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살인자: 조각가를 서서히 죽인 범인은 과연 누구였을까

조각가 질리언과 그의 작품 '아담' Image copyright Gillian Gensen / BBC
이미지 캡션 조각가 질리언과 그의 작품 '아담'

예술가들은 흔히 자신의 작품을 삶과 죽음의 문제라고 말한다. 하지만 질리언에게 그것은 단순히 상직적인 의미가 아닌 실체적인 문제였다.

질리언은 태초의 인간 '아담'의 조각상을 만들기 위해 지난 15년간 쉬지 않고 홍합 껍데기를 사포로 갈고 다듬으며 작업에 몰두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는 작업을 하는 내내 이유 모를 신경학적 증상과 계속 싸워왔다. '태초의 인간'을 만드는 작업이 자신의 삶을 엄청난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그녀는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이미지 캡션 질리언의 조각상은 모두 천연재료로 만든 것이었다

천연 재료 : 문제의 시작

캐나다 토론토에 살고 있는 질리언이 조각 예술을 처음 시작한 건 1991년이었다. 그가 주로 사용했던 작품의 재료는 홍합 껍데기나 산호, 말린 식물, 동물의 뼈 같은 천연 재료들이었다. 그의 1998년 작품인 '릴리스' -유대 민화 속 태초의 여성- 역시 달걀 껍질로 만든 것이었다.

이후 그는 홍합 껍데기를 이용해 그의 짝, 아담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캐나다 연안에서 채취한 조개 껍데기들을 차이나타운에서 대량으로 구매했다. 그는 원하는 모양의 껍데기들을 골라내기 위한 분류 작업에 들어갔다.

"아담의 몸을 만들기 위해 하루에 12시간씩 조개 껍데기를 사포로 갈고 다듬는 작업을 했어요. 덕분에 아담의 근섬유 하나까지도 생생하게 살아났죠. 수천 개에 달하는 홍합 껍데기를 하나하나 살펴봤고 일주일에 두세 번은 주변 친구나 가족의 도움을 받았어요."

첫 번째 징후 : 원인을 알 수 없는 증상들

조각상 작업에 들어가고 몇 달 후, 질리언은 몸에 이상을 느끼기 시작했다.

"늘 뭔가 불안한 상태가 지속됐어요. 계속 머리가 아프고 구토 증상도 잦아졌는데, 어떤 때는 하루에도 몇 번씩 구토를 해야 했죠. 원인을 알고 싶어 얼마나 많은 병원을 찾아 다녔는지 몰라요. 신경외과, 류머티스전문과, 내분비과까지요. 의사들이 혹시 독성 물질을 갖고 작업하지 않냐고 물었지만 절대 아니라고 말했죠. 난 천연 재료로만 작업한다고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증상은 더욱 심해졌고, 몇 시간씩 홍합 껍데기를 다듬은 후엔 아예 몸을 움직일 수조차 없게 됐다. 근육에도 통증이 왔고 작업 도구를 쥔 손에는 쥐가 나기 시작했다. 증상의 원인을 알 수 없었던 질리언은 절망에 빠졌다. 하지만 그에겐 죽기 전 단 한 가지의 소원이 있었다.

"당시 전 너무 나약해져 있었어요. 몸은 병들어갔지만 생각했죠.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작품을 꼭 완성해야겠다고요."

막판에 찾아온 중증 치매 : 우연히 찾아낸 실마리

"작품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는 중증 치매증상까지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사고의 흐름이 끊기고 공간지각 능력도 떨어졌어요. 재료 조각을 간단히 회전시키는 것도 어려웠고 손에 든 조각을 어디다 둬야 할지 깜깜했어요. 어떤 때는 조각을 뒤집어 붙이기도 하고 위아래를 바꿔서 붙인 적도 있었죠."

"화가 나고 불안하고 짜증이 났어요. 절망에 빠져 당장이라도 죽어버리고 싶었죠."

"정신적 고통이 극에 달했을 때는 길거리를 왔다 갔다 하며 혼자 중얼대기도 하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욕설을 퍼붓기도 했어요."

"정신과를 가봤지만 의사도 제가 왜 이렇게 기이한 행동을 하는지 모르겠다고 했어요. 항우울제, 항정신병약, 진정제까지 온갖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죠."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조개 껍데기나 뼈가 주변의 독성 물질을 서서히 흡수한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됐다. 모든 의문이 해소되는 순간이었다.

뜻하지 않은 진단 : 중금속 중독

2015년, 질리언은 중금속 중독 진단을 받게 된다.

"제 몸은 이미 비소 수치가 극에 달해있었고 나중에는 납 성분까지 발견됐죠."

범인은 바로 그녀가 '아담'을 만들기 위해 매일같이 갈고 다듬었던 수천 개의 홍합 껍데기였다.

홍합 껍데기는 물속에 있는 금속을 끌어당겨 독성 입자를 흡수하는 성질이 있는데, 질리언이 껍데기를 갈고 다듬는 사이 이 작은 독성 분자들이 공기를 통해 그녀의 몸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실제로 그녀의 몸에서는 홍합 껍데기를 처음 채취한 해안에서와 동일한 산업폐기물 성분이 발견되었다.

그는 천연 재료를 이용해 인간과 자연의 왜곡된 관계를 표현하고자 했던 작품이 오히려 자신을 서서히 병들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현재 지구가 앓고 있는 병을 제 몸이 그대로 담고 있어요."

그러나 동시에 그는 '아담'을 완성하지 못하고는 견디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Image copyright Gillian Genser
이미지 캡션 질리언의 작품 '아담'

'나의 아름다운 죽음'

조각상 '아담'은 2015년 결국 완성됐다. 만약 '아담'을 완성하지 못한다면 그가 이제껏 달려온 여정이 허무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질리언은 이번 작업으로 인해 신경 손상과 실질적인 청각 장애, 영구적인 중증 신경쇠약을 앓게 됐다. 알츠하이머나 파킨슨병에 걸릴 위험도 높아졌다. 작업을 계속하려면 중금속 중독을 막기 위한 별도의 조치도 필요했다.

"후회의 길을 걷고 싶진 않아요. 우린 계속 전진해야 하고 후회해서는 안되니까요."

그는 완성된 '아담'을 볼 때마다 자신과 지구 환경에 대한 깊은 슬픔에 빠진다.

"하지만 전 만족해요. 어쨌든 '아담'이 멋지게 완성됐으니까요. 이게 제가 희망을 찾은 방법이에요. 저는 '아담'을 저의 '아름다운 죽음'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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