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야 소피아: 세계문화유산 성 소피아 성당→모스크 전환...교황 '마음 아파'

터키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중 하나인 아야 소피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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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에서 가장 인기있는 관광지 중 하나인 아야 소피아

세계적인 관광 명소인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성 소피아 성당)'를 모스크로 전환한다는 터키 사법부의 결정에 교황이 "마음이 아프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2일 바티칸에서 열린 주간 미사에서 "내 생각은 이스탄불에 가 있다"라고 했다.

아야 소피아는 1500년 전 원래 그리스 정교회 성당으로 지어졌지만, 1453년 이슬람 국가인 오스만 제국이 콘스탄티노플(현재 이스탄불)을 정복한 후 모스크로 개조했다.

그리스어로는 '하기야 소피아'로 불리는데, 터키어 명칭은 '아야 소피아'이다. 라틴어로는 '산타 소피아'로 불린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한 이 성당은 1934년 터키 공화국 초대 대통령 아타튀르크 시절 박물관이 됐다.

그러나 이번 주 초 터키 법원은 이 건물을 모스크가 아닌 다른 용도로 사용하는 건 법적으로 가능하지 않다며 박물관 지위를 무효화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런 방침에 "내 생각은 이스탄불에 가 있다. 산타 소피아 생각이 나고 몹시 괴롭다"라고 했다.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오는 24일 첫 무슬림 기도회가 아야 소피아에서 열릴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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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치스코 교황은 터키 사법부의 결정에 '마음이 아프다'고 했다

발표 직후 현장에서는 이슬람 기도 시간을 알리는 소리가 울렸다. 이 장면은 터키 주요 뉴스 채널을 통해 방송됐다. 아야 소피아의 기존 소셜미디어 채널은 중단됐다.

터키 이슬람교도들은 오랫동안 이 유적지를 다시 모스크로 만들라고 요구했지만, 세속주의(터키의 경제 발전을 우선시해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야 한다는 입장)파인 야당 의원들은 이 움직임에 반대해왔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번 결정을 옹호하면서 터키가 주권을 행사했다고 강조했다.

또 이 건물이 모든 이슬람교도, 비이슬람교도, 외국인 방문객들에게 개방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반대하는 목소리

교황은 전 세계 여러 종교 및 정치 지도자와 더불어 이같은 결정을 반대해왔다.

세계교회협의회(WCC)는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이 결정을 취소해달라고 요청했다.

세계 최대 정교회 교구인 러시아 정교회도 과거 정교회의 중심이었던 아야 소피아의 모스크 전환에 유감을 표현했다.

터키 법원이 관련 판결을 내릴 때 우려의 목소리를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리스 역시 터키의 결정을 비난했고,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는 이 건물의 세계문화유산 지위를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 유명 작가이자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오르한 파묵은 이번 결정이 세속 무슬림 국가로서 터키인들이 가졌던 '자긍심'을 앗아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나같이 세속주의 성향 터키인 수백만이 이에 반대해 울고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는 울려퍼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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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야 소피아는 지난 1500년간 정치와 종교의 상징물이었다

세계 명소, 아야 소피아의 역사

아야 소피아의 복잡한 역사는 537년 비잔틴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금각만(Golden Horn)이 내려다보이는 거대한 교회(성당)를 건설하면서 시작됐다.

이 건물은 거대한 돔 형태로 세계에서 가장 큰 성당이자 건물이었다.

1204년 십자군 원정대가 도시를 급습했던 짧은 시간을 제외하고 수세기 동안 비잔틴 제국 하에 있었다.

1453년 비잔틴에 엄청난 타격을 입힌 오스만 술탄 메흐메트 2세는 이스탄불(옛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했고, 성 소피아 성당 안에서 금요일 이슬람 기도회를 했다.

이후 곧 이 건물은 모스크로 개조됐다. 외관에 4개의 미나레트(이슬람 예배당에 설치되는 뾰족탑)가 추가됐고, 화려했던 기독교 상징물과 금 모자이크는 이슬람을 상징하는 글자판으로 덮였다.

수세기가 흐른 뒤 1934년 터키 세속주의 움직임 속에서 박물관으로 변신했다.

오늘날 아야 소피아는 터키에서 가장 인기 있는 관광지로, 연간 37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