹음된 질문을 잘못 들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국토교통부는 올해에도 소음 통제를 위해 수능 예정일이었던 지난 16일 오후 1시 5분부터 1시 40분까지 35분간 항공기 이착륙을 금지했었다. 비행 중인 항공기는 관제기관의 통제를 받으며 지상으로부터 3km 이상 상공에서 대기해야 했다.

국토교통부의 이같은 지침은 미국 연방항공국(FAA)을 통해 'NOTAM(NOTice to Airman·조종사 공지사항)'으로 전 세계에 공유된다.

이날도 이 지침에 따라 본래 운항할 계획이었던 국내선 62편과 국제선 36편의 운항 시간이 조정될 예정이었다.

수능이 일주일 미뤄지면서 항공기 이착륙 통제도 취소됐지만, 미뤄진 23일에도 같은 기준의 비행 통제가 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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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수능 영어 듣기평가 시간에는 비상·긴급 항공기를 제외한 모든 비행이 통제된다.

출제위원들은 '단체 감금 생활'

수능 시험의 출제·검토위원들과 행정 인력 수백 명은 수능 시험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한 숙박 시설에서 합숙 생활을 한다.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시험정보 유출을 막으려는 조치다.

일단 해당 숙박 시설에 들어가면, 외부와의 접촉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직계가족의 사망 같은 긴급한 상황을 제외하면 외출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이례적으로 외출이 허용된다고 해도, 한정된 시간 안에 용무를 마쳐야 하며 경찰과 같은 보안요원이 동행한다.

올해 700명이 넘는 수능 시험 관련 인력의 '감금 생활'은 지난달 13일부터 시작됐다. 당초 지난 16일 퇴소 예정이었지만, 수능이 미뤄지면서 이들의 감금 시간도 길어졌다. 이들은 수능 시험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으로부터 합숙 기간 연장 사실을 통보받은 이래 아직까지도 외부와 접촉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수험생 이송 특별작전'…경찰·소방차택시까지

지각이나 수험표 분실 등, 시험 당일 수험생들이 처할 수 있는 돌발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수만 명의 경찰과 소방 인력이 대거 투입된다. 일단 시험이 시작되면 문제지가 공개되는 만큼 재시험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지난 수년간 교통경찰은 시험장을 착각한 수험생들을 태워주는 등 편의를 제공해 왔다. 교문이 닫히기 직전 경찰차에서 내려 수험장으로 달려 들어가는 수험생들의 모습은 매년 화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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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경찰차도 이날 하루는 '수험생 전용 택시'가 된다.

올해 경찰청은 경력 1만8018명을 전국 1180곳 시험장뿐 아니라 수험생과 문제지의 이동 경로, 출제본부, 채점본부 등에 배치한다고 밝혔다. 또 비상연락체계를 구축하고 수험장 인근 경찰서와 112 타격대 차량 및 형사기동차량까지 출동 태세를 유지하도록 했다.

특히 지진이 발생한 포항 지역에선 시험 도중 여진이 발생할 경우에 대비해 시험장 안에 경찰관 2명을 추가 배치한다.

소방당국도 119구급차와 순찰차, 행정차, 오토바이 구급차 등 차량 수백 대를 수험생 긴급 수송에 동원한다.

대중교통편도 대폭 늘어난다. 서울시는 버스와 지하철 배차 간격을 좁히기로 했다. 택시도 추가 운행하고, 수험장 인근 지하철역과 버스 정류장에 민·관용 차량 및 오토바이 수백 대가 수험생들을 위해 대기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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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수험생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치열한 금융시장도 한 박자 심호흡

1분 1초 차이로 수억 달러가 오가는 금융시장도 수능 시험일 하루만은 수험생들을 배려한다.

한국거래소는 시가총액이 1626조원에 달하는 코스피가 거래되는 증권시장과 파생상품시장을 평소보다 1시간 늦은 오전 10시에 개장한다. 수험생들이 시험장으로 가는 동선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다.

은행연합회도 23일 아침 "수험생과 감독관, 학부모 등의 이동으로 인해 교통 수요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오전 9시에서 오후 4시까지인 은행 영업시간을 오전 10시에서 오후 5시로 바꿨다.

관공서뿐 아니라 일부 민간 기업들도 출근 시간을 한 시간 늦추기로 했다.

교육부는 앞서 수능 시험일 출근 시간을 미뤄달라고 인사혁신처와 산업통상자원부, 지자체 등에 요청했다. 특히 포항에는 출근 시간을 오전 11시 이후로 조정해달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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