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크래프트: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로 뛰어 넘은 장애

로버트 스틴씨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게임 캐릭터 Image copyright Blizzard Entertainment/Patrick da Silva Saether/NR
이미지 캡션 로버트 스틴씨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의 게임 캐릭터

"아들이 시간을 보내던 게임에 더 관심을 가졌더라면…"

로버트 스틴(56)이 오슬로 시청 인근 카페에서 운을 뗐다. 한 때 로버트와 아내 트루드는 밤늦도록 잠을 안 자는 아들 매츠를 걱정했었다.

"생활 리듬을 잘 관리해야 했거든요."

매츠는 2014년 말 세상을 떠났다. 노르웨이 수도 서부에 있는 묘지에서 장례식이 열렸다. 친척 등 지인들이 참석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가족들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이들도 찾아왔다.

살아있을 때 집을 떠난 적이 거의 없었던 매츠. 그 역시 이들을 만난 적이 없었을 테니, 이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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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2년 7월 오슬로에서 로버트와 아들 매츠

이 낯선 조문객들은 누구일까? 그들은 매츠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는 매츠를 다른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귀족 출신이고 활발한 성격의 탐정, 이벨린. 이들은 자신들이 '이벨린'이라 부르던 친구의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유럽 각지에서 찾아왔다.

눈물로 친구를 떠나보내던 장례식이 끝나갈 무렵 한 명이 말했다. "지금 다른 친구들도 유럽 곳곳에서 매츠를 추모하기 위해 촛불을 켜고 있을 거예요."

DNA에 새겨진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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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93년 7월 매츠의 네 살 생일 파티. 왕관을 쓰고 위엄있게 걷던 매츠는 이로부터 몇 년 뒤 걷지 못하게 됐다

1993년 5월 울레발 병원, 매츠의 부모는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아들이 몸속 근육이 점점 퇴화되는 희귀병, '뒤센 근육 영양장애'를 가졌다는 것.

그제서야 부부는 아들이 그네에서 자주 떨어지고, 사다리를 오르지 못하거나 무릎을 바닥에 대고 일어서지 못하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유전자 내에 근육의 발달을 막거나 파괴하는 병인이 있었던 것이다.

억장이 무너졌다. 부부는 의사에게 다짐을 받듯, "이걸로 우리 아이가 죽게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의사가 말했다.

"경험적으로, 이 환자들은 스무살을 거의 넘기지 못해요."

새로운 세상이 열리다

그로부터 몇 년 뒤 매츠의 가족은 오슬로 남쪽으로 이사를 갔다. 휠체어를 타게 된 매츠를 위해 조금 더 나은 환경을 찾은 것.

부모는 '매츠가 여가 시간에 뭘 하면 좋을지' 고민했다. 또래들처럼 축구를 하거나 뛰어놀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로버트에게 '온라인 게임'이 떠올랐다. 매츠를 비롯한 가족에게 새로운 세상이 열린 것은 가족이 함께 쓰던 PC의 비밀번호를 매츠에게 알려준 이후였다.

"세상을 떠나기 전 10년 동안 약 1만 5000시간에서 2만 시간을 게임했죠. 10년 동안 풀타임으로 일한 것이나 다름 없어요."

물론 작은 갈등도 있었다. 매츠가 게임에 빠지자, 밤늦게까지 잠을 안 잔 것. 보통 게이머들은 일찍 자는 법이 없다.

로버트는 "야간에 매츠를 돌봐주는 간호사가 찾아오는 밤 10시에는 적어도 아들이 자야했다"며 "매츠가 마지못해 수긍하기까지 꽤 많은 반항이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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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어린 시절 게임하는 매츠의 모습

현실에선 매츠였지만,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 속에서는 아니었다. 이 안에서 매츠는 이벨린 레드무어였고, 때로는 제롬 워커가 됐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제롬과 이벨린은 나의 확장된 형태이고, 내 안에 있는 다른 면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그렇게 아제로스 행성(게임의 배경 무대)으로 빠져들어갔다.

매츠는 게임 속에서 여행을 했고 친구를 사귀었다. '아들이 커튼을 내린 어두컴컴한 지하실에서 밤늦도록 게임만 한다'고 생각했던 로버트에겐 이해하기 어려운 일.

그는 "아들이 왜 밤늦게까지 안 자고 게임을 하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며 "그걸 이해하게 된 건 아들이 떠나고 난 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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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세계

지하실에 갇혀 친구를 사귀다

매츠는 네덜란드 브레다에 사는 리세트 루버스를 게임에서 만났다. 2014년 매츠의 장례식에 참석할 정도로 절친했다.

리세트는 "매츠가 세상을 떠났을 때 너무나 큰 충격이었고, 그로 인해 내 삶에도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이벨린(매츠의 게임 속 캐릭터)과 루머(리세트의 게임 속 캐릭터)로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 매츠는 16살이었고 리세트는 15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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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8살이 된 리세트와 그의 게임 캐릭터 루머

"우리가 만난 건 '골드샤이어'라는 마을이었어요. 함께 놀 사람을 찾다가 모닥불 근처에 앉아있던 이벨린을 보게 됐죠. 저의 루머가 이벨린의 모자를 낚아챘어요. 그리고 우리는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보다가,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죠,"라고 리세트는 회상했다.

매츠 역시 자신의 블로그에 '사랑'이라는 제목으로 이 첫만남을 기록해 놓았다.

"이 세계에서 소녀는 휠체어 같은 다른 것들은 볼 수 없다. 오직 잘 만들어진 나의 영혼과 심장, 마음, 육체 등을 만날 뿐이다. 다행히도 이 가상의 세계에선 대다수의 캐릭터들이 멋지게 만들어진다."

리세트는 "매츠가 좋은 친구였다"고 말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터놓고 이야기했어요. 다만 매츠는 자신의 몸상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죠. 저는 그냥 우리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예를 들면 우리 모두 학교 가는 걸 싫어한다든가… 물론 서로 다른 점도 있었어요. 저는 눈을 좋아하는데, 매츠는 아니었어요. 그때는 그게 휠체어 때문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죠."

한 번은 리세트의 부모가 게임을 못하게 하기도 했다. 딸이 게임에 빠져 학업을 게을리하고 사회성이 떨어질까봐 걱정한 것이다. 리세트는 "게임을 하며 만난 친구들과 떨어지게 되니 무척이나 힘들었다"고 했다.

그때 매츠가 나섰다. 게임에서 리세트를 만날 수 없게 되자, 다른 방법으로 리세트와 계속 연락을 주고 받으며 우정을 이어간 것이다. 리세트는 "심지어 '내게 게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적은 편지를 우리 부모님께 써서 보내기도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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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아들의 사진을 보고 있는 로버트씨

매츠의 부모도 아들이 리세트와 편지를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루머, 아니 리세트가 아들에게 선물을 보냈어요. 그걸 보고 아들을 놀렸더니, 아들이 당황하는 거에요. 우리는 리세트가 아들의 친구라는 걸 알게 됐죠. 우정의 실질적인 증거잖아요. 하지만 아들이 연락하는 다른 사람들은 친구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대신 아바타라고 불렀죠. 우리가 가지고 있던 '우정'이나 '친구'의 개념에 맞지 않았던 거에요."

게임으로 세상을 달리다

친구는 리세트만이 아니었다. 매트는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라는 게임을 하며 서른 명 남짓의 동료들과 함께 '스타라이트'라는 그룹으로 활동했다.

스타라이트는 12년 넘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마흔살의 카이 사이몬이 이끄는 이들은 2014년 매츠가 세상을 떠난 이후로 매년 매츠를 추모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작년에 열린 행사에서 카이 사이몬은 "이벨린(매츠의 게임 속 캐릭터) 뛰는 능력이 탁월했고, 그 경험을 다른 이들과 나누곤 했다"고 말했다.

매츠는 2013년에 '삶에 대한 사색'이라는 블로그를 만들었다. 그는 이 곳에 자신의 이야기를 올렸다.

"게임 세상에 가면, 내게 장애가 있다는 게 전혀 중요하지 않게 된다. 나를 옭아맨 사슬이 끊어지는 것. 나는 내가 원하는 건 무엇이든 될 수 있다. 그 안에서 나는 아무런 장애도 느끼지 못한다."

그리고 이러한 내용을 스타라이트 동료들에게 공개했다. 온라인 상에서 만난 매츠의 오프라인 모습을 친구들이 알게 된 것이다. 리세트는 "가끔씩 그를 게임에서 놀렸던 것이 부끄러웠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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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스타라이트의 리더 카이 사이몬

게임 속이 아니라도 달라지는 건 없어

리세트는 "고민을 했죠. 앞으로 매츠를 어떻게 대해야 하지? 그런데 전처럼 대하기로 결심했어요. 그 애도 그걸 원한다고 블로그에 썼었죠"라고 말했다.

올해 65세인 앤 해빌은 온라인 상에서는 '치트'로 통한다. 심리학자로 일하다가 은퇴한 그는 "스타라이트는 오프라인 세상에서 길을 잃은 이들에게 대단히 매력적인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우리는 선입견 없이 서로를 대해요. 온라인은 고정관념 없이 서로를 볼 수 있어서, 사람을 만나고 우정을 쌓기에 좋죠. 나이나, 성별, 장애, 피부색 등은 나중에 자신이 밝히고 싶으면 말하는 거죠. 어떻게 보면 매츠도 운이 좋았죠. 그가 15년 정도라도 먼저 태어났으면 이런 공동체는 없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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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치트(앤의 게임 캐릭터)와 앤

소중한 사람의 자리

매츠가 세상을 떠나기 6개월쯤 전이었다. 매츠가 열흘 정도 게임에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동료들의 걱정이 시작됐다. 앤은 "항상 그 자리에 있던 매츠가 안 보이는 그 시간이 엄청나게 길게 느껴졌다"고 했다.

나중에 돌아온 매츠는 병원에 입원했었다고 설명했다. 그 말은 들은 앤은 "매츠, 혹시 네게 무슨 일이 생기면 누군가 우리에게 연락을 해줄 수 있도록 방법을 만드는 건 어때?"라고 메시지를 보냈다.

매츠의 반응은 의외였다.

"내가 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이라 그런 거야?"

앤은 당시 "아니, 네가 소중한 사람이라서 그래"라고 다시 답장을 보냈고, "당시에 매츠는 내 진심을 이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별

2014년 11월 18일 매츠의 몸상태가 갑자기 나빠졌다. 병원에 입원한 그에게 의사는 "곧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하지만 가족들에게는 "빨리 병원으로 오라"고 했다.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간 로버트는 "4층 복도끝에 있는 병실까지 가는데, 그 길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결국 부모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보지 못했다.

아버지는 아들의 마지막 모습을 사진으로 남겼다. 창백한 얼굴, 곱슬진 머리카락. 잠을 자는 듯한 모습을 남기고 아들은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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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오랜 전 리세트가 그린 '이벨린(왼쪽)과 루머' 그림

위로의 끈

아들이 세상을 떠난 다음날, 아버지는 아들의 블로그에 접속했다. 아들이 블로그 통계를 관리해달라며 비밀번호를 알려줬던 것. 로버트는 블로그에 아들의 소식을 전하며, 혹시나 연락을 원하는 이들을 위해 이메일 주소를 적었다. 글을 쓰고 등록을 하려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이메일이 왔다. 스타라이트의 동료 중 한 명이 마음을 담아 위로를 보내온 것이다. 로버트는 "'만난 적은 없지만 너무나 잘 아는 사람을 위해 심심한 마음으로 이 글을 쓴다'는 말에 울컥했다"고 말했다.

매츠의 게임 속 친구들의 위로는 줄을 이었다. "물리적 경계를 넘어서서 전 세계 사람들의 삶을 풍요롭게 했다",

"매츠가 떠났다니 마음이 아프고, 형언할 수 없이 그립다", "스타라이트의 중심에 누군가가 있다면, 그건 매츠였을 것" 등의 내용이었다.

로버트는 "점점 더 많은 메일이 도착했다"며 "모두 매츠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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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로버트가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마음으로 만나다

스타라이트 동료들은 단지 편지만으로 친구의 세상 마지막길을 배웅하지 않았다. 노르웨이에서 치러지는 장례식에 참여할 형편이 안되는 동료들을 위해 돈을 모으기도 했던 것.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리세트가, 영국에서 앤이 장례식에 참석했고, 핀란드와 덴마크에서도 친구들이 찾아왔다.

매츠의 가족들은 "본 적도 없는 친구를 위해 비행기까지 타고 장례식에 온다는 것은 정말 엄청난 일"이라며 "매트의 삶이 불행했던 것만은 아니라는 점에 뭉클했다"고 말했다.

오슬로 출신 카이 사이몬은 스타라이트를 대표해 추모사를 낭독했다.

"오늘 우리가 여기에 모여있는 이 순간 네덜란드, 아일랜드, 스웨덴 등 각지에서 매츠를 추모하는 촛불이 타오르고 있어요. 지금 이자리에 오지 못한 더 많은 친구들이 매츠를 추모하고 있는 것이죠. 우리는 '당신이 누구인가?'가 별로 중요하지 않는 세계에서 만났습니다. 그 곳에서는 당신이 무엇을 선택하고 남들에게 어떻게 하는지가 중요할 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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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카이 사이몬 프레드릭센

그는 이마와 심장에 손을 얹으며 "중요한 것은 머릿속과 마음속에 무엇이 있느냐"라고 말했다.

매츠는 그의 블로그에 살아있던 순간, 거의 항상 마주했던 컴퓨터 화면에 대해 이렇게 썼다.

"이것은 단순한 화면이 아니다. 욕망을 향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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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매츠 '이벨린' 스틴의 추모비

이 기사는 비키 슈베르트가 노르웨이 NRK에 보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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