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헤미안 랩소디: 프레디 머큐리는 왜 고향의 자랑이자 불편한 존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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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머큐리의 신화는 아프리카의 작은 군도에서 시작됐다

영국 록밴드 퀸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흥행하며 퀸의 리드싱어인 프레디 머큐리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무대 위에서 뿜어져 나오는 존재감과 화려한 의상, 수많은 히트곡과 성적 지향성까지. 에이즈로 인하여 45세에 세상을 떠났지만 프레디 머큐리는 1970년대~1980년대 록 역사의 아이콘이다.

그러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도 비중 있게 설명하지 않고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사실이 있다.

프레디 머큐리의 고향과 혈통이다.

그는 아프리카 탄자니아에 위치한 잔지바르에서 태어났으며 인도와 페르시아의 혈통을 물려받았다.

자유롭게 무대를 누비며 세계를 흔든 프레디 머큐리와 보수적인 무슬림 사회인 그의 고향 '잔지바르'에 관해 당신이 알아야 할 5가지 사실을 정리했다.

파로크 불사라

머큐리는 1946년 9월 5일 잔지바르 정부 병원에서 태어났다.

그의 본명은 파로크 불사라다.

그의 부모 보미와 젤 불사라는 파르시였다.

파르시는 조로아스터교리를 따르며 인도에 거주하는 페르시아의 후예를 가리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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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프레디 머큐리가 가족과 함께 잔지바르에서 살던 집은 탄자니아의 유명 관광지가 됐다

잔지바르 사람들과 조로아스터교도들에게 있어 머큐리는 불편한 존재였다. 머큐리가 양성애자였기 때문이다.

잔지바르 군도의 대표적인 종교는 이슬람교이며, 2004년엔 동성애를 불법으로 규정했다.

2006년, 머큐리의 60번째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동성애자 관광객들이 섬을 방문한다고 하자 잔지바르의 한 무슬림 조직은 반발 시위를 열기도 했다.

BBC 탄자니아 특파원 아부바카르 파바우는 '자유로운 생활방식' 때문에 보수적인 이슬람 사회에서는 머큐리가 논쟁거리가 되기도 하지만, 주민들이 그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도 사실이라고 전했다.

"주민들은 프레디를 자랑스럽게 생각해요. 이 섬에서 세계 음악 시장에 영향을 미친 사람을 배출했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죠."

보모

머큐리의 사촌 페르비즈 다룬카나왈라에 따르면 머큐리는 비교적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머큐리의 가족은 아름답기로 유명한 잔지바르 스톤타운에 위치한 해변이 보이는 집에서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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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스톤타운에는 프레디 머큐리를 위한 레스토랑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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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프레디 머큐리와 가족이 스톤타운에서 살던 집

이 지역은 다양한 상가와 회당, 고급 주택들이 있다.

일찍 접한 음악

머큐리는 잔지바르에 위치한 성공회교도 학교에 재학하며 수녀들에게 수업을 받았다. 그러나 머큐리의 부모는 8살 때 그를 인도에 있는 학교로 보내기로 했다.

그는 인도 뭄바이 동남쪽에 위치한 빤찌가니에 세인트 피터스 처치 오브 잉글랜드 학교로 전학 갔다.

이미지 캡션 1970년대 초 밴드 퀸의 모습

영국 교회 학교였음에도 불구하고 세인트 피터스 학교는 모든 종교의 학생들을 받아들였고, 머큐리는 재학시절 조로아스터교 교리를 충실히 따랐다.

학교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뭄바이에 있는 이모와 조부모와 시간을 보내며 점점 음악에 대한 사랑을 키워갔다.

이때 그는 친구들과 첫 밴드를 결성하는데 이것이 '헥틱스'(The Hectics)다.

다시 탈출한 가족

머큐리는 1963년 잔지바르로 돌아갔다. 1963년은 잔지바르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연도다.

머큐리는 이곳에서 마지막 학교생활을 마친다.

당시 함께 학교에 다니던 친구들에 따르면 그는 종종 친구들과 수영 및 자전거 타기를 즐겼다고 한다.

그의 친구 본조 헤르난데즈는 "머큐리는 항상 '똑똑하게' 옷을 입었어요"라며 머큐리를 회상했다.

그러나 좋은 시절도 오래가지 않았다.

1964년 혁명이 일어났고 군림하던 아랍 엘리트층은 붕괴했다. 이 과정에서 최소 17,000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후 잔지바르와 탕가니카가 합병하며 탄자니아가 됐다. 당시 많은 사람이 그럤듯 불사라 가족도 군도를 빠져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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