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C 라디오] 러시아 강제노역수용소의 기억들

러시아 굴라크 내부

사진 출처, RADCHENKO EVGENY

사진 설명,

러시아 굴라크 내부

아래는 영국 공영방송 BBC 뉴스의 한국어 라디오, BBC 코리아 방송의 2018년 7월 25일 보도입니다.

[앵커] 구 소련 시절 '굴라크'라는 악명높은 강제노역수용소들이 있었죠. 북한의 정치범 수용소와 노동교화소들도 굴라크를 모방해 만들어 진 것으로 알려졌는데요.

이곳에서 수감됐던 몇 안되는 생존자 중 한명인 바실리 코발로프가 향년 89세로 별세했습니다. 코발로프 같은 산 증인들은 나이가 들어 하나둘 세상을 떠나고 있지만, 아직도 이들의 흔적은 과거 스탈린 정권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대변하고 있습니다.

구 소련 강제수용소에 대해 케빈 킴 기자가 알아봤습니다.

동영상 설명,

2018년 7월 25일 BBC 코리아 방송 - '러시아 강제노역수용소의 기억들'

[기자] 1930년대 초반 구 소련 정부의 강제 노동 교화 담당부서로 시작된 '굴라크' 강제 수용소.

30년대 후반 대숙청이 있고난 뒤 그 수가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40년대에 들어선 수도 모스크바부터 시베리아 불모지대까지 500여개의 굴라크가 지어졌습니다.

굴라크의 정식명칭은 '교정 노동수용소 관리본부'. 하지만 '교정'만을 위한 곳은 아니었습니다.

모스크바 드미트리 운하 근처에 살았던 한 러시아 여성의 목소리 입니다. "어렸을땐 옥수수 한 움큼만 훔쳐도 바로 수용소 행이었어요. 운하를 지어야 하는데 돈이 없으니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동원한 거죠."

잡범만이 아니라 전쟁포로, 외국인, 그리고 정치범까지. 이오시프 스탈린 정권 당시 수백만명이 끌려가 시베리아 벌판 등 불모지를 개척하는데 강제로 동원됐습니다.

5년 넘게 수감된 우크라이나인 레오니드 핑클슈타인은 우랄 산맥의 광산에서 강제노역에 시달렸습니다.

"매일매일 거의 반쯤 죽은 사람 같았죠. 3월에도 기온은 영하 20도까지 내려 갔어요. 죽어가는 파리 목숨 같다고 느꼈습니다."

1953년 스탈린의 죽음 이후 핑클슈타인씨는 수용소에서 풀려났지만, 그때까지 백만 명이 넘는 사람이 질병과 기아, 피로로 수용소에서 눈을 감았습니다.

하지만 시베리아 횡단열차 철도와 상트페테르부르크 운하 등, 수감자들의 노역의 흔적은 러시아 곳곳에 여전히 남아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