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연평도 포격으로부터 9년이 지난 지금, 주민들은 다시 불안감을 느끼고 있다

연평도는 9년 전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을 겨냥한 북한의 포격을 받았다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연평도는 9년 전 한국전쟁 이후 처음으로 민간인을 겨냥한 북한의 포격을 받았다

연평도는 항구에 내린 후에도 섬의 가로 폭을 한눈에 담는 게 가능할 정도로 작은 섬이지만 영화로웠던 기억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한반도에서 조기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으로 조기철만 되면 전국의 어선들이 몰려 장관을 이뤘다.

지금 연평도를 그렇게 기억하는 사람은 드물다. 대한민국 국민 대부분의 기억 속에 연평도는 북한의 포격으로 화염과 연기에 뒤덮였던 곳으로 남아있다.

그것도 9년 전에 벌어진 일이다. 겉보기에, 오늘날 연평도에서 포격의 흔적은 일부러 남겨놓은 곳들 외에서는 찾기 어렵다.

겨울이라 일찍 어둠이 깔린 하늘에 낮은 기관총 소리가 나더니 붉은 섬광이 하늘을 향해 날아갔다. 인근 해병부대에서 발사한 벌컨포 예광탄이었다.

예광탄은 구름 너머에서 폭발하면서 마지막으로 빛을 냈다. 기자가 연평도를 찾은 12월 3일 해병대 연평부대는 기관총과 박격포, 벌컨포 사격 훈련을 실시했다. 이튿날, 그 다음 날에도 훈련은 계속됐다.

기자가 만난 몇몇 주민은 9.19 남북군사합의 이후에 부대에서 이런 훈련을 한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연평부대 측은 합의 이후에도 소구경의 기관총 사격 훈련 등은 정기적으로 진행해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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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 연평부대의 벌컨포 사격 훈련 장면이 포착됐다.

군사합의 위반

2018년 9월 19일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세 번째로 가진 정상회담에서 남북은 군사분야 합의서에 서명했다. 여기에는 남북의 군사적 긴장 상태를 완화하기 위해 비무장지대(DMZ)에서 감시초소(GP)를 철수하는 등의 합의가 담겨 있다.

또 서해에서는 백령도, 연평도 등을 비롯한 지역과 그 인근의 북한 수역에서 포사격과 해상 기동훈련을 중지하고 해안포와 함포의 포구를 덮기로 했다.

"한반도를 항구적 평화지대로 만들어감으로써 우리는 이제 우리의 삶을 정상으로 돌려놓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9.19선언 1년이 지난 오늘의 상황은 문 대통령의 기대와 사뭇 다르다.

9.19 군사합의는 대구경에 사정거리가 긴 해안포, 함포의 사격 금지를 합의한 것이기 때문에 기관총이나 벌컨포, 박격포의 사격 훈련은 엄밀히 말해 군사합의 위반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미 합의 사항을 위반했다.

이미지 캡션 연평도 동북쪽에 설치된 망향 전망대에 있는 망원경을 들여다 보면 해주의 공장과 민가가 보인다

지난달 25일 북한의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 위원장이 창린도의 군부대를 방문해 해안포 사격을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창린도는 백령도와 연평도 사이의 옹진반도에 위치한 섬이다. 포사격을 중지하기로 남북이 합의한 지역에 포함된다.

한국 국방부는 조선중앙통신의 보도 직후 창린도 포사격이 9.19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이라며 유감을 표했다.

연평도 주민들도 불안감을 호소했다.

"지금 남북 정세로 볼 때 조짐이 안 좋게 돌아가는 것만은 맞아요." 평생을 연평도에서 살았고 연평도 어촌계장을 지냈던 박태원 씨(59)는 말했다.

"얼마 전에 (북한) 상선이... 고장이 나서도 아니고 어민들이 이용하는 항로를 통해서 소청도 앞까지 내려왔는데... 엄청 걱정이 되는 거죠."

Image copyright 서해5도평화수역운동본부
이미지 캡션 연평도가 한반도 최대의 조기 어장이던 시절에는 항구가 어선들로 가득했다

조선중앙통신이 창린도 포사격을 보도한 지 이틀 후인 11월 27일, 북한 상선이 북방한계선(NLL)을 넘어 20시간 가까이 머무른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에 이를 중국 어선으로 짐작했던 당국은 배가 소청도 남단까지 내려오고 나서야 북한 선박임을 확인한 후 경고 사격을 실시했다.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는 당시 "선박이 기상불량 및 기관고장으로 해당지역까지 이동한 것으로 파악"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 당국이 여러 차례 통신으로 배의 이름과 목적지를 물었을 때 북한 상선은 일절 답을 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포격 이전의 '징후'

연평도 토박이 박씨는 "과거에 연평도 포격사건이나 서해교전(연평해전)이 일어날 때의 과거로 되돌려보면 꼭 징후가 있었다"며 "그런 징후들을 통해서 오랜 시간을 두고 딱 한 번에 기습적으로 이루어졌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1차, 2차 연평해전, 그리고 (포격) 피폭 이런 것들 다 순식간에 일어난 것"이라며 "어느 한순간에 저들은 또 뭔가 문제를 만들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전했다.

1999년 제1차 연평해전이 벌어지기 직전 북한은 일주일에 걸쳐 NLL 너머로 경비정과 어선을 보냈다. 제2차 연평해전 때는 NLL을 넘은 북한 경비정이 기습적으로 한국 해군 고속정에 포격을 가했다.

이미지 캡션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전사한 군인들을 위한 위령탑이 세워졌다

연평도 포격 사건 때도 상황은 비슷했다. 한국군과 주한미군이 10년 넘게 연례적으로 실시하고 있던 호국훈련에 대해 북한은 자국에 공격을 가하려는 것이 아니냐며 훈련 중단을 요청했다.

훈련이 끝난 지 한 시간쯤 북한은 기습적으로 연평도의 군부대와 민가를 향해 포격을 개시했다.

"북한이 우리 영토에 대해 포사격을 가한 것은 한국전쟁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인천시 옹진군은 '연평도 포격사건 백서'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과거 북한의 군사적 도발은 대부분 해상 등에서 우리 군을 공격해 왔다. 그러나 이번엔 해상이 아닌 영토에 직접 포사격을 했다는 점에서 과거의 도발과는 확연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향후 북한의 공격대상이 확대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의 안보태세에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하고 있다."

포격의 기억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가장 큰 영향을 받은 것은 연평도 주민들이다.

"1차 2차 연평해전도 연평도 인근에서 벌어졌지만, 그때는 남의 일이지 나와는 무관한 것으로 생각했죠." 익명을 요구한 한 40대 여성은 BBC 코리아에 말했다.

"그런데 포격을 받으니까 이제 내 일이 되더라고요." 포격을 직접 경험하지 않은 외부 사람들이 연평도를 방문했을 때의 반응에 대해 묻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미지 캡션 포격 당시 파괴된 가옥 일부를 보존하여 연평도 안보교육관을 만들었다

그는 IMF 외환위기로 남편이 실직하면서 남편의 고향인 연평도로 와서 살게 됐고 어느덧 그 세월이 20년을 넘었다고 한다.

"(포격 당시) 대피해서 인천으로 도착한 다음에서야 제가 피난하면서 가방에 뭘 챙겼냐 열어봤어요. 그때 입고 있던 겨울옷 하나랑 아이들 양말 두 켤레만 챙겼더라고요." 그는 말했다.

인천시와 국립민속박물관이 펴낸 연평도민속조사 보고서에는 당시 주민들이 느낀 공포를 보여주는 사례들이 실려있다. 그중 하나는 김종규 씨의 것이다.

"김종규가 폭음을 듣고 가장 먼저 한 일은 집에 돌아와 보훈처나 국방부에서 받은 상장을 전부 태워버리는 일이었다. 그는 한국전쟁 때 참전용사로서 참여했으며 이후 연평도에서 북한에 대한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포격이 시작되자 북한군이 연평도에 들어올 것을 예상한 김종규는 대피보다 우선적으로 집에 들러 상장을 태운 것이다."

이미지 캡션 포격 이후 연평도 곳곳에 대피소를 신설했다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50대 여성은 포격 사건 이후 남편의 일로 연평도에 와서 살고 있다.

"제가 (포격을) 겪었더라면 여기 들어와서 못 살죠... 무서워서. 제 연령대는 그런 세월을 못 겪어 봤잖아요. 근데 제가 몸소 겪었다면 여기서 못 살죠." 그는 말했다.

"마을 일자리가 끝나면 솔직히, 어디 가 있어도 두려운 건 마찬가지겠지만, 여기를 벗어날까 싶어. 두려워서요…어차피 여기는 뭔일 터지면 배도 안뜰 거고."

연평도는 지금도 여객선이 하루에 한 번만 운행한다. 그마저도 일기가 좋지 않으면 취소되기 일쑤다.

연평도 포격을 겪고도 많은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할 수 없었던 이유에는 경제적인 문제도 크다.

"연평도에 있는 집이 팔려야 다른 곳에서 집을 살 수 있을 거 아니에요. 달리 일자리를 구하기도 쉽지 않고." 앞서 만난 40대 여성은 말했다.

"포격 당시에는 무슨 수를 써서든 다른 곳으로 이주하고 싶었어요. 그때 (피난처에서) 3개월가량을 살았는데 곧 애들 학교 진학 시기이고 해서 일단은 연평도로 돌아와야 했죠."

이미지 캡션 당시 북한이 발사한 포탄의 일부는 지금도 연평도 안보교육관에 보존돼 있다

긴장 고조

9.19군사합의를 채택했던 작년에 비해 2019년의 한반도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특히 비핵화를 위한 북미 협상에 대해 김정은 위원장이 공언했던 '연말 시한'이 큰 성과 없이 가까워지자 북한은 단거리 미사일과 초대형 방사포 등을 발사하며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은 창린도 포 사격으로 9.19군사합의를 위반한 것에 이어 지난 7일에는 영구 폐쇄하겠다고 밝혔던 동창리 엔진시험장에서 북한의 '전략적 지위'를 변화시키는 중대한 시험을 성공했다고 밝혔다.

이미지 캡션 전망대에서 바라본 북녘 바다에는 중국 어선이 가득하다

주민들은 점차 냉각되고 있는 한반도 분위기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여기는 한번 사건을 치렀기 때문에 북이 다시는 넘보지 않으리라 생각을 하고 있긴 한데... 그러면서도 제일 상대하기가 쉬운 데가 연평도거든. 다 근접거리에 있으니까." 박태원 씨는 말했다.

앞서 만난 40대 여성은 연평도에 깔려있는 전반적인 분위기가 체념에 가깝다고 말한다.

"포격 이후에나 지금 당장이나 사람들 마음가짐은 비슷해요. 그냥... 시간이 지나면 무덤덤해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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