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바 스코샤 흑인: 토지 소유권 획득할까?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공동체인 노스 프레스턴 방문을 환영하는 내용의 표지판 Image copyright COURTESY NORTH PRESTON'S FUTURE
이미지 캡션 캐나다 동부 노부 스코샤에 있는 노스 프레스턴은 캐나다에서 가장 오래된 흑인 공동체 중 하나다

18세기 '흑인 충성파(Black Loyalists)'라 불렸던 노예 출신 병사들의 후손들은 캐나다에서 대대로 살아왔지만, 아직도 '내 땅'이라 부를만한 곳이 없다. 조상들이 당시에 캐나다를 지배하고 있던 영국 왕실로부터 받은 토지가 흑인이라는 이유로 인정받지 못해 왔기 때문이다.

바이올렛 다우니(70·여)는 현재 살고 있는 땅에서 남편과 함께 50년 동안 살아왔다. 이 땅은 남편 가족 대대로 오랜 기간 내려온 곳이다.

하지만 다우니 가족은 이 땅을 차지하고 거주하고는 있지만, 소유권은 없다.

이들이 사는 곳은 캐나다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흑인 공동체 중 하나인 노바 스코샤(Nova Scotia) 주(州)에 있는 노스 프레스턴(North Preston)이다. 이곳에는 다우니 가족과 같은 신세의 토지 소유권이 없는 흑인 가족들이 많다. 심지어 가족 대대로 내려온 토지임에도 불구하고 법적 소유권을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들은 비록 이곳에 거주하고 세금까지 내지만, 이를 법적으로 팔 수는 없다. 이는 후손에게 물려줄 수도 없으며, 주택담보 대출도 받을 수 없다는 뜻이다.

'흑인 충성파'에 약속됐던 "자유와 농장"

이 문제의 발단은 미국 독립 혁명이 끝나갈 무렵인 178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미국 독립군을 상대로 고전하던 영국 국왕은 흑은 노예들이 영국군을 도와 싸우는 대가로 자유를 약속했다. 이들은 훗날 '흑인 충성파'라 불리게 됐다.

그러나 미국이 독립에 성공하면서 패잔병이 돼버린 '흑인 충성파'들은 당시 '영국령 북미'라 불리던 캐나다로 도피했고, 이들은 "자유와 농장 한 개(freedom and a farm)"를 받기로 돼 있었다.

'흑인 충성파'들이 캐나다로 이주하는 과정은 뉴욕에서 노바스코샤로 항해한 흑인 난민의 이름과 인상착의 등을 기록한 '니그로에 관한 책(The Book of Negroes)' (니그로: 흑인을 비하하는 말)이라는 공식 문건에도 명시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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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34년 촬영된 노스 프레스턴의 모습

이들이 받은 땅은 연안 지방 노바 스코샤에서도 대체로 최악의 땅이었다. 대부분 바위투성이고 척박한 먹고 살기 힘든 땅이었다.

그마저도 백인 거주자들과 달리 공식적인 소유권은 주어지지 않고, '사용권'에 가까운 제한된 권한이 주어졌다.

'흑인 충성파'가 정착한 뒤 수십 년에 걸쳐 더 많은 흑인이 공동체에 도착했다. '자메이카 마룬(자메이카 섬에서 추방당한 해방 노예 집단)'에 이어 19세기 노예 탈출 비밀 조직 '지하철도(Underground Railroad)'를 통해 건너온 흑인들도 노바 스코샤에 들어왔다.

이들은 노스 프레스턴과 이스트 프레스턴, 체리 부루크, 링컨빌, 서니빌 등의 공동체를 설립했고 오늘날에도 대표적인 흑인 공동체로 존재한다.

토지 소유권을 해소하기 위한 주정부의 노력

토지 소유권의 부재는 아직도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지난 9월 말 노바스코샤 지방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발 벋고 나섰다.

이들이 거주지에 대한 명확한 토지 소유권을 획득할 수 있도록 앞으로 2년에 걸쳐 270만 캐나다달러(약 23억2208만원)를 지원할 계획이다. 이 예산은 토지 소유권 해결을 위한 비용과 행정을 지원하는데 투입될 예정이다.

이번 지원금은 '캐나다 내 반(反)흑인 인종차별에 관한 UN 보고서'가 해당 문제 해결을 촉구한 직후에 편성됐다.

'노바 스코샤 변호사협회(Nova Scotia Barristers' Society·이하 NSBS) 데럴 핑크 상임이사는 지원금이 "굉장히 의미 있고, 매우 큰 발전"이라고 평가했다.

2014년부터 토지 소유권 문제 해결에 나선 NSBS는 그동안 소유권을 주장하고 싶은 거주자들에게 무상으로 도움을 제공해왔다.

초기에는 핑크 상임이사도 이 사안에 대해 거의 아는 것이 없었다며, 자신의 무지에 대해 "다소 부끄럽다"고 털어놨다. 그는 "이것이 얼마나 심각한 문제인지 인식하지 못했습니다"라며 "그 어떠한 지원도 발전도 없이 이 문제가 이렇게 오래 지속돼 왔는지 몰랐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2015년 노바 스코샤 언론학과 학생들이 제작한 '무제(Untitled)'라는 멀티미디어 프로젝트가 대중의 이목을 끌기 전에는 대부분 사람이 '흑인 충성파' 후손들의 고충에 대해 몰랐다. 이 프로젝트는 다우니 가족을 포함한 다수의 사례를 대중에게 알렸다.

캐나다 정부에 따르면 모든 토지에 땅문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확히 몇 명의 거주자들의 소유권이 명료화돼 있지 않은지는 정부조차 모른다. 지역 내 대략 800개의 토지 구획이 제대로 된 소유권이 없는 것으로 추정된다.

캐나다 정부는 "역사적으로 인종차별 때문에 소유하고 있는 땅에 대한 법적 소유권 획득이 저지됐다"고 인정했다.

이 문제는 어쩌다가 이토록 오래 방치된 것일까?

1963년 노바 스코샤 지방정부는 '토지 소유권 명료화 법안(Land Titles Clarification Act)'을 통과시켰다. 소유권을 간편하게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그 목적이었다.

그러나 이 법안은 한 번도 제대로 시행되지 않았고, 거주자들은 그 과정이 부당하고 차별적이라 생각했다.

일부 부동산은 소유권 분쟁에도 얽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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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30년대 노스 프레스턴에서 거주하고 있던 토마스 빌즈 가족

소유권이 불명확한 일부 토지들은 재분할 신청이나 측량도 없이 많게는 다섯 채의 집이 한 구획 위에 지어져 있기 때문에 재산세와 관련한 혼란 또한 발생했다.

핑크는 "3세대 전 누가 여기서 거주 했는가? 누가 누구와 결혼했는가? 누가 누구와 법적 관계에 있었는가? 이 관계에서 발생한 자녀들은 누구였는가?"와 같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소유권을 신청하기 위해서는 자산 조사를 거쳐야 하는데, 가난한 거주민 입장에서는 이 조사 비용조차 감당하기 어려운 비용이 될 수 있다.

핑크는 "보통 우리가 상대하는 사람들은 궁핍한 살림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통용되는 법과 충돌하는 이 공동체의 문화 실상을 현재의 법체계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전했다.

예를 들어 이 공동체에서는 유언을 남기는 일이 흔치 않다. 또 장자가 아닌 막내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전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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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노스 프레스턴의 집들

노스 프레스턴에서 삶의 대부분을 보낸 네빌 프로보는 이곳이 "유대가 긴밀한, 사랑이 넘치는 공동체"라면서도 이번에 발표된 정부 지원 계획을 마냥 환영할 수 없다는 심정을 밝혔다. 1840년대에도 노스 프레스턴 주민들은 노바 스코샤의 부총독에게 소유권 확인을 요청하는 진정서를 제출했지만 실패했기 때문이다.

'노스 프레스턴 토지 되찾기 운동(North Preston Land Recovery Initiative)'의 봉사자이기도 한 그는 "우리 주민들은 1800년대에 이미 똑같은 위원회를 구성해 똑같은 것들을 위해 싸웠다"고 말했다.

아울러 프로보에 따르면 토지 소유권의 부재는 역사적으로 흑인 공동체였던 이곳에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노스 프레스턴과 이스트 프레스턴 지역 공동체는 점점 부유해지는 주변 지역 때문에 개발 압박을 받고 있다. 노바 스코샤 아프리카계 공동체 아프릭빌(Africville)는 1960년대에 개발을 위해 파괴되기도 했다. 과거 이곳에 거주했던 사람들은 2010년에야 핼리팩스(Halifax)시로부터 사과를 받았다.

바이올렛 다우니는 BBC와의 전화 통화에서 "우리 이름으로 된 땅을 소유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기도할 뿐이다. 너무나 오랜 기간 싸워왔기 때문에 매우 의미 있을 것"이라며 "나의 자식과 손자들이 커서 우리 곁에 집을 짓고 살았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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