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운동: 한국에선 왜 이제야 본격화 됐나?

#MeToo(미투) 해시태그 Image copyright Alex Wong/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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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자분들께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것을 얘기해 주고 싶다. 그것을 깨닫는 데 8년이 걸렸다."

서지현 창원지검 통영지청 검사가 지난달 29일 JTBC에 나와 전한 "꼭 하고 싶은 말"이다.

검찰 간부에게 성추행을 당하고, 인사 불이익까지 받았다는 서 검사의 폭로는 한국판 '미투(#MeToo·나도 당했다) 운동'에 불을 지폈다.

"결코 당신의 잘못이 아니다"라는 서 검사의 말은 지난해 10월부터 전 세계를 휩쓸었던 미투 운동이 왜 이제서야 한국에 상륙했는지를 방증하는 한마디였다. '왜 그런 옷을 입었느냐?' '왜 밤늦게 그 자리에 있었느냐?'와 같이 피해자를 추궁해 탓을 돌리는 이른바 '꽃뱀 논리'는 피해자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서 검사도 "잘나가는 남자 검사의 발목을 잡는 꽃뱀"이라는 비난에 시달렸다. 그는 "내가 무엇을 잘못했기 때문에 이런 일을 당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자괴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2차· 3차 피해 만연…근거 없는 비난과 쏟아지는 의혹

서 검사의 공개 폭로로 퍼진 것은 미투 운동뿐이 아니었다. 피해 사실을 공개한 피해자들이 다른 의도가 있다는 '꽃뱀 논리' 비난도 쇄도했다.

서 검사에게도 격려와 비난이 동시에 쏟아졌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도 서 검사뿐 아니라 미투 운동 자체를 비난하는 게시물이 잇따르고 있다.

'미투'를 외치며 피해를 공개한 이들의 상당수가 근거 없이 품성이나 능력, 외모를 폄하 당한다. 이러한 '2차 피해'가 피해자들을 침묵하게 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피해자들이 즉각적으로 신고하지 않고 '내가 뭘 잘못했지'라며 자책하게 만드는 것이다.

성폭력상담소 및 피해자 보호시설을 운영하는 단체인 한국여성민우회 관계자는 "지금은 피해 사실을 말함으로써 더 큰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서울여성노동자회가 직장 내 성희롱 상담자 23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가운데 57%가 피해자임에도 불구하고 폭로 이후 불이익 조치를 받았다고 응답했다.

이들이 당한 불이익은 파면이나 해임 등 신분상의 불이익(53.4%)뿐 아니다. 53.4%의 응답자가 집단 따돌림과 폭행, 폭언 등으로 정신적 손상을 입었다.

민우회 관계자는 또 "예전에 '빨갱이'와 같은 낙인으로 인해 정치적 발언이 억제됐듯이 무고죄로 낙인을 찍어버리면 발언 자체가 어려워질 수 있다"며 폭로를 성폭력 고발 외 다른 목적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다는 일부의 주장에 대한 우려를 표했다.

사회적 문제만은 아니다. 피해자 입 막는 현행법들

성범죄 피해자들을 침묵시킨 건 비단 이 같은 사회적 분위기뿐이 아니다.

상당수의 성범죄 피해 고발자가 명예훼손과 무고 등의 혐의로 가해자가 제기하는 맞고소에 시달린다. 긴 재판 과정을 감내해야 하는 건 물론이고, 수사 과정에서 자신의 무죄를 입증하기 위해 과거 성 경험 등 사생활을 노출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이 과정에서 많은 이들이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한국에서 성범죄 피해 고발자들을 보호하는 법적·사회적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이유다.

미국의 경우 성범죄 피해자의 과거 이성 관계에 대한 내용이 증거로 제시하지 못하도록 하는 강간피해자보호법(Rape Shield Law)이 있다. 이는 성폭행 재판에서 성 경험 여부를 근거로 피해자가 성관계에 동의했을 것이라고 가정을 가능케 하는 관행을 중단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다. 미국뿐 아니라 캐나다와 호주 등에도 강간피해자보호법이 존재한다.

또 한국에선 현행법상 성범죄 폭로 내용이 사실일지라도 명예훼손죄로 고소당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도 미투 운동의 발목을 잡아 왔다. 자신의 성폭력 사실을 알리는 것만으로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형법 제307조는 "공연히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라 규정하고 있다. 폭로 내용이 사실일 때와 허위사실일 때 형량의 차이는 있지만, 사실을 말해도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선 UN 인권이사회에서도 명예훼손죄를 폐지하고 민사적으로 해결하라고 요구한 바 있다.

영국과 호주, 뉴질랜드와 미국 등 영미권에선 명예훼손을 민사로 다룰 수는 있지만, 국가가 개입해서 형사 처벌하지는 않는다. 독일의 경우 허위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만을 벌한다.

앞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폐지하자는 법안이 제출됐지만, 국회에 계류 중이다.

이름 없는 한국판 '미투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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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맨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애슐리 주드, 테일러 스위프트, 수전 파울러, 아다마 이우, 이자벨 파스쿨

이러한 법적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한국판 미투 운동은 앞서 다른 나라들에서 벌어진 운동 양상과 조금 다르게 진행됐다.

많은 피해자가 침묵을 깨고 피해 사실을 폭로하고 있지만, 한국에선 실명 고발을 찾기란 쉽지 않다. 무고와 명예훼손 등 맞고소를 당할 가능성이 있는 데다 신상이 노출될 우려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미투 운동을 촉발한 할리우드의 거물 영화 제작자 하비 와인스타인의 성 추문 논란은 피해 여성들이 잇따라 그의 실명을 거론하며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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