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 올해도 '노벨상의 저주'... 열혈 팬들 상심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년째 노벨문학상 '만년 후보'다. Image copyright AFP/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무라카미 하루키는 수년째 노벨문학상 '만년 후보'다.

올해도 아니었다. 2017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는 또 무라카미 하루키가 아니었다. 하루키가 노벨상을 타는 것을 보는 것이 소원인 '하루키스트 (하루키 열성 독자)'는 올해도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하루키 바라기'

무라카미 하루키는 특유의 사색과 철학이 담긴 소설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일본 작가다.

일본 내 많은 사람이 수년째 하루키가 인류 최고의 문학상인 노벨문학상을 받기를 바라왔고, 이들이 노벨문학상 수상자 발표를 기다리는 것은 일종의 연중행사가 된 지 오래다.

하루키스트로 알려진 하루키 열혈 독자들은 일본 전역에서 모서리가 잔뜩 접힌 하루키 책을 가지고 와서 함께 책을 정독하는데, 이맘때면 이들은 또 함께 모여 두 손 모아 발표를 기다린다.

하루키 소설의 모티프인 재즈를 틀어놓고 위스키를 마시며 기다린다. 이들을 취재하는 언론의 관심도 뜨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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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6년 밥 딜런이 수상자로 선정되자 탄식하는 하루키스트

목요일 밤 도쿄의 한 사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루키스트들이 모여 발표를 기다리고 있었고, 200여 명의 취재진이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기대에 잔뜩 부풀어 파티용품도 준비해왔다.

하지만 올해도 아니었다.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가 수상자로 선정됐다. 마이니치신문은 곳곳에서 한숨이 터져 나왔고, 잠시 후 형식적인 박수 소리가 들렸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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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비록 수상자가 하루키는 아니었지만 일부는 가져온 폭죽을 터뜨렸다.

도쿄의 대표 서점인 키노쿠니야 서점 역시 하루키 수상을 기대하며 특별 코너를 마련해 대표 소설 30개를 전시해놓았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서점 직원들은 예상치 못한 결과에 당황하며 서둘러 하루키 코너를 철거했다. 이 자리는 이시구로의 작품으로 채워졌다.

이시구로의 일본 출판사 역시 트위터에 "우리도 꽤 당황했다"고 썼다.

한편 노벨상 위원회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하루키 열성 팬들을 겨냥한 글들도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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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해 들러리일 뿐

하루키가 매해 노벨문학상을 놓치자 일본에서는 심지어 하루키 수상이 좌초돼야 비로소 일본에 가을이 시작된다는 농담도 생겼다.

한 트위터 사용자는 "무라카미 하루키가 노벨문학상 수상에 실패하고 하루키스트가 실망감에 무릎을 꿇어야 난 가을의 향기가 느껴지더라"는 글을 올렸다.

하루키처럼 최고라는 평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수상 운이 없고 만년 후보인 문화계 인사는 많다.

영화계에서는 에이미 애덤스와 피터 오툴이 그렇다. (피터 오툴은 2003년 공로상을 받기는 했다). 그리고 음악 분야에서는 비요크와 케이티 페리가 수상 운이 없는 대표적인 아티스트다.

하지만 '저주'를 깬 사례도 있다. 23년을 기다린 끝에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작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남우주연상을 탄 것이다. 하루키도 못하리란 법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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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도 일본인?

이시구로는 영국 시민이며 영미문학의 대표적인 작가다.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다섯 살 되던 해 영국으로 이주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언론은 그의 일본 혈통을 강조했다.

산케이신문은 이시구로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에 이어 "일본 태생의 세 번째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보도했다.

다른 매체들은 그가 기자회견에서 일본인이라는 정체성이 그의 세계관에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한 것과 그의 초기 작품의 무대가 일본이라는 것을 강조해서 보도했다.

서점을 운영하는 사이토 타수쿠는 니칸스포츠에 하루키가 상을 타지 못해 아쉽지만, 이시구로의 수상을 받아들이는 것은 그에게 "일본인의 피가 흐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온라인상에서는 비판도 거세다. 외국에서 자란 일본인을 일본인으로 받아들이면서 이중국적 논란으로 결국 사퇴한 민진당 렌호 대표 같은 혼혈 정치인을 비판하는 것은 이중잣대라는 것이다.

1957ry라는 아이디의 트위터 이용자는 "가즈오 이시구로는 영국에서 자랐고 영국 시민권자인데 노벨상을 받은 세 번째 일본인이라고 한다. 하지만 일본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본 시민권자인 렌호는 무시한다. ... 일본은 수치스러운 나라다"라고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