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피임약: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영국, 한국선 왜 안 될까

사후피임약과 콘돔

1차 병원이 대부분 문을 닫은 일요일. 한국에선 '이것'을 구하려면 문 연 병원을 찾아 온 동네를 전전해야 하지만, 영국에선 길거리 드럭스토어에서 두통약을 사듯 쉽게 구매할 수 있다. 성관계 후 복용하는 응급피임약, 즉 사후피임약 이야기다.

사후피임약은 한국과 영국이 정반대의 정책 방향을 유지하는 분야 중 하나다.

영국선 두통약 사듯 쉽게 살 수 있어

한국에선 사후피임약을 의사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도록 법제를 바꿔야 한다는 논의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

그 사이 보건당국이 여러 차례 정책 개정 방안을 내놨지만 번번이 반대 여론에 밀려 무산됐다.

사후피임약은 여전히 전문의약품으로 분류돼 반드시 병원 처방을 받아야 한다.

이 때문에 주말이면 문을 연 산부인과마다 평소보다 긴 대기줄이 늘어선다. 급히 사후피임약을 구하려는 이들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들기 때문이다.

영국에선 16세 이상이라면 사후피임약을 파라세트몰 같은 일반 진통제처럼 의사 처방 없이도 구매할 수 있다. 가격은 25~35파운드, 한화 3만5천~5만 원 선이다.

심지어 16세 미만 청소년도 의사의 처방이 있으면 사후피임약을 살 수 있다.

영국 국민의료보험(NHS)은 웹사이트에서 이같은 사실을 알리며 "의사들은 청소년의 병원 방문 사실을 보호자에게 알리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덧붙이고 있다.

2017년엔 약사가 사후피임약을 내어주며 건네는 질문들이 사생활 침해가 될 수 있다는 논쟁까지 벌어졌다. 성관계 당시의 상황과 생리 주기 등에 대해 묻는 게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 번 복용해도 괜찮을까

영국의 성 건강 전문가인 제인 딕슨 박사는 "사후피임약은 전적으로 안전하다"며 "반복적으로 복용해도 여성의 몸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불임을 유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응급 피임 목적으로 쓰이는 '자궁 내 장치(Intrauterine Device, IUD)'에 대해선 의견이 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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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NHS는 IUD를 주기적으로 사용할 경우 생리 기간과 생리양이 늘어나며 생리통이 심해질 수 있다고 설명한다.

임신 중단 용도로는 부적합

영국 드라마 '블랙미러(Black Mirror)'의 에피소드 '아크엔젤(Arkangel)'에선 딸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된 엄마가 딸의 스무디에 사후피임약을 갈아 넣는 장면이 나온다.

2017년 말 이 에피소드가 공개되자 영국 온라인에선 즉각 시청자들이 사후피임약을 경구 낙태약과 혼동하게 될 우려가 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사후피임약은 배란이나 수정을 막는 약으로, 이미 자궁 내 착상한 배아를 죽이는 낙태용으로는 쓸 수 없다.

용도와 효능에 대한 교육 부족, 또 이에 따른 오남용 가능성은 한국 내 사후피임약 일반 판매를 막고 있는 주요 장벽으로 꼽힌다.

사후피임약의 일반의약품 전환을 반대해 온 한국 대한의사협회는 "청소년들이 이를 임신 중단용으로 남용할 우려가 있다"는 입장을 여러 차례 밝혔다.

2016년 5월 한국 식품의약품안전처 역시 사후피임약에 대한 현행법 유지 결정을 발표하며 "오남용에 따른 안전성 우려가 있다"고 발표했다.

'영국서 경구피임약 구하기 어렵다던데'... 사실일까

약국에서 바로 경구피임약을 살 수 있는 한국과 달리 영국에선 원칙적으로 의사의 처방전이 있어야 경구피임약을 구할 수 있다.

처방전을 받으려면 GP(General Practitioner), 1차 병원 의사와의 진료 약속을 먼저 잡아야 한다.

하지만 예약 당일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약을 받기까지 최소 이틀은 걸린다. 약값은 무료다.

이 때문에 영국의 약국 체인 로이드(Lloyds Pharmacy) 등은 웹사이트에서 예약하면 간단한 의료 상담 절차를 거쳐 가까운 약국에서 곧장 약을 살 수 있게 하는 '온라인 닥터'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영국에 단기 체류하는 관광객도 이용할 수 있다. 사설 약국을 이용하는 경우 약값은 3개월분 기준 15~20파운드, 한화로 2~3만 원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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