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유해송환: 한국전쟁 미송환 미군 자녀의 사연

게일 엠브리의 아버지는 그가 세 살 때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실종됐다 Image copyright GAIL EMBERY
이미지 캡션 게일 엠브리의 아버지는 그가 세 살 때 한국전에 참전했다가 실종됐다

한국전쟁(1950-1953)에 참전한 미군 가운데 수천 명이 아직도 행방불명 상태다.

지난 6.12 북미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은 북한에 남아있는 미군의 유해송환을 약속했다.

곧 송환이 이뤄질 것이란 보도가 나오는 가운데, BBC는 한국전에 참전했다 실종된 아버지를 기다리는 세 명의 사연을 들어봤다.

'아버지는 돌아오고 싶다'

게일 엠브리가 세 살 때 아버지는 한국전쟁에 참전했다. 아버지 콜만 에드워드 씨는 참전 후 불과 몇 달 만에 실종됐다.

어머니는 얼마 후 재혼을 했고 그 이후론 아버지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엠브리는 자신의 친부가 누군지 모르고 자랐다.

10살이 되어 비로소 자신에게 친아버지가 따로 있다는 것을 알고, 그 뒤로 아버지를 찾는 일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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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한국전쟁에 참전했던 미군 병력중 수천 명은 여전히 행방불명 상태다

그는 "아버지를 이해하게 됐다"며 "아버지는 당시 18살 나이에 나라를 위해 싸우다 목숨을 잃었어요. 아버지가 자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희생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해요."

그는 워싱턴에서 열린 전쟁포로 및 실종자 가족 모임에 참가했다.

"아버지의 중대가 북한에 붙잡혀 포로수용소에 끌려가게 됐고, 아버진 그때 걷기 힘든 다른 포로들을 도왔다고 해요. 수용소에서 영양실조로 돌아가셨고, 인근 언덕에 묻혔다고 들었어요."

그는 미 정부를 설득하며 한국전쟁 실종자 및 전사자들의 유해송환을 위한 일에 앞장서 왔다.

그는 유해송환이 결정되기까지 "너무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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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곧 6.25 전쟁 당시 전사한 미군 유해를 송환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70년 가까이 된 유해의 신원을 어떻게 확인하는지 관심이 높다.

미국은 한국전쟁에 32만 명이 넘는 지상군을 파병했다. 이 가운데 유엔(UN) 연합군을 포함해 3만 3000 명가량이 돌아오지 못하고 실종자가 됐다.

북한과 미군은 지난 2005년까지 공동으로 유해 발굴을 진행하며, 일부 유해를 수습해 미국으로 송환했다. 하지만 2007년 이후로 유해 발굴 작업은 중단됐다.

엠브리를 비롯해 남은 미송환자의 가족들은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유해송환이 재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그는 "제가 올해 73살이에요. 얼마나 기다릴 수 있을지 모르겠어요"라며, "꼭 하고 싶은 말은 아버지는 집에 돌아가기를 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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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미송환자의 가족들은 유해송환이 재개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말 못 할 아픔

다이애나 산필립포의 아버지는 공군 중위로 한국전쟁에 자원했다. 당시 그의 나이 29세.

"아버지는 애국심이 강했고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걸 좋아했죠"라고 다이애나는 말한다.

그는 "아버지가 저와 놀아주기 위해 함께 춤을 추고 저를 공중위로 들어 올리고, 침대 위에 뛰게 해줬던 기억이 나요"라며 회상했다.

"공군기지에서 저를 꼭 끌어안으시며, 엄마한테 잘하고 있으라고 작별인사를 남기시고 떠나셨죠."

아버지가 실종된 후 어머니는 재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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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산필립포의 아버지는 공군 중위로 한국전에 자원했다

"엄마는 제가 아버지 얘기를 물어볼 때마다 화를 냈어요."

그는 스스로 아버지의 소식을 수소문했다. 그리고 함께 참전한 조종사들로부터 아버지가 평양 북쪽을 정찰 비행하던 중 격추됐을 것이란 얘기를 들었다.

"아버지가 마지막 무전으로 포탄이 쏟아지고 있다고 말하고 수신이 끊겼다. 그러나 아무도 비행기가 추락하는 것을 보지 못해 실종 처리됐다"고 말했다.

한동안 우울증을 앓았던 그는 이를 극복하고 가정심리 치료사가 됐다. 그는 심리치료를 배우며 자신도 아버지를 잃은 상실감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공군이 아버지를 위해 수색대와 구조대를 파견했던 것처럼, 저도 저 자신을 찾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20년이 걸렸지만 결국 해냈죠."

다이애나는 아버지가 좋아했던 일을 이해하기 위해 조종사 자격증을 취득. 아버지가 조종했던 P-51 머스탱을 직접 조종해 보기도 했다.

그는 아버지가 아직 생존해 있을 확률이 희박하지만, 미송환 포로로 남아 있을 가능성도 믿고 있다. 살아있다면 올해 95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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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제니스 쿠란은 세 살 때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을 소중히 간직했다

제니스 쿠란은 아버지 찰스 개리슨이 한국으로 떠나기 직전 함께 찍은 사진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는 해군 조종사였으며, 진격하는 북한군에 맞서 싸우던 연합군을 엄호하던 중 격추됐다.

아버지는 낙하산으로 탈출해 구조 헬기를 기다렸지만, 구조대가 도착했을 때는 그 자리에 없었다.

쿠란의 아버지는 북한에 포로로 잡혀간 것으로 보인다. 당시 31세였고, 그는 불과 세 살 이였다.

쿠란은 "사랑하는 가족에 어떤 일이 생겼는지도 모른 채 사는 게 쉽지 않았다"고 말한다.

그는 자신의 결혼식과 생일, 또 이후 자녀를 갖고 기쁜 순간마다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끼며 슬픔에 잠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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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쿠란(오른쪽)은 언니와 함께 판문점을 방문하기도 했다

"늘 아버지의 빈자리를 느꼈어요. 마치 늘 머리 위로 먹구름이 드리워 있는 것처럼요."

어머니는 지난 2004년 사망했다.

"어머니가 살아계실 때 유해 송환이 됐다면 좋았을 텐데, 어머니는 재혼할 기회가 있었지만 자신에게는 한 남자만 있다며 하지 안았죠."

그는 또 아버지의 유해를 찾는다면 "어머니 곁에 묻어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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