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일에서 뛴 ‘조선 국적’ 축구선수 안영학, '하나의 코리아로 월드컵 나가는 날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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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영학: 남.북.일에서 뛴 ‘조선 국적’ 축구선수, '하나의 코리아로 월드컵 나가는 날 오길'

"이제까지 우리가 일본에서 살며 계속 참고, 지켜오고, 믿고 원하던 시대가 이제 다가오고 있다"

전 북한 축구국가대표이자 한국 K리그와 일본 J리그 출신인 안영학에게 이번 6월은 특별하다. 월드컵이 열려서만은 아니다. 한반도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에 열렸던 남북정상회담도 생중계로 지켜봤다고 했다. 축구선수인 안영학이 한반도 평화 무드에 기대감을 표시하는 이유는 그의 국적이 '조선'인 것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도 북한도 아닌 '조선'

'조선적'은 한국도, 북한도 아닌 한반도가 갈라지기 전 조선(朝鮮)의 국적을 의미한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일본 체류 60만 명 조선인들에게 부여됐던 임시 국적이다. 법으로는 '무국적자'로 여겨지지만 현재 일본에는 이 국적을 유지하는 3만 명의 사람이 있다. 일본에서는 '자이니치(在日)'로 불린다.

19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된 이후로 조선 국적자에게는 한국으로 국적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그러나 한국을 선택하면 분단된 조국을 인정한다고 생각하거나 남과 북, 둘 다 원치 않아 조선 국적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정치적으로 북한에 가까워 한국 국적을 취득하지 않은 조총련 계열도 조선적의 일부다. 법적 국적이 없기 때문에 각종 권리도 누리기 어렵고 불이익도 많다. 할아버지가 '전남 광양' 출신인 안영학은 "국적을 바꾸게 되면 나라가 두 개인 것을 인정하게 되기에 선택하지 않았다"고 했다.

'경계인'이라는 어려움 속에도 안영학은 세 나라에서 활약했다. 나라간 경계는 뚜렷했지만 둥근 축구공은 그 경계를 넘었다. 2002년 일본 프로축구 J리그 알비렉스 니가타에서 프로선수 생활을 시작했던 그는 북한국가대표팀에 합류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된다. 북한은 조선적을 해외에 나가있는 교민으로 여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 대표팀이 되려면 한국 국적을 취득해야 한다.

K리그에서 뛴 첫 북한국가대표 선수

2006년 그에게 새로운 기회가 찾아왔다. 안영학의 활약을 눈여겨보던 K리그 부산 아이파크에서 안영학에게 러브 콜을 보낸 것. 2002년한일월드컵을 보며 감동했던 안영학은 언젠가 남쪽의 조국에서도 뛰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바로 한국 행을 결심했다. 조선적 북한 국가대표가 한국 프로축구 선수로 뛴 일은 유례가 없었다. '아직 남북은 전쟁 중'이라며 만류하며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입단 첫 날, 주장 이장관 선수가 건넨 "영학아 참 잘 왔다"다는 말에 걱정은 사라졌다. 그는 한국에 진출하자마자 연속 2년 K리그 올스타로 선정됐다. 이후 수원삼성에서도 활약하며 총 4년을 한국에서 보냈다.

Image copyright 부산아이파크
이미지 캡션 J리그에 이어 K리그에서도 활약했던 안영학 선수

꿈은 이루어졌다

안영학의 축구인생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순간은 지난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무대. 그가 속했던 북한국가대표팀은 44년 만에 자력으로 월드컵 본선 행 티켓을 따냈다. 2009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열린 월드컵 최종 예선 경기에서 본선 진출이 확정되던 순간, 안영학은 재일교포 출신인 정대세 선수와 눈물을 쏟으며 감격했다. 당시 북한대표팀 김광호 코치는 "안영학은 우리가 44년 만에 월드컵에 출장하게 한 숨은 공로자"라고 평하기도 했다. 그 날 밤, 안영학은선수들과 함께 사인을 남기면서 이런 말을 함께 적었다.

'꿈은 이루어졌다'

Image copyright 손순호
이미지 캡션 44년만에 북한의 월드컵 본선 진출이 확정되자 눈물을 쏟은 정대세 선수(좌)와 안영학 선수(우)

남아공 월드컵 본선 진출 꿈을 이루고, 이후 그는 J리그로 돌아왔지만 당시 남북 관계는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이 때문에 '조선적' 사람들은 한국 땅을 밟기가 어렵게 됐다. 한국 정부가 조선국적 보유자가 한국 방문 시 필요한 여행증명서 발급을 거절했기 때문이다. K리그 동료 결혼식에 초청받고도 가지 못했던 시간도 있었다. 그는 "정권에 따라 입국 여부가 달라진다"며 "4년 동안 뛴 나라인데 한동안 찾아갈 수 없어 안타까웠다"고 했다. 그는 지난 해 비로소 다시 한국 땅을 밟을 수 있었다.

하나의 여권을 쓰는 '원 코리아'

지난 해 초 은퇴한 안영학은 새로운 일을 시작했다. '쥬니스타'라는 유소년 축구교실을 꾸려 도쿄와 요코하마에서 꿈나무들을 기르고 있는 것. 축구 수업은 조총련계 학교 운동장을 빌려 쓴다. 축구 수업에는 조선적 아이들뿐 아니라 한국과 일본 국적의 아이들도 있다. 그의 축구교실 대표 명함에는 그가 늘 읊조리던 '꿈은 이루어진다'는 문구가 들어가 있다.

이미지 캡션 안영학 축구교실 ‘쥬니스타’

무국적으로 여겨지는 현실 속에서도 축구 선수의 꿈도 이루고, 월드컵 무대에도 서봤던 그가 또 다시 꾸는 꿈은 무엇일까. 이제 그의 꿈은 후배들의 꿈이기도 하다. 안영학은 "이 아이들을 잘 도와줘서 원하는 삶을 살도록 하고 싶고, 지금보다 나은 세대를 물려주고 싶다"고 전했다.

그는 후배들이 하나의 여권을 쓰고 '하나된 코리아'로 월드컵 같은 세계 무대에서 서는 날을 기다린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 날이 오면 저 울지도 몰라요. 꿈은 이루어 진다."

기획, 취재: 김효정, 영상: 최정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