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렌스젠더: 염산 테러 생존자, 의회 선거에 출사표 내다

트렌스젠더 출신 후보자인 나얍 알리(좌)와 나딤 카시시(우)가 지난 7월 5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Image copyright AFP
이미지 캡션 트렌스젠더 출신 후보자인 나얍 알리(좌)와 나딤 카시시(우)가 지난 7월 5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13살 때 집을 떠나야 했고, 친척에게 신체적, 성적인 학대를 받았다. 이후엔 남자친구가 염산 테러를 했다.

이처럼 파키스탄 성전환자 나얍 알리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그러나 이제 그는 파키스탄 총선에 출마한 성전환자 4인 중 1명이 됐다.

나얍은 "정치적 힘을 지니지 않고서는, 국가기관에 소속되지 않고서는 권리를 얻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BBC에 토로했다.

파키스탄에서 성전환자의 권리가 화두다.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지난 해 카라치에서 열린 인권 집회에 참여한 파키스탄 트렌스젠더

차별 속에서도, 활동 영역 커지는 파키스탄 트렌스젠더

보수적인 사회로 평가받는 파키스탄에서 '히즈라'라고 불리는 성전환자들은 조롱과 차별의 대상이 돼 왔다. 히즈라는 교육, 고용, 의료 서비스 등 기본 사회 서비스를 이용하기 쉽지 않았다.

무굴 제국 시절, 이들은 가수, 댄서, 조언가로 일했다.

그러나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화했을 때, 그들은 성전환자를 일탈자로 간주하고 범죄 대상으로 낙인찍었으며, 기본적인 시민권조차 인정하지 않았다.

성전환자 권리 단체 설립자이자 집행이사인 우즈마 야코프에 따르면, 파키스탄은 성전환자 인권 등에 있어선 선두국가다.

파키스탄은 약 10년 전 국가 신분증에 제 3의 성을 합법적으로 표기했으며, 작년에는 여권에도 제3의 성을 넣기 시작했다.

지난 5월, 파키스탄은 50만 명으로 추산되는 성전환자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차별을 금지하는 새로운 법안을 통과시켰다.

한 민간 방송국은 지난 3월 첫 트렌스젠더 뉴스 진행자를 뽑고, 또 트렌스젠더 배우가 영화 데뷔를 하면서 이들의 활약은 점점 가시화되고 있다.

Image copyright ARIF ALI/AFP/Getty
이미지 캡션 올초 파키스탄 최초의 트렌스젠더 앵커가 된 마비아 멀릭

'우리를 죽이고 있다'

그러나 파키스탄에서 성전환자들에 대한 폭력과 편견은 계속돼 왔다.

남성 성전환자들은 공공 영역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태어날 때부터 여성으로서 사회적, 문화적인 성 역할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여성 성전환자들은 어린 나이부터 사회에서 소외당하기 시작하고, 생계를 위해 춤을 추고, 구걸하거나 매춘을 하도록 강요받는다. 이런 과정에서 학대받거나 강간을 당하곤 한다.

그래서 많은 트렌스젠더들이 성 소수자 집단을 이끄는 지도자인 '구루'를 찾아 안전을 모색한다. 구루는 트랜스젠더들에게 음식과 살 곳을 제공하고, 소속된 트렌스젠더들은 이 공동체가 운영되도록 여러 활동을 하며 상생한다.

10살 때 형제들과 이웃들에게 괴롭힘을 당해 이곳으로 도망친 마리아 칸은 "집을 떠난 트랜스젠더들이 유일하게 안전하다고 느낄 수 있는 곳"이라며 "비웃거나 때리거나 욕하는 사람이 없다. 모두 다 처지가 같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Image copyright Forum for Dignity Initiatives
이미지 캡션 10살 때 가족과 이웃의 괴롭힘으로 집을 떠나야 했던 트렌스젠더 마리아 칸

그러나 여기에 소속된 사람들은 자신들을 향한 위협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나얍은 "많은 트랜스젠더 사람들이 살해당하고 있다. 예전에는 구타와 염산 테러 등을 당해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지만, 이제는 우리를 바로 죽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 트렌스젠더 인권 활동가들에 따르면 파키스탄 북서쪽, 보수적인 문화가 강한 카이베르 파흐툰에서는 지난 3년간 거의 60명에 이르는 트랜스젠더 여성들이 살해당했다고 한다.

희생자 중 한 명인 알리샤는 23살이던 2016년, 한 지역 갱단에게 여러 번 총을 맞았다. 그러나 병원 관계자들이 수 시간 동안 알리샤를 남자 병동에 수용할지 여자 병동에 수용할지 결정하지 못해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죽음을 맞이했다.

'가족에게 살해' 당하는 파키스탄 성전환자들

만세흐라 시에 사는 마리아는 이런 위험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마리아는 카이베르 파트콰 지방 의회에 출사표를 낸 무소속 후보다. 그는 '명예 살인' 같은 증오 범죄가 이 지역 성전환자 커뮤니티에 가장 큰 위협 요소라고 전했다.

그는 "친가족이 우리를 죽이려고 사람을 고용한다"며 "나의 경우, 만세라에 있는 우리 집에서 총격을 당했지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현관문에는 무수한 총알 자국들이 여전히 남아있다"고 말했다.

Image copyright Maria Khan
이미지 캡션 마리아는 카이베르 파트콰 지방 의회에 출사표를 던진 무소속 후보다

최근 하자라 대학을 졸업한 마리아는 이런 상황 속에서도 자신이 출마 결정을 하자 지역 사회에서 놀랍도록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며, 많은 이들이 자신의 선거 캠프에 기부했다고 밝혔다.

마리아는 '이전 정치인들이 국민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게 없다'고 믿고 있다. 만약 선거에서 당선된다면 수개월에 걸친 물 부족 문제를 가장 먼저 다루겠다고 했다.

Image copyright AFP
이미지 캡션 라디오 캠페인을 펼치고 있는 나딤 카시시

'선거는 부자를 위한 게임'

나딤 카시시는 파키스탄의 차기 총리 선거 경쟁에서 두 명의 선두 주자들과 맞서고 있다. 크리켓 선수 출신의 정치인 임란 칸과 퇴임 총리인 샤히드 카칸 아바시다.

이슬라마바드에 있는 지역구는 파키스탄에서 가장 중요한 지역 중 하나이며 의회, 대법원 등이 위치한 부유한 지역이다.

트랜스젠더 인권 운동가이자 전직 메이크업 아티스트인 나딤은 현재 지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를 다루는 라디오 프로를 진행하고 있다.

나딤은 "성전환자의 권리에 대해 논의하고 싶어 하는 정당은 없다"며 "성전환자 관련한 이야기는 의제에도 포함되지 않았기에 국회 의원으로 출마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나는 대형 정치인들처럼 현수막, 깃발, 교통수단 등 전통적인 선거 유세 자원에 쓸 돈이 많지 않다. 그러나 라디오 프로그램을 통해 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선거관리위원회에 선거자금 규모가 정해져있지만 파키스탄 정치인들은 선거 운동에 막대한 돈을 쓴다.

나딤은 "모두가 선거가 부자들을 위한 게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며 "나는 공천 서류를 제출할 돈조차 없다"고 했다.

Image copyright AFP
이미지 캡션 이슬라마바드에서 선거홍보물을 나눠주고 있는 나딤 카라시

파키스탄 선거관리위원회는 국회의원에 출마한 사람에게는 3만 루피(원화 약 26만원), 지방 의회에 출마한 사람에게는 2만 루피를 부과하고 있다.

현지 지역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최소 8명의 트랜스젠더 후보자들이 자금 부족으로 입후보 선언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나딤은 파키스탄 정치에 끝까지 도전하겠다며, "지금은 우리들의 시대다. 트랜스젠더들의 참여가 있어야 파키스탄 민주화 과정이 완성된다"고 말했다.

관련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