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가톨릭 교회를 속인 레즈비언 선구자들

마르셀라 그라시아 이비아스와 엘리사 산체스 로리가의 결혼식 사진 Image copyright José Sellier
이미지 캡션 마르셀라 그라시아 이비아스와 엘리사 산체스 로리가의 결혼식 사진

결혼 당일 말쑥한 얼굴의 신랑 '마리오'에게는 평범하지 않은 것이 있었다.

스페인 북서부 아 코루냐에 위치한 산 호르헤 성당의 신부는 특별히 다른 점을 눈치채지 못했고, 결혼식에 참석한 몇 명의 친인척들도 별말이 없었다.

하지만 마리오의 본명은 엘리사 산체스. 이 결혼식의 신랑 '마리오'와 신부 마르셀라는 모두 여성이었다.

때는 1901년이었고 엘리사(마리오)와 마르셀라의 결혼은 스페인 가톨릭교회 역사상 유일한 동성결혼으로 남아있다.

이 부부는 20세기 초 보수적인 스페인 문화에 맞서 달콤한 승리를 맛보았지만, 이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평생 두 대륙을 오가며 박해를 피해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엘리사와 마르셀라의 이야기는 영국 개봉을 앞둔 에밀리 모티머와 빌 나이 주연의 영화 '더 북샵(The Bookshop)'으로 제작됐다.

감독과 각본을 맡은 이자벨 코이젯트는 "이 두 여성 중 한 명이 남자인 척 연기하는 데 필요했던 용기는 믿을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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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스페인 출신 작가이자 영화감독인 이사벨라는 신기원을 이룬 한 연인에 관한 영화를 제작 중이다

그는 "이 이야기는 해답보다 더 많은 질문을 던져주는 상당히 흥미로운 이야기"라며 "우리는 이 연인이 결국 어떻게 됐는지, 어떻게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는지에 대해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치밀한 계획

엘리사와 마르셀라는 아 코루냐에서 교사가 되기 위해 공부하던 중 처음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들의 관계에 대한 가족들의 우려 때문에 마르셀라의 엄마는 마르셀라를 잠시 마드리드로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연인에 관한 책을 쓴 역사학자 나르시소 데 가브리엘에 따르면 결국 둘은 갈리시아 농촌지역의 학교로 배정됐다. 둘은 엘리사가 매일 방과 후 마르셀라 집에 걸어갈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집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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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이들은 스페인의 항구도시 아 코루냐에서 만났다

이 기간에 둘은 결혼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먼저 사람들이 자신들이 싸웠다고 생각하게 했다. 나르시소에 따르면 마르셀라는 밝혀지지 않은 남자의 아이를 뱄고, 엘리사의 사촌과 결혼할 것이라고 알렸다.

여기서 엘리사가 변장한 마리오가 등장한다. 마리오는 런던에서 무신론자 가족 밑에서 자랐으며, 아 코루냐에 혈연관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마리오의 모습으로 짧은 머리에 예복을 차려입은 엘리사는 정식으로 세례를 받고 같은 날 마르셀라와 혼인했다.

나르시소는 '마리오와 마르셀라'의 결혼은 아 코루냐 시민 명부에 "합법적인 결혼으로 남아있다"고 2011년 스페인 신문인 엘 문도에 말했다.

망명

이 행복한 커플 결혼식의 실상은 지역신문인 라 보스 데 갈리시아 제1면에 실리게 됐다.

기사는 "신랑 없는 결혼식"이라는 제목 아래 진실을 폭로했다.

이에 엘리사와 마르셀라는 더 갈리시아에서 살아갈 수 없었고, 결국 포르투갈의 포르투로 도망친 뒤 마르셀라는 그곳에서 딸을 출산했다.

이들은 재판을 위한 본국 소환 명령을 받고 잠시 수용된 적도 있었지만, 결국 선박을 타고 대서양을 건너 1902년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 정착했다.

이미지 캡션 체포 후 마르셀라와 엘리사

엘리사는 부유한 노인 데인과 결혼하기로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데인은 엘리사의 결혼 목적이 사기였다고 비난하며 결혼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

나르시소는 멕시코 신문이 1909년 엘리사가 베라크루즈에서 자살했다고 보도한 것을 제외하고는 그 이후 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레즈비언

게이와 레즈비언 부부의 결혼이 스페인에서 합법적으로 인정된 지 10년 이상 됐다. 하지만 LGBT(레즈비언·게이·바이섹슈얼·트렌스젠더) 운동가들은 여전히 엘리사와 마르셀라의 고난이 현시대에 주는 의미가 있다고 말한다.

사회학자, 심리학자이자 빌바오에 있는 LGBT 협회 알다르테(Aldarte)의 이마클라다 무히카 플로레스 이사는 영화 '더 북샵' 제작 계획을 환영하며, 레즈비언 연인 관계를 가시화하는 드문 기회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만약 이 이야기가 두 게이에 대한 것이었다면 이보다 더 알려졌을 것"이라며 "스페인에는 정치인과 영화배우, 예술가 같은 레즈비언의 롤모델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무히카 플로레스는 이어 "프랑코 군부 정권의 억압 당시에도 고통을 받은 건 남성인 게이들이었다"라며 "여성인 레즈비언은 보이지 않았다. 레즈비언이 투쟁을 시작한1980년대에서야 스페인에 레즈비언도 존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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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스페인에서 2005년 최초의 합법적 결혼을 한 레즈비언 부부, 베로니카와 티아나

무히카 플로레스는 엘리사와 마르셀라가 경험한 "인간 대우를 받지 못하는 고통"을 막기 위해서 스페인 동성애자들이 누리고 있는 법적 평등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그러나 법이 자동으로 사회를 바꾸는 것은 아니다"라며 "여전히 자신의 성적 취향을 비밀로 하거나 결혼을 했지만, 수치심 때문에 또는 해고당할까 걱정해 법정 휴가를 내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사벨라 감독은 영화 제작 의도가 정치적인 것은 아니라고 말하지만, 일반적인 주제는 아니라는 점에는 동의했다.

또한 "물론 여성 간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거의 없는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이 영화가 모든 레즈비언의 사랑 이야기를 대표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밝혔다.

"저에게 여성의 이야기를 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제작자들은 계속해서 이유를 묻는다. 그들은 남자 감독에게 왜 덩케르크에 대해 영화를 만드는지 묻지 않는데 나에게는 '왜 1901년 갈리시아에서 결혼한 여자들에 대한 영화를 만들려고 하나요'라고 질문한다."

"이봐요. 이것도 영웅 이야기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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