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종간 입양: ‘내가 유괴범으로 오인받은 까닭’

Peter and Anthony

사진 출처, @fosterdadflipper/Instagr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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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와 앤서니 (좌에서 우)

다른 인종의 아이를 입양하는 경우를 인종간 입양이라고 일컫는데 보통은 백인 가족이 흑인이나 아시아인을 비롯한 소수인종 어린이를 입양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백인 아이를 입양한 소수인종 가족들은 의심의 눈초리를 사거나 심지어 심문을 받기까지 한다고 BBC에 말한다. 본래 우간다 출신인 피터는 미국에서 백인 어린이를 입양한 후 겪었던 일들에 대해 BBC의 메가 모헌에게 말했다.

‘어떤 흑인이 백인 꼬마를 유괴하고 있어요’

일곱 살의 조니(가명)는 폭발 직전이었다. 아침에 화를 내며 일어났고 시간이 갈수록 성질 부리는 게 더 심해졌다. 미국 노스캐롤라이나 주 샬럿의 한 식당에서 피터는 조니가 놀이방에서 다른 아이와 다투는 걸 봤다. 조니가 다시 폭발하기 전에 피터는 조니를 빨리 식당 밖으로 데리고 나가야 했다. 조니를 팔에 안고 피터는 재빨리 음식값을 지불했다. 조니가 자신의 차에 아이를 데려가는 동안 조니는 그의 품 안에서 발버둥을 쳤고 피터가 차 문을 열기 위해 그를 잠시 내려놓았을 때도 아이는 화가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한 여성이 인상을 찌푸리며 그들에게 다가갔다.

여성은 “아이의 엄마는 어딨나?”고 물었다.

피터는 “내가 아버지”라고 답했다.

여성은 물러서더니 피터의 차 앞에 섰다. 그는 차 번호판을 보더니 전화기를 꺼냈다.

그는 침착하게 전화기에 “경찰 부탁한다”고 말하고는 “여기 한 흑인이 있는데 백인 꼬마 애를 유괴하는 거 같다”고 말했다.

조니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피터를 올려다봤다. 피터는 자신의 입양 아들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괜찮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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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가 어린시절 살았던 우간다

미국으로 가는 길

여행 가이드 책으로 유명한 론리플래닛의 웹사이트를 보면 카발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최대한 빨리 지나치는 곳’으로 묘사된다. 우간다의 마을이자 르완다와 콩고민주공화국 국경 인근에 위치한 카발레는 인근에 있는 다수의 유명 국립공원으로 향하는 통로 역할을 한다.

이곳에서 나고 자란 피터는 여전히 고향에 대해 고통스런 기억을 갖고 있다.

매우 가난한 환경이었다. 피터가 어릴 때 피터의 여덟 가족은 방 2개 짜리 오두막의 바닥에서 잤다.

그는 “뭐 기대할 게 별로 없었다. 음식은 감자와 수프가 전부였다”며 “운이 좋으면 콩도 먹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폭력과 알콜중독이 피터가 매일 마주하는 현실이었다. 종종 인근에 사는 고모들의 집으로 도망가기도 했다.

피터는 “친척들까지 대가족이 살았기 때문에 아이 하나를 키우는 데 마을 하나가 필요하다는 걸 배웠지만 혼돈 그 자체였다”고 말했다.

10살이 됐을 때 피터는 가족들과 같이 사느니 차라리 노숙인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챙길 수 있는 걸 최대한 챙긴 후 동네 버스 정류장으로 달려갔다.

피터는 정류장에서 기다리고 있는 한 여성에게 “어느 버스가 가장 멀리 가느냐”고 물었다. 여성은 한 버스를 가리켰고, 피터는 간판에 뭐라 써져 있는지 읽을 수 없었지만 일단 올라탔다. 버스는 400km 떨어진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로 향하는 버스였다.

피터는 한나절에 걸친 이동을 마친 후 거리에 있는 상점으로 가 상인들에게 자신에게 줄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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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마시코는 노숙 생활을 하던 피터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했다

피터는 그후 수 년간 거리에서 살았다. 다른 노숙인 어린이들과 친구가 됐고 벌이와 먹을 것을 나눴다. 피터는 그때 매우 값진 삶의 기술을 익혔다고 한다. 다른 사람의 친절을 인식하는 기술이다.

자크 마시코도 그런 친절한 사람 중 하나였다. 그는 시장을 찾을 때마다 피터에게 따뜻한 밥을 사줬다.

1년 정도가 지난 후 마시코는 피터에게 교육을 받고 싶냐고 물었다. 피터가 그렇다고 하자 마시코는 현지의 학교에 피터를 등록시켜줬다.

6개월 후 피터가 학업을 잘 성취하는 걸 본 후 마시코와 그의 가족은 피터에게 자신들의 집에서 살라고 했다.

피터는 자크 마시코에게서 자신을 다른 가족 구성원과 동등하게 대우하는 한 남성을 봤다. 피터는 우수한 학업 성적과 마침내 미국 대학교의 장학금을 받는 것으로 그에게 보답했다.

수십 년이 지난 후 40대 초반이 된 피터는 행복하게 미국에 정착했다. 그는 우간다의 가난한 공동체에 기부자를 데려가는 NGO에서 일하고 있었다. 하루는 어떤 백인 가족이 입양한 딸을 데리고 우간다에 가는 걸 봤다.

피터는 우간다의 어린이만큼이나 미국의 어린이도 새로운 집이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노스캐롤라이나에 돌아오면서 피터는 지역의 위탁기관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위탁기관의 직원은 “아이를 위탁할 생각은 안해봤나”라고 물었다.

피터는 “나는 미혼”이라고 답했다.

직원은 “그래서?”라고 반문한 뒤 “위탁기관에 있는 아이들 중에는 남성 롤모델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많다”고 말했다.

당시 노스캐롤라이나에서 아이를 위탁하기로 한 미혼 남성은 딱 한 명 있었다.

위탁 희망 서류를 작성했을 때 피터는 자동적으로 아프리카계 미국 어린이가 매치될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나 처음 자신에게 위탁된 아이가 다섯 살의 백인 소년이란 걸 알고 충격을 받았다.

피터는 “그제서야 모든 어린이에게 집이 필요하고 피부색이 내게 어떤 요인이 되서는 안된다는 걸 깨달았다”며 “빈 방이 두 개가 있었고 누구든 필요한 사람에게 방을 내줘야 했다”며 “마시코 씨가 내게 기회를 준 것처럼 나도 다른 어린이들에게 기회를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앤서니

3년동안 피터는 9명의 어린이를 몇 개월간 데리고 있었다. 흑인도 있었고 히스패닉도 있었고 백인도 있었다. 그는 “한 가지 내가 대비하지 못했던 것은 아이가 떠나면 얼마나 심적으로 힘든지였다”며 “그건 결코 대비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말했다.

피터는 다음 아이를 돌볼 수 있을 감정적 여력이 될 때까지 몇 개월 정도를 쉬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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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금요일 저녁 위탁기관에서 앤서니라고 하는 11세 소년이 긴급히 머물 곳을 찾는다는 전화를 받았을 때 그는 이를 거절했다.

피터는 “마지막 아이가 떠난 지 사흘 밖에 안됐기 때문에 나는 ‘적어도 2개월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관에서는 내게 이번 건은 예외적이고 비극적인 케이스라고, 단지 기관에서 해결책을 마련할 때까지 주말동안만 아이를 돌봐달라고 했다”고 말했다.

피터는 마지못해 앤서니를 받아들였다. 큰 키에 창백하고 다부진 몸에 곱슬거리는 갈색 머리의 소년이 새벽 3시 그의 집 앞에 도착했다. 아침이 되자 앤서니와 피터는 함께 앉아 아침식사를 했다.

피터는 “나를 피터라고 불러도 된다”고 말했다. 앤서니는 “아빠라고 불러도 되나”라고 답했다.

피터는 충격을 받았다. 이제 겨우 20분 정도 이야기한 사이였다. 그는 앤서니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몰랐지만 즉각 그와 어떤 연결됨을 느꼈다. 둘은 함께 요리하고 대화를 하며 주말을 보냈다. 상점에도 들러 피터는 앤서니에게 옷을 사줬다.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지 등의 피상적인 질문을 서로에게 던졌다.

월요일이 되자 사회복지사가 왔고 그제서야 소년의 이야기를 알 수 있었다. 앤서니는 2살 때부터 위탁양육기관의 신세를 졌고 4살 때 한 가족에 의해 입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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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7년 후 앤서니의 수양부모는 그를 병원 밖에 버려뒀다. 경찰이 부모를 찾아가자 그들은 이제 더는 그를 키울 수 없다고 말했다.

피터는 “믿을 수 없었다”며 “작별 인사도 안했고 왜 그를 버려야 했는지도 설명하지 않았고 돌아오지도 않았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어떻게 인간이 그럴 수 있느냐”고 말했다.

“앤서니의 삶은 내 어린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했다”

“이 아이는 캄팔라의 거리에 갈 곳 없이 서 있던 10살의 나와 같았다. 그래서 나는 사회복지사에게 ‘이 아이를 학교에 보내기 위한 서류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다”

피터는 앤서니를 보고 어쩌면 앤서니가 자신은 몰랐던 선견지명이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나를 바로 ‘아빠’라고 불렀지 않은가. 얘는 내가 그의 아빠가 될 거란 걸 알았던 거다.”

아프리카 문화의 수용

피터는 “우리 둘 다 계속 함께 하게 될 거란 걸 직감했던 것 같다”고 말한다. 1년이 되지 않아 피터는 공식적으로 앤서니를 입양했다.

피터와 앤서니는 함께하는 삶에 적응해갔다. 앤서니는 아버지의 우간다에서의 삶에 대해 모두 듣고 싶어했다. 이제는 앤서니의 유산이기도 하기 때문이라고 피터는 말했다. 앤서니는 카사바와 콩을 섞은 우간다 음식인 카토고를 만드는 걸 돕기도 했다.

학교에서 앤서니는 피터를 친구들에게 소개하는 걸 즐겼다. 때때로 “우리 아빠야”라고 말했을 때 친구들이 당황하는 모습을 즐기기도 했다.

경찰 신고

하지만 난관도 있었다. 공항에서 경비원이 앤서니를 멈춰세우고 부모가 어디있는지를 물은 일이 있었다.

앤서니는 피터를 가리키며 “내 아빠다”라고 말했다. 경비원이 피터의 신원조사를 하는 도중 앤서니는 자신이 경험한 노골적인 인종차별에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지만 피터는 그를 진정시켰다.

피터는 이제 13살인 앤서니에게 “나는 너의 아빠고 나는 너를 사랑한다”며 “하지만 나 같은 사람은 언제나 잘 대우받는 건 아니다. 너의 할 일은 나를 이렇게 대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라 네가 나 같은 사람을 영예롭게 대하는 거란다”라고 말했다.

올해 봄 위탁양육기관은 피터에게 연락해 7살의 조니를 잠시 돌봐줄 수 있느냐고 물었다. 조니의 가족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재정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조니는 앤서니만큼 잘 적응했다. 앤서니가 피터를 ‘아빠’라고 부르는 걸 본 후 조니도 피터를 ‘아빠’라고 불렀다.

금발의 생머리에 작고 창백한 조니는 피터와 함께 나갈 때면 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그래서 피터는 음식점 앞에서 그 여성이 경찰에 신고했을 때 놀라지 않았다. 피터가 조니의 보호자라는 걸 경찰이 확인하는 데는 얼마 걸리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조니에게 충격을 안겼다.

지난 5월 조지 플로이드의 살해 사건 이후 피터는 앤서니에게 ‘흑인의 생명은 소중하다’에 대해 이야기했다. 피터가 만일 길을 같이 가다가 경찰이 자신들을 멈춰세우면 전화기를 꼭 준비하라고 말하자 둘은 눈물을 참지 못했다.

피터는 “흑인으로서 나는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경찰에게 내가 누구인가를 10초 안에 설명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는 언제나 앤서니에게 ‘만약 경찰이 날 붙들면 꼭 전화기를 꺼내서 바로 녹화를 시작해라’라고 말한다. 왜냐면 그가 나의 유일한 목격자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내 목숨을 구할 시간이 단 10초 있다.”

“앤서니도 나를 이해하는 것 같다. 우리가 미국에 있으며 나는 앤서니와 생김새가 다르기 때문에 다른 대우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안다. 백인 부모가 흑인 아이를 입양했을 때는 이런 긴장이나 의혹을 겪지 않는다.”

인종간 입양

입양 절차는 나라마다 다르며 전세계의 인종간 입양에 대해 상호검토까지 거친 통계는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국제입양기관 레인보우키즈에 따르면 국제입양되는 비백인 어린이의 73%가 백인 가정에 입양된다고 한다.

가정학연구소의 연구위원이자 심리학자인 니콜러스 질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백인 가정이 흑인 가정에 비해 같은 인종이 아닌 아이를 입양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한다.

그는 “우리가 갖고 있는 최신 자료는 2016년 자료인데 단 1%의 흑인 가정이 백인 아이를 입양했고 92%가 흑인 아이를 입양했다. 백인 가정은 5%의 흑인 아이와 11%의 다인종 아이를 입양했다”고 말한다.

이어 “현재로서도 흑인 가정이 백인 아이를 입양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며 이는 미국의 입양 시스템에 문화적 편견이 존재하기 때문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고 BBC에 말했다.

그러나 작년 한 영국인 부부가 아시아계가 아닌 어린이를 입양하는 게 허용되지 않은 데 대해 차별을 받았다는 판결을 받고 12만 파운드(약 1억8000만원)의 배상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이 부부는 입양기관으로부터 인도나 파키스탄에서 온 아이를 입양하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법원에 차별을 당했다고 소송을 걸었다.

20년 넘게 어린이 관련 법을 다뤄온 변호사 닉 호드슨은 “영국의 법은 아이를 입양시키는 데 인종이 결정적인 요인이 돼선 안된다고 분명히 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2014년의 유아가족법은 입양자과 입양아의 인종적 문화적 배경에 대해 고려해야 한다는 조건을 삭제했다. 이는 역사적으로 소수인종 어린이가 백인 어린이에 비해 입양되는 데 시간이 훨씬 오래 걸렸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 영국인 부부와 같은 소수인종 부모가 여전히 여러움을 겪을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그는 “이게 시스템 내의 문제라곤 생각지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인종의 아이를 입양하려고 하는 소수인종 부모의 어려움을 평가절하하려는 건 아니다”라며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과 법이 말하는 바가 동떨어져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피터는 위탁양육 시스템에서 자신이 흑인이라서 고생한 것은 없지만 앤서니의 나이가 많아 일반적인 경우보다는 입양이 더 쉬웠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니콜러스 질은 아이가 5살이 넘어가면 입양이 어렵다고 덧붙였다.

피터는 같은 인종의 아이가 없어 더 오래 기다려야 하는 다른 흑인 가정들을 안다.

그는 “우린 평등한 사회에서 살고 있지 않다”며 “하지만 나는 통념을 부수기 위해 내 스스로를 드러내고자 한다. 흑인 남성을 늘 곁에 없는 아버지, 범죄자 등으로 보는 통념이 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이들을 키우는 것에 대해 인스타그램과 페이스북에 주기적으로 사진을 올리며 공개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스타그램에 자신과 아이들의 일상과 NGO 월드비전에서 일하는 모습을 올리며 10만 명의 팔로워를 얻었다.

피터는 여행 제한이 풀리고 난 후에 아이들과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우간다에 가서 아버지가 어디서 왔는지를 보여주고 또한 조니의 가족들과도 관계를 형성에 나중에 조니를 돌려보내는 과정이 고통스럽지 않게 하고자 한다.

종종 인스타그램의 메시지로 제안을 받지만 피터는 연애를 시작할 생각이 없다고 한다.

피터는 “우리 아이들은 삶에서 안정적인 남성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며 “아이들은 지금 내가 자신들만 바라보길 필요로 하며 나는 늘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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