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부름 갔다가, 보드게임 하다가... 포탄 소리는 멈췄지만 이 아이들은 이미 세상에 없다

한 어린이가 폐허가 된 가자 지구에서 서성이고 있다

사진 출처, Anadolu Age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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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어린이가 폐허가 된 가자 지구에서 서성이고 있다

팔레스타인 보건부 장관에 따르면 이번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사태로 사망한 가자지구 주민 219명 중 최소 63명이 어린이였다. 이스라엘 사망자 10명 중에선 2명이 어린이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BBC는 이번 사태로 숨진 어린이들의 사연을 모아봤다.

알 카왈렉 일가족, 5~17세

사진 출처, Al-Kawlak family/DCIP/N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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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홉 살 야라(왼쪽)와 다섯 살 룰라는 지난 주 가족들과 함께 몰살됐다

지난주 이스라엘이 가자 중심부 알 위다 거리를 공습했을 당시 알 카왈렉 일가족 최소 13명이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희생자 상당수가 아이들이었고 그중 한 명은 생후 6개월로 알려졌다.

생존자 사나 알 카왈렉은 팔레스타인 온라인 언론 펠스틴에 "자욱한 연기만 보였다"고 폭격 당시 상황을 묘사했다.

"옆에 있던 아들을 껴안고 있었지만 아이를 볼 수도 없었습니다. 당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이스라엘 방위군(IDF)은 이번 공습이 이례적이었다며 민간인 피해를 의도하진 않았다고 말했다.

방위군 대변인은 공습으로 터널이 붕괴하면서 주택도 무너졌다고 전했다.

아홉 살 야라와 다섯 살배기 룰라도 목숨을 잃었다.

두 어린이 모두 노르웨이 난민 위원회(NRC)의 트라우마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익명을 요구한 교사는 숨진 어린이들이 숙제도 제때 냈고 예의발랐다고 회상했다.

현재 인터넷에선 카왈렉가의 직계 가족 중 유일한 생존자라며 올해 열 살, 아지즈 알 카왈렉이 어머니 시신 옆에 앉아 있는 모습이 돌고 있다.

이도 아비갈, 5세

사진 출처, Twit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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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살 이도는 하마스의 로켓 공격으로 사망했다

이스라엘의 가장 어린 희생자는 남부 스데롯에서 지난 수요일 사망한 5살 소년 이도 아비갈로 추정된다.

이도는 방공호 안에서 공격당했다. 이스라엘군은 이 사망 사건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드문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타임스에 따르면 당시 스데롯으로 로켓이 날아들며 사이렌이 울리자 이도의 어머니는 아이를 방공호로 대피시켰다.

그러나 로켓 파편이 방공호의 금속 철 보호막을 뚫고 들어왔다.

어머니와 이도의 일곱 살 누나도 다쳤다. 이도는 부상 몇 시간 후 세상을 떠났다.

히다이 질베르만 IDF 대변인은 "로켓의 각도와 속도 그리고 발사 지점이 매우 구체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도의 아버지 아사프 아비갈은 아들의 장례식에서 아이를 보호하지 못했다며 애통해했다.

"이도야, 며칠 전에 네가 나에게 물었지. '아빠, 우리가 밖에 있는 동안 사이렌이 울리면 어떻게 돼요?' 나는 네가 나와 함께 있는 한 널 지켜줄 거라고 했지. 결국 내가 거짓말을 한 셈이구나···."

아비갈과 그의 아내는 이도가 나이에 비해 얼마나 아는 게 많은 똑똑한 아이인지 감탄하곤 했다.

이도는 아버지에게 종종 '컴퓨터 좀 그만하고 자신과 놀아달라'고 떼를 썼다.

이도의 어머니는 아직 병상에 있다.

나딘 아와드, 16세

열여섯 살, 아랍계 이스라엘 학생이었던 나딘은 지난 수요일 새벽 올해 쉰두 살인 아버지와 함께 있었다.

그 때, 아와드의 자택과 승용차로 로켓이 떨어졌고 두 사람 다 목숨을 잃었다. 당시 차에 함께 타고 있던 나딘의 어머니는 중상을 입었다.

나딘의 사촌 아흐마드 이스마일은 집 안에서 로켓 공습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이스마일은 아랍계 이스라엘인과 유대계 이스라엘공동 거주 구역인 로드시에 산다.

그는 "(공습이) 너무 빨리 일어났다"며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어도 방공호가 없었다"고 전했다.

나딘의 장래 희망은 의사였다고 한다. 그의 지인들은 나딘을 "매우 특별한 소녀"로 기억했다.

나딘이 다닌 학교의 교장은 나딘에 대해 "세상을 바꾸는 꿈을 꾸었던, 매우 재능있는 소녀였다"며 제자의 죽음을 애도했다.

현지 언론 타임스 오브 이스라엘에 따르면 나딘은 생전에 '세계를 정복하고 싶다'는 말도 했다.

그는 유대인 지역 학교들과 손잡고 과학 관련 사회 프로젝트에 참여해 왔으며, 생물 의학 프로그램에도 참가할 계획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알 하디디 일가, 6~13세

사진 출처, Getty 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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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후 5개월 오마르는 어머니 시신 옆에서 발견됐다

지난 금요일 무함마드 알 하디디의 네 자녀(13세 수하이브, 11세 야히야, 8세 압데라만, 6세 오사마)는 라마단의 끝을 축하하는 이드 기념일을 맞아 제일 좋은 옷을 차려입고 사촌을 방문했다.

사촌은 가자 외곽의 난민촌에 살고 있었다. 37세 아버지 하디디는 그날을 이렇게 기억했다.

"아이들은 이드 옷을 입고 장난감을 가지고 삼촌 집으로 갔어요. '삼촌네서 자고 가게 해달라'고 애원하기에 알겠다고 했죠."

이튿날, 아이들이 머물렀던 건물은 공습을 받았다.

건물 잔해에 깔려 있다 구조된 생후 5개월 오마르를 제외하고 그 집에 있던 모든 이들이 숨졌다.

오마르는 구조 당시 이미 사망한 어머니 옆에 누워 있었다.

"아이들은 집 안에 안전히 있었고 무기를 소지하지도 않았으며 로켓을 발사하지도 않았습니다. 애들이 도대체 뭘 했길래 이런 봉변을 당해야 하나요? 우리는 그저 민간인일 뿐입니다."

잔해엔 장난감, 모노폴리 보드게임, 먹다 만 명절 음식이 담긴 그릇 등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갑자기 자녀를 넷이나 잃게 된 하디디는 더 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허망함을 드러냈다.

"(이번 폭력 사태가 일어나면서) 아이들은 잠자리에 들 때마다 '깨어났을 땐 모든 게 끝나 있겠지' 하고 바랐죠. 그랬는데 정작 아이들이 사라졌어요. 제게 남은 건 아이들의 체취가 묻은 이 집과 아이들에 대한 기억뿐입니다."

이브라힘 알 마스리, 14세

이브라힘은 형제, 사촌들과 가자 북부지역의 집 앞마당에서 놀고 있었다. 그때 포탄이 아이들을 덮쳤다.

이브라힘과 그의 형 마윈, 사촌들은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아버지 유세프 알 마스리는 인디펜던트와의 인터뷰에서 "라마단 기간, 이프타르(낮동안 금식을 마치고 해가 지면 먹는 첫 식사) 시간 전이면 아이들은 늘 이 거리에서 놀았다"고 회상했다.

"공습을 당할 줄은 몰랐어요. 두 번의 큰 폭발음이 들렸고, 모두가 뛰기 시작했죠. 아이들은 피를 흘리고 있었고 어머니들은 울부짖었습니다. 사방에 혈흔이 널려 있었어요."

알 마스리의 형제는 당시 시장에 내다 팔 지푸라기 자루를 채우고 있었다.

그는 AF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평범하던 일상이 순식간에 파괴된 순간을 전했다.

"우리는 그저 웃고 떠들고 있었는데 갑자기 공습이 저희를 덮쳤어요. 그 순간 주변 모든 것에 불이 붙었죠. 저는 사촌들이 불에 타 산산조각이 되는 걸 목격했습니다."

함자 나사르, 12세

이 열두 살 소녀는 지난 수요일 저녁, 라마단 금식 휴식시간에 어머니가 요리할 채소를 사러 가자에 있는 집을 나섰다.

함자는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알자지라는 이스라엘군이 아부 알 카스 묘지 근처에 실시한 공습으로 함자가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함자의 아버지는 그가 좋은 아이였고 훌륭한 학생이었다고 알자지라에 밝혔다.

탈라 아부 알 아우프, 13세

사진 출처, Abu al-Auf family/DCIP/NR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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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라는 오빠와 함께 목숨을 잃었다

알 카왈릭가의 이웃, 열세 살 탈라 아부 알 우프와 그의 열일곱 살 난 오빠 타우픽도 목숨을 잃었다.

이들은 알 카왈릭가와 비슷한 공습을 받았다.

이들의 아버지 아이만 아부 알 아우프 박사도 이스라엘 공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가자 알 시파 병원의 내과장으로 코로나 병동을 맡아 왔다.

아우프 박사의 지인들은 그가 피습이 있기 얼마 전 전부터 야근이 잦았다고 BBC에 말했다.

탈라의 선생님은 탈라를 "훌륭한 학생"이라고 묘사했다.

그는 탈라에 대해 "종교 수업에 관심이 있었고 쿠란을 읽고 외우는 것을 좋아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언제든지 시험을 치를 준비가 된 성실한 아이라고 덧붙였다.

탈라는 트라우마를 겪는 아이들에게 심리 치료를 제공하는 NRC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었다.

NRC의 현장 매니저 파호자이파 야지는 "아이들은 이미 많은 고통을 겪었다"면서 "이 광기는 멈춰야 한다. 아이들에게 미래를 주기 위해선 폭력이 중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무력 충돌 11일만인 지난 21일 휴전에 합의했다. 그러나 분쟁의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