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 테러 20년: 9.11 테러 주동자는 어떻게 FBI를 피했나

  • 고든 코레라 & 스티브 스완
  • BBC News
2012년 법정에 선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의 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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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법정에 선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의 스케치

20년 전 여객기 여러 대를 납치해 미국 랜드마크에 강제 비행시킨 끔찍한 음모를 주도한 혐의로 재판을 기다리고 있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 테러가 발생하기 몇 해 전 그를 멈출 수 있었다면 어땠을까?

"모하메드는 내 수배자였다."

프랭크 펠레그리노는 2001년 9.11 테러 당시 말레이시아의 한 호텔 방에 앉아 미국 세계무역센터(WTC)에 추락하는 비행기들의 장면을 TV로 보고 있었다. 그는 테러 장면을 보자마자 "세상에, 이건 분명 칼리드 셰이크 모하메드의 짓"이라고 생각했다.

이번 테러가 모하메드의 목표와 야욕과 일치한다는 걸 펠레그리노는 알아챌 수밖에 없었다.

전직 FBI 특수요원인 펠레그리노는 30년 가까이 모하메드를 추적했지만, 9.11 테러 주동자로 알려진 모하메드는 아직 최종 판결을 받지 않았다.

모하메드 측 변호사는 BBC에 사건이 마무리되려면 20년이 더 걸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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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부시 전 대통령이 9.11테러 발생 며칠 후 소방관들과 함께 잔해를 치우고 있다

당시 알카에다의 지도자였던 오사마 빈 라덴은 9.11 테러와 가장 밀접한 관련 인물이다.

그러나 9.11 테러 조사위원회에 따르면, 실제 테러의 "주요 설계자"는 "KSM"으로도 불리는 모하메드였다. 그는 테러 계획을 만들어 알카에다에 전한 인물이었다.

쿠웨이트 출생의 모하메드는 미국 유학 후 1980년대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에 합류했다.

9.11 테러 발생 수년 전, FBI 요원 펠레그리노는 지하드를 추적했다.

FBI는 펠레그리노에게 1993년 WTC 폭탄테러를 조사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당시 미 당국은 폭탄테러 관련자에게 돈을 부친 모하메드를 주시하던 중이었다.

펠레그리노는 1995년 태평양 상공에서 국제선 여객기들을 폭파하려던 음모와 모하메드의 관련성을 통해 그의 야욕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됐다.

1990년대 중반, 펠레그리노는 모하메드에게 가까이 다가가며 그가 있는 카타르까지 추적했다.

펠레그리노의 팀은 오만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카타르로 건너가 모하메드를 체포할 계획이었다.

모하메드를 이송할 비행기도 준비돼 있었다.

그러나 현지 미국 외교관들이 반발했다.

펠레그리노는 카타르로 가서 카타르 주재 미국 대사와 대사관 직원들에게 모하메드를 항공기 관련 음모 혐의로 기소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들은 카타르에서 문제가 생기는 것을 원치 않은 듯했다고 펠레그리노는 말했다.

펠레그리노는 "그들은 모하메드 체포 계획이 평지풍파를 일으킨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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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과 2020년 펠레그리노의 사진

결국 미국 대사는 펠레그리노에게 카타르 정부 관계자들이 모하메드를 놓쳤다고 말했다고 통지했다. 펠레그리노는 "불안, 분노와 좌절감이 뒤섞였다"며 "당시 우리는 기회를 놓쳤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1990년대 중반 FBI의 최우선 수배자가 모하메드는 아니었음을 인정한다.

펠레그리노는 모하메드를 미국 10대 지명수배자 명단에 올리지도 못했다.

그는 "수배 중인 테러리스트들이 이미 너무 많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미국이 자신을 추적한다는 제보를 받고 카타르를 탈출해 아프간에 온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몇 년간 KSM의 이름이 계속 떠올랐고, 전 세계에서 체포된 테러 용의자들의 연락망에 자주 등장해 다른 용의자들과의 연관성을 확실시했다.

그동안 모하메드는 빈 라덴을 찾아가 미국의 건물들에 비행기를 충돌시킬 조종사를 훈련하겠다는 생각을 전했다.

그리고 9.11 테러가 터졌다.

알카에다의 핵심 인물이 모하메드에 대해 밝히면, 펠레그리노가 모하메드의 역할에 대해 가진 의혹은 사실로 확인될 것이었다.

펠레그리노는 "나의 수배자가 일으킨 사건이었음을 모두가 깨달았다"며 "모하메드가 주동자임을 우리가 알아냈을 때 나보다 더 비참한 사람은 없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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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3년 WTC 폭탄 테러로 6명의 사망자와 1000명 이상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모하메드는 2003년 파키스탄에서 체포됐다. 펠레그리노는 자신이 맡은 기소에 따라 모하메드가 재판받기를 기대했지만 모하메드는 자취를 감췄다.

미 중앙정보국(CIA)이 그를 "강화된 심문 기술"을 사용하는 "블랙 사이트"로 데려간 것이었다.

당시 CIA 고위 관계자는 "그가 알고 있는 정보를 빨리 알아내고 싶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익사 직전"으로 묘사되는 물고문을 최소 183회 당했다. 또한 직장 탈수, 신체 근육을 압박하는 자세, 수면 부족, 강제 탈의를 강요받았고 그의 자녀들이 살해될 것이라는 협박도 당했다.

그는 고문 기간 동안 여러 음모를 자백했다. 그러나 미 상원 보고서는 모하메드가 상당한 양의 정보를 거짓으로 꾸며냈음을 추후 밝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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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가 밝힌 정보로 파키스탄 국경에서 빈 라덴을 찾는 집중 작업이 시작됐다

CIA의 구금 프로그램에 대한 세부사항이 알려진 후, 모하메드처럼 "가치가 높은 억류자"들은 2006년 관타나모만 수용소로 이송됐다.

FBI는 마침내 모하메드에 대한 접근을 허가받았다.

2007년 1월, 펠레그리노는 자신이 오랫동안 추적한 남자와 대면했다.

두 남자는 서로 테이블 맞은편에 앉았다.

펠레그리노는 9.11 테러 관련 정보를 끄집어내기 위해 대화를 시작했다.

그는 "1990년대 그를 기소하는 데 내가 관여했음을 그에게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펠레그리노는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 세부 내용은 밝히지 않으면서도 "믿거나 말거나, 모하메드는 유머감각을 가진 아주 매력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모하메드는 관타나모에서 열린 청문회에서 종종 "당당한" 모습을 보였다. 펠레그리노는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테러 용의자인 모하메드가 세간의 이목을 원하는 유명인사 "카다시안" 같으면서도, 후회하는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자백할까, 아니면 자신에게 유리하도록 재판을 최대한 활용하고 싶어할까? 펠레그리노는 "그는 자신이 저지른 일에 대해 아무렇지 않지만, 남에게 보여주는 '쇼'를 좋아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6일간의 대화 후, 모하메드는 충분히 말할 만큼 했다고 밝혔다. 펠레그리노는 "그게 끝이었다"고 회상했다.

9.11 테러 이후 정의를 실현하려는 시도는 매끄럽지 못했다.

뉴욕에서 재판을 열기로 한 계획은 여론과 정치적 반대에 부딪혀 흔들렸다. 뉴욕 주민이기도 한 펠레그리노는 "모든 사람들은 '모하메드가 우리 지역에 있는 걸 원하지 않는다. 관타나모에 붙잡아 두라'고 외쳤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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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타나모만 내부

그 후 관타나모에서 군사 재판이 열렸다.

그러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로 기지가 폐쇄되면서 재판 절차는 더욱 오랫동안 지연됐다. 이번 주에 더 많은 청문회가 있을 예정이지만, 결말은 요원해 보인다.

모하메드의 변호사 데이비드 네빈은 9.11 테러 20주년 기념일에 어떤 진전이 있음을 언론에 보여주기 위해 최근의 청문회 일정들이 짜여졌다고 믿는다. 네빈은 BBC와 인터뷰에서 "이 과정이 완전히 해결되려면 2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네빈은 사건이 시작된 2008년부터 변론을 맡아 왔다. 원래 계획은 거의 즉시 재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아직 재판이 시작하려면 멀었으며, "새로 임명된 판사는 우리 사건을 맡은 8번째 또는 9번째 판사"로 몇 번째인지는 세는 방식에 따라 다를 뿐이라고 말했다.

판사는 약 3만5000페이지의 과거 심리 기록과 네빈이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형사 재판"이라고 표현한 수천 건의 발의를 숙지해야 한다.

이것은 가장 논란의 여지가 크다.

주요한 이유는 CIA가 5명의 피고인들을 모두 비밀리에 구금해 "강화된 심문 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이는 일명 블랙 사이트에서의 일들이 증거를 오염시켰다는 논쟁으로 번졌다.

네빈은 미국이 "이들의 고문 목적으로 명확하게 정의된 프로그램을 조직하고 시행했다"고 말했다.

이러한 방법들은 수년간 시간을 끈 유죄판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수 있는 범위를 넓게 제공한다.

네빈은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피고 중 하나를 대변하는 일이 어떤지 자세히 밝히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처음에 모하메드가 미국인 변호사에게 변론을 맡기는 것에 "회의감이 깊었기" 때문에, 서로를 알아가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네빈은 모하메드가 미 해군기지의 극비 공간에 감금되자 변호사들은 창문 밖을 볼 수 없는 밴에 태워져 방향을 알 수 없도록 45분 동안 이동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하메드는 이제 이제 비밀이 덜한 캠프 5에 구금돼 있다.

법무팀은 재판 청문회 참석을 위해 파견되는 9.11 희생자 가족들이 어떤 사안에 민감한지 잘 알고 있다. 일부 가족들은 청문회 중 피고의 대리인 문제에 관해 네빈 등 변호사들에게 이의를 제기하지만, 다른 가족들은 이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에 대해 질문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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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하메드가 첫 재판 전 청문회를 갖자 기자회견을 하는 9.11 테러 희생자 가족들

네빈은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그들이 겪은 고통과 괴로움을 악화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고 있다"고 말했다.

네빈은 이것이 사형 사건이며 판돈을 올리기 때문에 재판부가 시간을 끌어 왔다고 믿는다. 그는 "정부가 이들을 처형할 계획이 없었다면 재판은 이미 오래 전 끝났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펠레그리노는 모하메드의 관타나모 군사 재판이 마무리되기를 바라며 FBI 은퇴를 3년 연기했었다.

그는 "FBI배지를 달고 있는 동안 이 사건의 결말을 봤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베테랑 특수요원인 펠레그리노는 정년을 맞고 막 FBI를 떠났다.

모하메드의 단서를 추적하며 세계를 횡단한 그는 이제 강한 패배감을 느끼며 1990년대에 모하메드를 체포했다면 9.11테러를 막았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의 이름이 매일 머릿속에 떠오르지만 별로 즐거운 생각은 아니"라며 "시간이 치유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