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집권 3기' 연 쥐스탱 트뤼도는 누구인가

마이크를 쥐고 있는 쥐스탱 트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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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의 자유당이 지난 20일 총선에서 또 다시 승리했다. 이로써 트뤼도 총리는 집권 3기를 열게 됐다.

다만 과반 달성엔 실패해 '여소야대' 정국은 이어지게 됐다.

현재까지 집계 결과 자유당은 158석을 얻어 과반인 170석엔 크게 못 미쳤다. 조기 총선을 치른 의미가 무색해졌다는 비판도 나온다.

쥐스탱 트뤼도 총리는 어떤 인물인지, 2015년 집권 이래 캐나다엔 어떤 변화를 가져왔는지 짚어 봤다.

'지도자가 되기 위해 태어난 남자'

1972년 캐나다 오타와.

리처드 닉슨 당시 미국 대통령과 피에르 트뤼도 캐나다 총리가 마주 앉았다. 피에르 트뤼도 전 캐나다 총리는 쥐스탱의 아버지다.

저녁 식사 자리였다. 국빈 방문차 캐나다 땅을 밟은 닉슨 대통령의 이날 건배사는 이랬다.

"미래의 캐나다 총리, 쥐스탱 트뤼도를 향해 건배!"

쥐스탱이 생후 4개월 때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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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아버지 품에 안겨 있는 어린 쥐스탱

닉슨 대통령은 쥐스탱이 먼 훗날 아버지의 전철을 밟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캐나다 방송 CBC에 따르면 당시 피에르 트뤼도 총리는 만약 자신의 아들이 나라를 이끌게 된다면 "대통령의 기품과 능력을 갖추길 바란다"고 답한 것으로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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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은 2000년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쿠바 지도자 피델 카스트로를 만났다

닉슨 대통령이 불명예스럽게 자리에서 내려온 반면, 피에르 트뤼도 총리는 1980년대 중반까지 자국 정치를 쥐락펴락했다. 이 시기, 캐나다 정치판의 열기는 뜨거웠다.

1968년 피에르 트뤼도 총리의 출마는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일명 '트뤼도매니아(Trudeaumania)'로 불리는 지지층이 형성된 게 이 때다.

피에르 트뤼도 행정부는 많은 업적을 이뤘는데, 프랑스어와 영어 모두를 캐나다 연립정부의 공식 언어로 채택한 것도 포함된다.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다

쥐스탱은 어린 시절부터 대중의 시선을 받으며 자랐다. 쥐스탱을 부르는 경호용 코드네임은 '메이플3'였다.

나이가 들수록 쥐스탱의 인생은 정치와는 멀어지는 듯했다. 그는 맥길대학교에서 문학을 전공한 다음,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UBC)에서 다시 교육학 학위를 받았다. 그리고는 교사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1998년 쥐스탱의 남동생 미셸이 산사태로 사망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 비극은 쥐스탱을 다시 공공의 스포트라이트 한 가운데로 몰아넣었다. 이후 쥐스탱은 산사태의 위험을 알리는 일에 앞장서게 된다.

2년 뒤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향년 80세였다.

쥐스탱은 아버지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읽었는데, 이 장면은 텔레비전을 통해 캐나다 전역에 중계됐다.

이 연설은 큰 호평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캐나다인들이 차기 총리 자리로 쥐스탱을 점찍는 계기가 됐다.

2004년 그는 퀘백 출신의 방송 리포터 소피 그레고리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세 자녀를 뒀다.

정치 커리어의 시작

쥐스탱은 아버지의 사망 후 점점 더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2007년 자유당 지역구 의원 후보로 지명됐고, 이듬해 당선됐다.

당시 그는 초선이었음에도 당의 지도자가 될 '떡잎'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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쥐스탱은 2011년 재선에도 성공했다.

자유당 대표를 맡아 달라는 제안을 여러 차례 거절한 끝에, 그는 2012년 결국 대표 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선거 과정에서 상대편으로부터 경험이 부족하고 정치적 입지가 불안정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쥐스탱은 2013년, 압도적인 표 차이로 당 대표가 됐다.

그는 2015년엔 자유당의 총선 승리로 나라의 총리 자리에도 올랐다. 당시 쥐스탱은 국민들에게 '진정한 변화'를 약속했다.

캐나다 학자 24명의 독립 평가에 따르면, 트뤼도는 첫 임기에 공약의 92%를 전부 또는 부분 이행했다. 지난 35년 사이 캐나다 행정부 중에선 가장 좋은 성적이다.

그러나 첫 임기 4년 동안 그는 안팎에서 많은 비판에 시달렸다.

쥐스탱은 젊은 시절 흑인 분장인 이른바 '블랙 페이스'를 한 사진이 공개돼 곤욕을 치렀다.

캐나다와 미국을 잇는 송유관 확장 사업인 '트랜스 마운틴'에 거액의 예산을 승인한 것도 논란이 됐다.

총리실이 부정부패 혐의를 받던 특정 기업의 편의를 봐 주라고 법무부 장관에게 압력을 넣은 사실이 드러나 비판에 휩싸이기도 했다.

캐나다는 지난 18개월간 코로나19 대유행으로 힘든 시기를 겪었다.

백신 접종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늦게 시작되면서 트뤼도 행정부는 또 한 차례 위기에 내몰렸다.

그러나 현재 캐나다는 세계 최고 수준의 백신 접종율을 기록하고 있다.

이 모든 상황을 차치하고, 자유당이 추가 15석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트뤼도 행정부의 미래엔 여전히 물음표가 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