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가장 비밀스러운 나라와 대화하기: 북미 간 비공식(1.5 트랙) 대화 어떻게 진행되나

북한 고위급 정부 관계자들과 미국 민간 전문가들이 회동하는 '1.5트랙'
이미지 캡션 북한 고위급 정부 관계자들과 미국 민간 전문가들이 회동하는 '1.5트랙'

2013년 9월 25일, 독일 수도 베를린의 한 호텔. 북한 고위급 정부 관계자들과 미국 전 정부관계자들이 현지 식당으로 들어선다. 일 때문에 만나는 관계지만 가족 안부를 묻는 등 한담하는 건 여느 저녁 모임과 다를 바 없다.

북한 정부 관계자들과 미국 민간 전문가들이 회동하는 '1.5 트랙' 반관반민 채널 대화는 2시간 가량 저녁식사로 시작된다. 참가자 수가 양국을 합해 보통 15명을 넘지 않고, 참가자가 매년 크게 바뀌지 않기 때문에 다수가 서로 안면이 있다. 참가자들은 다음날 격의 없이 의견을 나눈다.

이 회동은 북측 입장에서는 공식 대화(1 트랙)이고, 미국 입장에서는 전 정부 관계자들이 참여하는 비공식 대화(2 트랙)이기 때문에 그 중간인 1.5 트랙으로 불린다.

참가자 모두 언론에 잘 알려진 인물이지만 건물 내에서 주로 회동하고 호텔을 둘러싼 경호가 삼엄하기 때문에 외부 통제에 관한 문제는 없다.

베를린 회동은 과거의 북미 간 비공식 대화의 한 예이다. 미국 대도시에서도 종종 열리지만 영국 런던, 스위스 제네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등 제3국에서 열릴 경우에는 기밀 보장이 더 쉽다는 분석이다.

북한 정권의 특성상 북측 참석자들은 개개인의 의견보다 평양 지도부의 공식입장을 설명하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미국 측 참가자들은 그 어느 나라도 북한 정권의 의도를 쉽게 파악할 수 없기 때문에 이 같은 기회가 중요하다고 공통된 목소리를 냈다.

미국 전 정부관계자들이 보는 북미 간 비공식 대화

이미지 캡션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9월 열린 제72차 유엔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오는 19일부터 사흘간 모스크바에서 '2017 모스크바 비확산회의'가 예정돼 있고, 이 과정에서 북미간 비공식 대화가 열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북한 외무성 최선희 북미국장, 웬디 셔먼 전 국무부 정무차관, 북한 핵 전문가인 지그프리드 해커 박사가 이번 접촉에 참여할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서로 인신공격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번 주 비공식 대화는 어떤 분위기로 진행될까? 지난 몇십 년간 비공식 대화에 참가한 미국 전문가들이 BBC 코리아에 과거 경험을 공유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참석자는 "대화가 잘 풀리는 경우에는 호전적인 분위기가 아니라 오히려 친근감 있고 편안한 상황에서 진행되고, 사람간 만남이 대부분 그렇듯 꼭 일 얘기만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북한 경제 전문가인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 스테판 해거드 석좌교수는 최근 북미 비공식 대화에 3차례 참석했다. 그는 북미 간 비공식 대화의 분위기가 통상적 국제회의와 크게 다를 바 없다고 회상했다. 해거드 교수는 "서로 자식 얘기도 하고, 비공식 대화의 목적 가운데 하나는 상대방을 인간적 측면에서 보도록 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더글라스 팔 카네기 평화연구소 부소장은 "민간인으로서의 첫 대북 접촉을 생생히 기억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1993년 공직을 떠난 팔 부소장은 이듬해 미국 워싱턴에서 북측 유엔 대사관 관계자들과 만찬 회동을 가졌다. 당시 북측은 자국에서 비공식 회담을 갖자는 의견을 강하게 주장했다고 팔 부소장이 설명했다.

팔 부소장은 "북측이 식사 도중 계속해서 양자회담에 대한 압박을 주길래, '미국과 미국 시민을 협박하는 소리를 가만히 앉아서 들을 수 없다'고 말한 뒤 자리를 박차고 나왔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팔 부소장은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과 조지 H. W. 부시 전 대통령 시절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미국 측 참가자 대부분은 적어도 10년 가까이 이같은 대화에 참석했다. 미국 국무부 조엘 위트 전 북한 담당관은 학자가 아니라 정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이 참석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위트 전 담당관은 지난 1993년부터 2년간 로버트 갈루치 당시 북핵특사의 선임 보좌역을 맡았고, 1994년 북미 제네바 기본 합의(Agreed Framework) 채택 과정에 관여하기도 했다. 그는 현재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 한미연구소USKI에 선임 연구원 자격으로 북미 비공식 회담에 참석한다.

핵 시설 발전으로 여유로운 모습을 보이는 북한

북 핵 시설이 올해 급발전함에 따라 김정은 정권이 20년 전과 비교해 대미 비공식 협상에서 훨씬 우월한 입장에 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팔 부소장은 지난달 1.5 트랙 대화를 성사시키는 과정에서 북측이 예전보다 절제된 언어를 사용했다고 전했다. 북측이 더이상 압박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대화를 요구하지 않아도 될 위치에 있다는 관측이다.

북한은 지난달까지만 해도 핵탄두 소형화 기술은 확보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최근 미 언론 보도에 따르면 올해 들어 이같은 고도 기술도 확보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돼 핵기술이 상당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북미 간 비공식 대화는 모두 각국 정치상황과 한반도 안보에 직결돼 있다.

올해 1월 접촉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취임과 관련 있다. 팔 부소장은 "북측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의 일환으로 북핵 문제 해결을 강조하고,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햄버거를 먹으며 대화하겠다고 말한 점, 또 전 미국 대통령들이 이룬 북미 협상 성과를 이어가겠다고 말한 것에 관심을 보였다"라고 전했다.

그 뒤 5월과 8월 접촉은 매년 2번씩 진행되는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가디언'의 일정을 따랐다. 북한은 매년 이를 자국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하고 한미 양국에 대한 공격적 언사의 수위를 높이는 반응을 보여왔다.

성공적 비공식 대화의 요소

미국 측 참석자들은 북미 비공식 대화가 양국간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평가했다. 북핵 관련 대화는 통상 제3국에서 이뤄지며 개최국 관계자들도 참석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이 같은 경우 본론이 흐려질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참석자들은 또 비공식 대화의 경우 대화 전후 기밀유지가 보장돼야 양국 참석자들이 폭넓고 자유롭게 의견을 나눌 수 있는 환경이 구성된다고 밝혔다.

1.5 트랙 대화 아직 견고해

이미지 캡션 헤더 노어트 미국 국무부 대변인이 BBC 코리아와 인터뷰 하고 있다.

북한의 6차 핵실험 뒤 북미 간 비공식 대화가 중단됐다는 일부 한국 정치인의 견해는 대화 참석자들 사이에서는 잘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바른정당 정병국 의원은 이달 초 기자단에게 "6차 핵실험 전까지 (북미 간) 대화가 진행되다가 그 뒤에 중단된 것 같다. 지금은 상황이 바뀐 것 같다고 하더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BBC 코리아에 "미국 외교관들이 북한 정권과 교류할 수 있는 여러 채널이 있다"고 밝혔다. 노어트는 "미국은 북한 정권 붕괴나 교체, 통일의 과속화, 비무장 지대 내 북측 지역의 병력 동원 등에 관심이 없다는 점을 장담했음에도 불구하고 북한 정부 관계자들은 비핵화 대화에 관심을 보이거나 준비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 내 북한 전문가들은 올해 안에는 북미 공식회담이 성사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대북 추가 제재가 북측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때까지 기다릴 것이고, 북한 정권은 핵탄두 소형화 기술을 최대한 완성시키길 바랄 것이다.

북미 양국이 각각 시간을 벌려고 하는 현 상황에서 비공식 대화는 완벽하지는 않지만 꼭 필요한 수단이라는 것이 미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