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전쟁: 우리는 충분히 준비돼 있을까?

20세기 핵 위협을 인식한 인류는 정보 캠페인과 낙진 대피소, 경보 시스템 등 '민방위 체계'로 재해에 대비했다. 이를 부활할 때가 온 것은 아닐까?

영국 런던 시내에는 핵전쟁이 발발하면 사용할 벙커가 한 개 이상 준비돼 있다.

한 벙커 이름은 고대 그리스 시인 핀다로스(Pindar)에서 따왔다. 이 명칭에 숨겨진 뜻은 끔찍하기 짝이 없다.

기원전 335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테베 시(市)를 파괴할 당시 오직 핀다로스의 저택만이 건사했다고 전해진다. 알렉산드로스는 자신의 선조들을 찬양한 시를 쓴 핀다로스에 대한 감사를 표하고자 그의 저택만은 건드리지 않았다고 한다. 핵전쟁에 의해 런던이 초토화돼도 핀다로스 벙커만큼은 생존할 것을 암시하는 셈이다.

다만 핀다로스가 핵 벙커로 사용되기 위해 특별 설계됐는지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다. 이 시설물에 대해 공개된 사진 또한 영국 국방부가 정보공개법에 의거해 사실임을 확인한 내부 사진뿐이다.

핀다로스는 극도로 안전한 군사 작전본부일 뿐만 아니라 '정부의 지속' 또한 가능케 한다. 극심한 재난이 발생해도 정부 지휘권이 유지될 수 있도록 고안된 국가계획의 일부분이다.

하지만 고위 정치인과 군사 지휘부가 참사를 면하더라도, 그들이 보호하고 대표해야 할 국민들은 어떻게 될까? 우리는 과연 충분히 대비하고 있을까?

Image copyright Getty Images/AFP
이미지 캡션 뉴욕의 한 낙진 대피소

이러한 질문들은 미국 스티븐스 공대의 알렉스 웰러스타인 교수를 사로잡았다. 그는 정부의 지속에 대해 "관심없다. 그건 그들의 문제"라며 일반인들의 핵 위협 준비성에 집중했다.

웰러스타인 교수는 동료들과 함께 민방위를 재탄생 시키는 작업에 착수 중이라고 밝혔다. '민방위'란 군사적 공격 또는 자연재해가 발생할 시 국민들이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고안된 체계와 정보 캠페인을 일컫는다.

핵 공격의 두려움이 대중 문화와 정치권을 사로잡던 냉전 당시에는 민방위는 매우 빈번히 논의되던 주제였다. 21세기에는 핵 폭탄의 투하나 그 여파에 대해 논할 일이 거의 없지만, 더 이상 그래서는 안된다는 게 웰러스타인 교수의 주장이다

실제로 오늘날 지구상에는 아직 약 1만5000개의 핵무기가 존재한다. 그 중 대부분을 소유한 미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핵 전쟁의 위협이 고조되고 있다는 뜻이다.

웰러스타인 교수는 전쟁이나 테러집단 및 테러 지원국에 의한 소규모 피폭이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희박함을 인정하면서도, 혹시나 모를 가능성에 대비를 해 놓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Image copyright Alex Wellerstein
이미지 캡션 구글맵을 응용한 뉴크맵은 사용자에게 핵 폭발의 영향권을 보여준다.

그의 과거에 뉴크맵(핵무기 지도·Nukemap)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든 바 있다. 뉴크맵은 구글맵스를 응용해 대도시들을 포함한 지구상 어느 곳이든 핵무기가 폭발했을 경우 그 피해 범위를 예측하는 프로그램이다. 이 프로그램은 사람들이 핵 위협을 더 현실적으로 느끼도록 하기 위해 개발됐다.

웰러스타인 교수는 "(사람들은 핵 위협 대비와 같은) 노력을 비웃는다"며 프로그램 개발 의도를 설명했다. 그는 더 많은 사람이 핵 위협을 이해할 수 있도록 새로운 도구를 개발하고자 한다.

그는 "(가상현실)헤드셋을 착용하고 있다고 상상해보라. 맨해튼 스카이라인을 보고 있는데, 핵무기가 폭발해 눈 앞에서 버섯구름이 오르는 걸 보라"며 가상현실 등 신기술을 활용할 방안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핵 공격 이후의 생존 전략에 대한 지식을 전하는 수단으로서 실감나는 소설책을 펴낼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가 말하는 생존 전략은 매우 간단한 것도 포함하고 있다. 그는 대표적인 생존전략으로 ▲피폭 지역에서 벗어나려고 노력하기보다 실내에 머무는 편이 낫다 ▲태풍 경보만 울려도 교통은 쉽게 마비되듯 위기 상황에서는 교통체증이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핵폭발은 먼지와 잔해물을 끌어모았다가 방사능 처리하여 주변 지역에 투명한 '낙진'으로 내뿜는 특성이 있다 등을 꼽았다.

웰러스타인은 "건물의 중앙에서는 보호 효과가 급증한다"며 "그 위치에서 몇 시간만 있어도 피폭 위험이 급격히 감소한다"고 덧붙였다.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서울의 한 지하철역 입구에 부착된 '대피소' 표시

북한이 미국 본토를 타격 가능한 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해 박차를 가하면서 그 성과를 지속적으로 과시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북한과 미국 정상 간의 갈등은 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두 국가의 타격 범위 내에 위치한 몇몇 지역들은 핵 위협에 대해 진지하게 대비하고 있다. 일본에서는 소규모 마을에서도 핵 공격 대비 대피훈련을 실시하고 있다. 하와이와 일부 미 서부 지역 정부기관들은 핵폭발에 대비한 주민 행동지침서를 수정하기도 했다. 북한으로부터 직접적인 위협을 받고 있는 미국령 괌 또한 최근 방사능에 대한 대응방법을 배포했다. 미 국토안전부(DHS)도 최근 재해대비정보 웹사이트를 재구성해 핵폭발에 대한 안내를 제공하고 있다.

괌에서 배포된 행동지침서에는 ▲눈이 멀 수 있으니 광채 혹은 불덩이를 직접 바라보지 않는다 ▲최대한 빨리 대피한다. 방사성 낙진은 수 마일 이상 이동한다▲거리, 가림, 시간 세 가지 안전 요소를 기억한다▲몸에 묻은 방사성 물질을 가능한 빨리 깨끗이 닦아낸다 ▲오염된 옷은 비닐봉지에 넣어 밀폐하거나 묶어 놓는다 ▲많은 비누와 물을 이용해 샤워한다 ▲피부를 긁거나 문지르지 않는다 ▲컨디셔너 제품은 방사성 물질을 머리에 결속시키므로 사용하지 않는다. ▲코를 살살 풀고, 깨끗한 젖은 수건으로 눈꺼풀을 닦고, 귀도 부드럽게 닦아낸다 등의 지침이 수록돼 있다.

하지만 이 외 대부분 국가에선 민방위의 중요성이 주요 의제로 오르지 못하고 있다.

영국의 경우 1980년대에 이르러 다양한 민방위 대비책을 마련해 놓았다. 일례로 중앙 정부가 미바됐을 때 각 지역을 통솔한 지자체장 시스템과 같은 장비들은 '정부의 지속'을 보장하는 데 일조했을 것이다. 이 밖에도 공습경보 사이렌과 정보 캠페인 등이 국민들을 위해 마련돼 있다.

예를 들어 사이렌들은 수천개 지역에 분포돼 있었다. 이것으로 임박한 미사일 공격에 대해 경고하고, 방사능 수치가 충분히 가라앉았을 때 이를 알리는 용도로 사용될 수도 있다.

실제로 핵 전면전이 발발했다면 이러한 냉전 시대 기반시설이 쓸모가 있을까? 다행히도 이 시설들은 실제 상황에서 시험대에 오를 일이 없었다.

영국 싱크탱크인 채텀하우스의 패트리샤 루이스 국제보안국장이 "(핵 위협이라는) 주제는 다른 어느 비상사태와도 매우 달라 어려운 문제다. 너무나도 어렵다"고 말했을 정도로 핵 전쟁에 대한 문제는 묘책이 없는 상황이다.

세계 2차대전 이후 이어진 냉전시대의 영국의 군사·민방위 역사를 다룬 '애프터 더 밤(After the Bomb)'의 저자인 매튜 그랜트에 따르면 과거 영국의 민방위는 적은 예산과 작은 규모로 위협이 코앞에 다가올 때까지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느린 체계였다.

영국 왕립합동군사연구소(RUSI)의 제니퍼 콜 선임연구원에 따르면 '국가위협 등록부'에 테러단체에 의해 핵폭탄이 터질 가능성은 "낮지만 무시할수 없다"는 내용이 담겨 있지만, 핵 전쟁은 더 이상 국가위협으로 등재돼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핵 공격을 최악의 상황으로만 간주하는 것은 더 이상 합리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다.

Image copyright AFP
이미지 캡션 체르노빌 참사를 기억하기 위해 불가리아에 설치된 미술작품. 체르노빌 참사는 방사능이 미칠 수 있는 피해의 정도와 기간을 각인 시켰다.

RUSI의 톰 플랜트 핵 확산 정책 대표는 "냉전이 세상을 주도했던 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이렇게 다급한 위기감이 없다"고 말했다

20세기 정부들이 설립한 대부분의 계획과 준비성은 사라지거나 다른 위기 대처 방침에 편입돼 버렸다는 뜻이다. 그는 15분 이내의 준비를 거쳐 바로 미사일을 발사할 수 있었던 냉전시대와 달리 현재 배치된 핵무기로 무장한 영국의 '트라이던트 핵 잠수함'들의 '발사 준비 기간'이 수일로 늘어난 점을 예로 들었다.

콜 연구원도 심각한 홍수 또는 테러 공격과 같은 재난에 대한 근대 대비책들도 과거 냉전 시대 계획들로부터 빌려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그러면 오늘날 어떤 핵전쟁 대책이 마련돼 있을까? 영국의 가장 핵심적인 규제로는 '방사능에 관한 위기대처 및 정보공개 법률(REPPIR)'가 있다. 포츠머스와 사우샘프턴 등 핵 잠수함이 정박할 수 있는 항구도시에는 REPPIR에 의거한 방사능 누출 사고에 대비한 구체적인 위기대처 계획을 갖추고 있다.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서울 시내 지하철 역사에 준비 된 가스 마스크 등 각종 구호장비들

포츠머스에 위치한 해군 기지는 심지어 오래된 공습경보 사이렌을 혹시 모를 사태를 위해 정기적으로 시험하고 있다. 영국 다른 지역에는 유해화학물질이 공장 따위로부터 누출될 경우 주민들에게 알리기 위해 경보 체계를 구축해 놓았다.

핵폭발의 여파를 최대한 줄이는 데에 과연 개인의 노력이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지는 아직 의문이다.

물론 뉴욕시를 포함해 아직 세계 곳곳에는 낙진 대피소가 마련돼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중 일부는 다른 목적의 시설물로 변경이 돼 인근에서 핵무기가 폭발했을 경우 몸을 피하기에는 적합하지 않은 곳으로 낙후됐다.

국제적십자위원회(ICRC)는 핵 무기 피폭을 포함해 각 나라의 다양한 재난 상황에 대처할 방법을 정기적으로 검토한다. 하지만 ICRC의 무기오염 담당자인 조니 네메는"폭발 직후 해당 지역에 대해서는 거의 아무 조치도 취할 수가 없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인도적 조치들은 몇 주가 지난 후에나 지원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상황에서는 국경이 닫히고 비행이 금지되기 때문에 구호단체들이 생존자들을 지원하기 더욱 어려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Image copyright AFP/getty image
이미지 캡션 한 때 낙진 대피소로 사용되였던 북아일랜드에 위치한 시설. 아일랜드 정부 소유의 이 건축물에는 보관음식이 비치되어 있다

핵폭발이 현대 도시에 초래할 참혹한 여파는 끔찍한 가능성에 대비할 희망조차 잃게 만든다. 그러나 웰러스타인 교수를 비롯해 민방위 체계를 믿는 이들에게는 아직 한 줄기 희망이 남아있다. 시민들이 더 잘 준비하고 정보를 갖춘다면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핵전쟁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은 시나리오다. 하지만 현재 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발생했을 때를 조금이라도 더 대비해 놓을수록 최선의 선택을 내릴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관련 토픽

관련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