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쿠데타: 경찰의 총에 숨진 19세 여성의 장례식에 수백 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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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시위에서 사망한 19세 여성의 장례에 수백 명이 참가했다

미얀마 쿠데타 반대 집회 중 총에 맞아 숨진 19세 여성의 장례식을 위해 4일 만덜레이에 수백 명이 모였다.

'엔젤'이란 이름으로 활동하던 키알 신은 사망 당시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란 문구가 새겨진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SNS에선 그를 향한 추모의 글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2월 1일 쿠데타가 발생한 이래 미얀마에서는 군부 통치 종식과 구금된 정치인들의 석방을 요구하는 대중 집회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 인권사무소에 따르면 현재까지 적어도 54명이 치안 병력에 의해 살해됐으며 다른 소식통들은 희생자 수를 더 많이 보고하고 있다. 지난 3일은 쿠데타 이후 가장 많은 사상자가 발생한 날로 미얀마 곳곳에서 38명이 살해됐다.

미첼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미얀마 치안 병력에게 "평화적 시위에 대한 악랄한 탄압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수십개 국이 미얀마에서 벌어지는 폭력을 비난했으나 군부는 이를 대체로 무시하고 있다.

유엔에서 미얀마의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도움을 요청했다가 군부에 의해 해임된 주유엔 미얀마 대사는 군부에 대한 "가장 강력한 국제적 행동"을 촉구했다.

초 모 툰 주유엔 미얀마 대사는 "지난 3~4일 동안 얼마나 많은 무고한 시민들이 죽었는지를 세계가 보았다"며 "미얀마 국민들에게 필요한 것은 보호"라고 BBC 월드서비스의 뉴스아워 프로그램과의 인터뷰에서 말했다.

한편 군부가 초 모 툰 대사의 후임으로 지명한 틴 마웅 나잉 부대사는 자신이 사임했으며 초 모 툰 대사가 여전히 주유엔 대사라고 말했다.

사진 출처,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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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젤'은 3일 만덜레이에서 열린 쿠데타 반대 집회에 참석하던 중 사살됐다

엔젤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4일 만덜레이에서 사람들은 엔젤의 장례식 행렬을 줄지어 따랐다.

참가자들은 혁명가를 부르고 쿠데타 반대 구호를 외쳤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엔젤이 "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란 문구의 티셔츠를 입고 있는 모습이 담긴 사진은 많은 화제가 됐다.

시위 도중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알고 있던 엔젤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혈액형을 기입했고, 자신이 사망할 경우 장기는 기증해달라고 요청했다.

3일 집회 당시 엔젤과 같이 있었던 집회 참가자 미앗 투는 엔젤이 사람들이 최루탄을 씻어낼 수 있도록 수도관을 열었다고 말했다. 또한 경찰이 사격을 시작하자 자신을 도우려했다고 말했다.

그는 "엔젤은 내게 '앉아! 총에 맞을 수 있어'라고 말했다. 그는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고 보호했다"고 로이터에 말했다.

그는 경찰이 최루탄을 쏜 후 실탄을 발사했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Reu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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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게 다 잘 될 것'이란 티셔츠를 입고 있는 엔젤의 사진은 온라인에서 널리 퍼졌다

작년에 처음으로 투표를 한 엔젤에 대해 미앗 투는 "행복한 소녀"였으며 "그는 가족을 사랑했고 가족도 그를 너무나 사랑했다. 우린 전쟁 중인 나라가 아니다. 사람에게 실탄을 쓸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많은 이들이 SNS에서 엔젤의 죽음을 추도했다.

시위대가 단결하다

모 민, BBC 버마어 서비스

키알 신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주는 영상에서 그는 젊은 시위대를 이끌고 있었다. 거리의 맞은편에서 최루탄이 쏟아지고 사격이 시작되자 시위대는 모두 걱정이 가득한 얼굴이 됐으나 그는 "우린 단결됐나?"고 외친다. 그러자 시위대는 "단결, 단결"이라고 구호를 외친다. 키알 신 가족의 한 친구는 나중에 그가 정말로 영감을 주는 지도자였다고 말했다.

키알 신은 3일 숨진 십대 청년들 중 하나다. 소위 'Z세대'라고 일컬어지는 이들은 자신들의 미래가 군부 정권에 의해 좌우되선 안된다고 여긴다. 그러나 군부는 심지어 도시에서도 잔혹행위를 다시금 일삼았다.

한 시위자는 내게 이 정도로 비인간적인 잔혹행위를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군경은 무장하지 않은 시위대에게 실탄을, 그것도 머리를 향해 발사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침묵하지 않을 것이며 군부의 야만적 행위가 자신의 결심을 더 강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키알 신의 장례식에서 그의 이모는 말했다. "나의 마음은 슬프지만 그들은 곧 무너질 것이다. 우리의 싸움은 이길 것이다."

최근 시위 상황은?

사진 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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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는 구금된 지도자 아웅산 수치의 석방을 요구한다

시위대는 잇따른 사망 사태에도 굴하지 않고 미얀마에서 가장 큰 도시인 양곤과 만덜레이를 비롯한 여러 지역에서 집결했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하루 전 시위자 한 명이 총격으로 사망한 밍얀에서 수만 명이 집회를 벌이고 있다.

로이터는 양곤과 모니와 등지에서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기 위해 사격과 최루탄 발사를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은 4일 오전 만덜레이에서 전투기 5대가 대형을 이뤄 낮게 비행했다고 말했다. 군부의 힘을 과시하려는 행동으로 여겨진다.

쿠데타 이래 의회 의원들과 시위대를 비롯 1700명 이상이 구금됐다고 바첼레트 유엔 인권최고대표는 성명에서 밝혔다. 최근 기자 29명이 체포되면서 상황이 악화하고 있다고 그는 덧붙였다.

바첼레트 대표는 시위의 규모가 크고 현재 상황을 모니터링하는 데 어려움이 많아 실제 체포자 수는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군경은 3일 별다른 경고 없이 몇몇 지역에서 사격을 개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시위대는 고무탄 뿐만 아니라 실탄도 사용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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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의 최루탄을 피해 달리는 시위대의 모습

유엔의 미얀마 특사 크리스틴 슈래너 버게너는 한 영상에서 경찰이 무장하지 않은 의료 자원봉사자를 구타하는 모습이 나온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왜 시위를 하나?

미얀마 군부는 아웅산 수치의 정부를 전복한 후 비상사태를 선언했다.

며칠 후 많은 사람들이 직장 복귀를 거부하는 등 시민불복종 운동이 시작됐다.

이후 운동은 세가 불어나 수만 명이 거리에서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부터 시위의 폭력 진압이 시작됐다.

군부는 사망 사건에 대해 논평을 하지 않았다.

미얀마는 어떤 나라?

  • '버마'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진 미얀마는 영국의 식민지였다가 1948년 독립했다. 미얀마의 현대사 대부분은 군부 통치 하에 있었다
  • 2010년부터 군부 통치의 규제가 완화됐다. 2015년에 첫 자유선거가 이뤄졌고, 이듬해 오랜 야당 지도자 아웅산 수치가 이끄는 정부가 세워졌다
  • 2017년 소수민족 로힝야족의 전투원들이 경찰서를 공격했고, 미얀마의 군부와 현지의 불교도들은 이에 대해 강력한 탄압으로 응수하면서 수천 명의 로힝야 사람들이 숨졌다. 로힝야 사람들 50만 명 이상이 이웃 방글라데시로 도피했다. 유엔은 이를 두고 "인종청소의 교과서적 사례"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