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핵무장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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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시민단체 활빈단 회원이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 기념행사에서 전술핵 재배치 요구 플랜카드를 들고 있다.

북한이 역대 최대 규모의 6차 핵실험을 실시하는 등 도발의 수위가 높아지자 한국도 자체적으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보다 힘을 얻고 있다.

이제 한국의 핵무장론은 과거의 극소수 급진주의자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중도를 표방하는 정당에서도 핵무장의 필요성을 긍정하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여전히 반대가 강한데다가 정부 또한 핵무장에 대해서는 분명히 선을 긋고 있기 때문에 한국의 핵무장이 가까운 시일 내에 추진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러나 한국의 핵무장론은 앞으로도 계속 고개를 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 핵무장론의 역사

비록 성공한 적은 없지만, 한국의 핵무장 추진 역사는 대한민국 자체의 역사와 궤를 같이한다.

이승만 전 대통령은 1960년 국무회의에서 미국의 원조가 끊어질 때에 대비하여 원자력을 개발해야 한다고 언급한 바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을 시도했지만 미국의 적극적인 제지로 포기했다.

역사적으로 미국이 한국의 핵개발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해왔기 때문에 한미동맹을 중요시하는 한국 보수층 내에서도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이들은 소수에 불과했다.

그러나 북한이 점차 완전한 핵보유국에 가까워지면서 한국에서도 핵무장 주장은 결코 '소수의견'이 아니게 됐다.

"우리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보수 정치인들은 미국이 1991년 한국에서 철수시킨 전술핵 미사일을 다시 주한미군에 배치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이를 거절할 경우 자위권 차원에서 핵무장도 불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만약 미국이 핵우산을 핑계로 끝끝내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 안 할 경우에 자체 핵무장하는 그런 국제적 명분도 우리는 가질 수가 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18일 당내 북핵위기대응특별위원회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같은 당의 원유철 의원은 지난 5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우리의 운명을 지키기 위해 NPT를 탈퇴해야 한다"고 말했다. 원 의원은 과거부터 꾸준히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주장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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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원유철 당시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2016년 4월 총선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심지어 중도 성향으로 분류되는 국민의당의 이언주 의원까지 지난 8월말 "대북억제력과 한반도 전력균형을 위해 핵무장이 불가피한 게 아닌가"라고 말했다.

미국이 과연 LA를 포기하고 서울을 구할까?

미국은 단 한 번도 한국의 자체 핵무장을 찬성한 적이 없다. 북한이 매번 핵실험을 할 때마다 전술핵 재배치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곤 했지만 여기에 대해서도 항상 완곡하게 거부해왔다.

그 대신 미국은 북한이 동맹국인 한국을 핵으로 공격할 경우 미국 또한 핵으로 응수하겠다는 '확장억제'를 약속해왔다. 핵폭탄을 투하할 수 있는 전략폭격기 등을 순환배치하거나 합동훈련에 투입하는 것이 그 예다.

그러나 북한의 핵 능력이 높아지면서 미국이 과연 자국의 피해를 감수하고서도 동맹국을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일기 시작했다.

일찍부터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했던 보수 정치인인 정몽준 전 국회의원은 2016년 자신의 블로그에 쓴 글에서 이렇게 질문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로 미국 서해안의 주요 도시들을 타격할 정도의 핵능력을 갖추게 되면… 미국이 과연 LA나 샌프란시스코를 포기하고 서울을 구할 것인지 우리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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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정몽준 전 국회의원이 2015년 런던에서 열린 스포츠 비즈니스 회의에 참석한 모습

자체 핵무장을 주장하는 근거는?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1월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이러한 생각은 한국 보수층 전반으로 확산됐다. 선거 운동 당시 주한미군의 한국 주둔에 대해 비판적이었으며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다소 급진적이긴 하지만 한국의 자체 핵무장 필요성에 대한 주장이 전혀 근거 없는 건 아니다. 몇몇 국제정치 전문가들 또한 핵무장의 필요성을 어느 정도 긍정한 바 있다.

부산대 정치외교학과 로버트 켈리 부교수는 지난해 3월 대선 캠페인 중이던 도널드 트럼프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을 용인하는 발언으로 구설수에 오른 것을 두고, 핵무장론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호주의 국제정치 연구소 블로그에 쓴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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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부산대 로버트 켈리 교수가 2017년 3월에 열린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모습. 켈리 교수는 당시 BBC와의 생방송 인터뷰 중 딸이 방에 들어오면서 발생한 방송사고로 일약 인터넷 스타가 됐다.

그 까닭으로 켈리 교수가 첫 번째로 제시하는 것은 바로 확장억제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신뢰성의 문제다.

"미국이 서울 또는 도쿄를 위해 평양이나 베이징에 핵공격을 가할 것인가? 내 생각엔 그렇지 않다." 켈리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정몽준 전 의원의 지적과 정확히 일치하는 것이다.

한국과 일본이 모두 안정적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이며 핵무기의 복잡성을 다룰 만한 능력이 충분하다는 것도 핵무장을 긍정적으로 고려해볼 만한 이유가 된다고 켈리 교수는 주장한다.

무엇보다도 켈리 교수는 동북아시아의 군비 경쟁은 한국과 일본이 핵무장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다고 주장했다. 동북아 군비 경쟁은 이미 현실이기 때문에 군비 경쟁에 대한 우려는 핵무장에 대한 적절한 반론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핵무장을 논하는 '대화론자'

한국의 북한 전문가 중에서도 한국에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근래 들어 꽤 늘었다. 세종연구소의 정성장 통일연구전략실장은 그중 두드러지는 인물.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는 한국정부가 남북한 핵균형을 이루기 위해 독자적 핵무장 결단을 내리는 것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할 수 있다." 정성장 실장은 23일 내놓은 논평에서 이렇게 말했다.

'북한을 완전히 파괴할 수 있다'는 발언으로 충격을 준 트럼프 대통령의 유엔 총회 연설에 '망발에 대한 대가를 반드시 받아낼 것'이라고 응수한 김정은 위원장의 성명 발표로 한반도 내의 군사적 긴장이 극도로 고조될 것이라며 내린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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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평양 시민들이 지난 22일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발표한 성명에 대한 방송을 보는 모습

정 실장이 핵무장의 필요성을 주장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작년 1월경 그가 처음으로 한국의 핵무장을 주장했을 때 북한학계는 큰 충격을 받았다.

당시 연합뉴스는 "'핵보유 주장'을 금기로 여기던 대북 전문가 그룹에서 자체 핵무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된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라고 평했다. 게다가 정 실장은 통상 북한과의 대화와 협력을 중시하는 '대화론자'로 분류되곤 했기에 충격이 더 컸다.

북한의 핵실험이 계속되면서 이제 '한반도 비핵화'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가 돼 버렸으며 오히려 비핵화를 추구하다가 한반도가 전쟁에 휘말릴 수 있다고 정 실장은 경고한다.

정성장 실장은 한반도에 지금과 같이 긴장이 격화되는 까닭을 한국에 핵무기가 없는 데에서 찾는다.

"북미 대립이 계속 격화되는 것은 한국이 북한에 (핵으로) 대적할 능력이 없어 북한이 한국을 무시하고 미국만을 상대하려고 하는 데 기인하는 바가 크다." 정 실장은 23일 논평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미국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

그러나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한 반대는 여전히 거세다. 가장 먼저 제기되는 반론은 '과연 실현이 가능한 이야기냐'는 것.

"한국이 핵보유국이 된다는 것은 북핵 문제를 넘어서 미국의 전세계적인 핵 비확산정책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행위다." 김종대 정의당 국회의원은 한국의 자체 핵무장에 대해 이렇게 BBC에 답했다.

"(핵무장을 추진하면) 상당한 고립이 불가피해진다. 지난 반세기 동안 한국이 누려온 평화와 번영은 (한국이) 국제사회 속에서 더불어 성장할 수 있었기 때문인데 (핵무장을 추진하면) 우리의 국가 기반이 송두리째 뽑히는 셈이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국가이며 따라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을 받는다. 핵무장을 추진할 경우 각종 국제제재에 의해 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

북핵에 맞서 한국도 핵무장을 하겠다면 '한반도 비핵화' 원칙을 스스로 어기는 꼴이라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장도 이와 같다.

"북핵에 대해 우리도 핵으로 맞서겠다는 자세로 대응한다면 남북 간에 평화가 유지되기 어려울 것이다." 문 대통령은 지난 15일 CNN에서 전술핵 재배치와 핵무장론에 대한 질문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Image copyright Spencer Platt/Getty
이미지 캡션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1일 유엔 총회에서 연설하는 모습

확장억제에 대한 우려에도 불구고 김종대 의원은 여전히 확장억제는 유효하다고 말한다.

"유사시에는 전세계 어느 곳보다도 빠르게 확장억제를 전개할 수 있는 미국을 놔두고 핵무장의 길을 간다고 하면 미국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동맹국의 일탈행위로 볼 것이다."

김종대 의원은 한국 내에도 많은 미국 시민들이 살고 있다는 사실도 지적했다.

"미국 본토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한국에 있는 미국 시민의 안전을 포기한다는 발상은 미국으로서는 생각할 수 없는 대안이다." 미국이 만일 그런 선택을 하게 된다면 패권국의 지위를 포기하는 것이라고 김 의원은 말했다.

앞으로도 계속될 논쟁

켈리 교수는 북한의 핵개발 뿐만 아니라 중국과 러시아가 지금과 같이 강경일변도를 걸을 경우 핵무장 이슈는 계속 살아남을 것이라며 자신의 글을 끝맺었다. 당시는 북한이 5차 핵실험을 끝낸 직후였고 그 사이 북한은 역대 최대 규모의 여섯 번째 핵실험을 실시했다.

긴장의 수위가 계속 높아지고 있는 지금으로서는 상상하기 어렵지만 긴장이 어느 정도 완화되고 나면 핵무장에 대한 논의는 다시 잦아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북핵 문제를 완전히 해결하지 않는 한 핵무장론은 계속 고개를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