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 환자의 성적 지향성 확인 의무화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가 16세 이상 환자의 진료 시 개인의 성 지향성을 확인하도록 하는 새로운 정책을 발표했다.

NHS 잉글랜드(NHS England)는 이번 가이드라인의 목적은 성 지향성에 따른 차별을 예방하는 것이며, 만약 환자가 원치 않을 경우에는 성 지향성을 확인하지 않도록 권고했다.

가이드라인은 의료기관뿐만 아니라 각 지역의 사회복지 기관담당자에게도 적용할 방침이다.

NHS 대변인은 "보건당국과 사회복지기관은 평등법(the Equality Act)에서 보장하는 차별금지 의무를 준수해야 한다"며 새 가이드라인을 통해 NHS가 평등법을 더 준수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사생활 침해' 논란

NHS는 지역보건의(GP)를 포함한 모든 대면 진료 시 환자의 성 지향성을 확인하도록 하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영국 가정의학전문의협회는 "사생활 침해의 소지가 있다"며 우려를 나타냈다.

가정의 전문의협회의 피터 스윈야드 대표는 BBC와의 인터뷰에서 "환자 중 특히 고령 환자의 경우 성 지향성 확인 여부가 치료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고 말했다.

스윈야드 교수는 지역 보건의(GP)에서 필요하면 개인의 성 지향성을 확인할 수 있지만, 이를 의무화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일례로 성 전문치료 병원에선 이를 반드시 확인해야 하지만, 사마귀 치료 같은 피부과 치료 때에도 성 지향성을 확인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그는 덧붙여 환자들이 보건의에게 진료를 받는 시간이 짧고, 성적 지향성을 상담할 일이 드물다는 것도 강조했다.

법적 의무화

반면, NHS 는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의료기관이 개인의 성적지향성을 존중하는 새로운 표준을 만들 것을 기대한다. NHS 는 성 지향성 확인 의무화를 2019년까지 영국 전역에 확대할 방침이다.

가이드라인은 의료진에게 환자를 처음 진료할 때 다음의 문항을 확인하도록 했다.

'다음 유형 중 자신과 가장 적합한 항목을 선택해 주세요.' 보기 유형에는 이성애자, 게이, 레즈비언, 양성애자, 다른 성적 지향성, 잘 모르겠다, 응답할 수 없다가 있다.

NHS에 따르면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LGB)는 정신적인 문제와 자해 혹은 자살의 위험으로부터 더 많은 관심과 보호가 필요하다.

NHS는 공공기관은 레즈비언, 게이, 양성애자가 평등법(2010)에 보장된 기본권을 보장할 의무가 있음을 강조했다.

또 이번 가이드라인을 통해 "개인의 성 지향성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함으로써 LGB 커뮤니티의 문제와 필요를 파악해, 그들에게 더 적합한 의료· 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

한편, 한국에는 영국처럼 개인의 성적 지향성, 장애, 인종, 종교, 출신 국가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법이 없다.

헌법에 '성별, 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라는 조항이 있지만, 성적 지향성, 인종 등 다양한 차별 행위를 금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한국에서도 지난 2007년부터 차별금지법 입법을 추진해 왔다, 하지만 일부 단체의 반발로 번번이 무산됐다. 특히 동성애를 반대하는 일부 종교단체는 차별금지 사유에 성적 지향성을 포함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중대한 변화

영국 맨체스터의 LGBT 재단 폴 마틴 대표는 NHS의 가이드라인을 환영하며 이번 결정은 "성 소수자들이 의료 및 복지에서 겪는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중요한 도약"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일부는 공개적인 장소에서 개인의 성 지향성에 대해 질문받는 것을 꺼릴 수 있다"며 특히 사람이 많이 있는 병원접수처 등에서 질문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본인이 자신의 성 지향성을 밝히기 원치 않을 경우에는 '응답 거부'를 선택해야 하며, 만일 성 지향성에 대해 확신이 없거나 전문가의 진단이 필요할 경우 설문 문항 중 '잘 모르겠다'를 표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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