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형 공론화위원장: “좋은 절차가 정의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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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형 신고리 공론화위원장 인터뷰 영상

원전이 생명을 위협한다고 하는 이들과 원전을 닫으면 생업을 위협받는 이들은 철저히 충돌할 수밖에 없다.

원자력발전소 문제와 같은 갈등 현안은 예전 같았으면 정부가 결정하고 그 정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머리에 띠를 매고 길가에 나와 구호를 외치며 시위를 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이례적으로 이 문제를 시민이 참여하는 '공론조사(Deliberative Poll)'로 결정하기로 했다. '투쟁'이 아닌 '숙의'를 통해 갈등을 해결해보려는 실험인 셈이다. 정부 예산 46억 원이 투입됐으며, 문재인 정부는 결과를 "그대로 수용"한다고 약속했다. 사실상 우리나라의 첫 공론조사였다.

시민 478명으로 구성된 '신고리 5, 6호기 공론화위원회'가 9월에 항해를 시작했고, 공정의 30%가 진행된 울산의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여부를 토론했다. 그리고 지난 20일 "신고리 5,6호기 건설을 재개하라, 단 원전은 축소하라"는 권고안을 냈다.

BBC 코리아는 이번 공론화를 이끈 대법관 출신 김지형(59) 변호사를 만났다. 그가 생각하는 이번 공론화의 의미와 한계, 사회 갈등, 조정의 중요성 등을 물었다.

그는 "원전 논의는 이제 시작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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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부산의 신고리 3,4호기. 이번 공론조사에서는 비전문가인 일반 시민이 원전 정책을 논의했다.

그는 "정책 방향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여태껏 기득권자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정책을 가져갔다면 이제는 더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며 "이제 그들이 설득하고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 그렇지 못하면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30년 법관 생활을 접은 이후 갈등조정 전문가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한쪽이 모든 것을 얻고 한쪽이 모든 것을 잃는 형태가 아니라 양쪽의 입장을 조율해 절충할 수 있는 대안을 갖고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정의"라고 단언했다.

아래는 김 위원장과의 일문일답이다.

Q. 이번 공론화 위원회의 의미를 한마디로 정리하면?

"기존에는 전문가와 생산자가 논의를 주도했다. 그러나 이제는 원자력 에너지를 실제 소비하는 시민들이 논의의 주체가 됐다. 원전 논의는 이제 시작일 뿐이다. 독일의 경우도 보면 어떤 정권이 들어서냐에 따라서 원전 정책이 바뀐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원전 정책 방향 다시 바뀔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과정이 중요했던 건, 여태껏 기득권자들이 원하는 방향대로 정책을 가져갔다면 이제는 더 이상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들이 설득해야 하고 납득시켜야 한다는 것, 그렇지 못하면 방향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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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 후, 한국의 원전 정책을 반대하는 시위

Q. 공론화가 정부의 정치적 책임 회피라는 지적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아무리 좋은 제도라 하더라고 그것을 이용하는 사람이 나쁜 의도를 가지고 이용하면 항상 실이 생길 수 밖에 없다. 백종원의 주방용 칼을 예를 들겠다. 잘 쓰면 맛있는 음식을 만들 수 있다. 하지만 누가 쓰냐 해서 흉기 될 수 있다. 공론화는 기본 의미에 충실하게 쓰면 좋은 의미를 갖고 정치적, 사회적으로 잘 활용될 수 있지만, 그것이 악용되면 이른바 책임 회피하려고 하는 수단으로 가볍게 이용될 수 있다."

Q. 정책 결정을 할 때 정치인과 시민은 어떻게 다른가?

"정치인은 늘 다음 선거를 의식한다. 선거를 의식하다 보면 결국은 자기한테 표를 더 많이 줄 수 있는 쪽에 생각이 몰릴 수 있다. 또 정당에 소속하다 보면 그 정당이 가지고 있는 입장에 맞출 수 밖에 없고 거기서 벗어나 자기 개인적인 의견을 내기란 쉽지 않다. 그에 반해 시민은 다음 선거를 의식할 이유가 없다. 그만큼 사안을 보는 눈이 정치적이지 않고 선거를 의식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문제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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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지난해 12월 촛불시위 현장

Q. 공론화가 촛불시위에 비유되는 것은 어떤가?

"우리 사회의 시민 의식이 굉장히 성숙했다는 것을 촛불시위를 통해 짐작했고 공론화를 통해 다시 생각했다. 둘 다 시민들의 목소리가 크게 반영됐다. 민주주의를 좀 더 잘해보자는 의지표명일 수 있다. 하지만 공론화와 맥락을 같이 한다고까지는 생각하지 않는다. 결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공론화는 숙의민주주의지만) 직접 광장으로 나가서 의견을 보여준 촛불시위는 직접민주주의에 가깝다."

Q. 갈등 조정 전문가다. 조정의 기술은 무엇인가?

"서로 타협이 가능한 부분이 얘기를 거듭하다 보면 보인다. 지키려고 하는 핵심적인 가치는 존중하되, 양보할 수 있는 합의점을 발견하면 그걸 통해 조정한다. 좋은 절차가 결국 정의일 수 있다. 게임의 법칙처럼 승자독식으로 가게 되면 과연 그게 정의일까? 어느 한쪽이 완전히 모든 것을 얻고 다른 한쪽이 모든 것을 잃는 형태가 아닌 양쪽의 입장을 조율해서 절충할 수 있는 대안이 정의가 아닐까 생각했다. 재판 일만 30년을 했다. 마치고 나서 드는 생각은 재판보다 더 정의로운 절차는 조정에 의한 분쟁 해결 방식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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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삼성반도체 공장에서 일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의 10주기를 맞아 지난 3월 시민단체가 79명의 사망자 영정사진을 들고 추모행진을 하고 있다.

Q. 삼성 반도체 백혈병 논란도 조정했는데, 그 경험을 예를 들어 설명하면?

"양쪽이 사안을 바라보는 시각이 180도 달랐다. 삼성은 위험 요인을 제거한 채로 공장을 운영했고 미국 기관도 공장과 백혈병과 인과 관계가 없다고 했기 때문에 책임질 필요 없다는 게 기본적인 입장이었다. 피해자 입장은 삼성 공장에서 이렇게 많은 희귀질환이 발병했고 피해자들이 엄청난 고통을 받고 있고 하루하루 사람이 죽어가고 있는데 그렇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했다. 너무 대척점에 서 있었다. 다들 (조정위원장으로 활동하는 것을) 말렸지만 설사 실패하더라도 우리 사회가 실패한 경험이라도 쌓아갈 필요 있다고 생각하고 직책을 맡았다."

김지형 위원장은...

2005년 최연소 대법관이 됐다. 손꼽히는 노동법 전문가이고 2011년 대법관 퇴직 후 2012년 법무법인 '지평'의 고문변호사와 노동법연구소 '해밀'의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반도체 사업장에서의 백혈병 등 질환 발병과 관련한 문제 해결을 위한 조정위원회' 위원장(2014년 10월~2016년 1월), 구의역 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2016년 6월~7월) 등을 맡으며 사회 갈등적 현안을 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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