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우디의 수도에서 펼쳐지고 있는 중동판 '왕좌의 게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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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동의 영원한 숙적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주도권 다툼이 레바논에서 전쟁으로 비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에서 벌어지는 '왕좌의 게임'이 다시 한번 중동 지역의 대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4일 리야드에서 벌어진 세 개의 사건들은 서로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사우디의 핵심 파트너들(미국을 포함한)이 숙적 이란과 맞설 뜻을 굳히는 가운데 이 사건들은 큰 파급력을 가질 수 있다고들 말한다.

첫째이자 역내에 가장 파급력이 강한 사건은 사드 알하리리의 충격적인 사임 발표였다. 내부 관계자들은 그가 베이루트에서 소환돼 그의 사우디 조력자들에 의해 "해고"됐다고 말한다.

"그건 그 사람 본인의 언어가 아니었다." 하리리 전 총리의 TV 연설에 대해 한 아랍 국가의 장관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눈에 띄게 괴로워하는 모습으로 하리리는 자국 내에서 자신의 목숨이 위협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질서와 파괴"를 조장한다며 이란을 비난했다. 그리고 레바논의 주요 시아파 무장세력이자 강력한 정치세력인 헤즈볼라가 "국가 내의 국가"를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유도탄'을 발사했다"고 베이루트의 카네기중동센터의 선임연구원 에지드 사이흐는 말한다. 그 주 목표물은 레바논이 아니라 사우디와 그 동맹들이 이란이 중동 지역에서 벌이고 있는 행동들이다.

이 정치적 유도탄은 먼저 레바논을 동요시켰다. 헤즈볼라와 하리리의 순니파 파벌 등이 정교하게 단합을 이루고 있던 연합정권이 무너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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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사우디아라비아가 하리리 총리를 강제로 사임하게 했다고 비난했다

하리리의 사임 발표 수시간 후, 예멘의 후티 반군이 발사한 진짜 장거리 탄도미사일이 리야드의 킹칼리드국제공항 근처에서 요격됐다. 이란의 영향력이 자국 국경에까지 미치고 있다는 사우디의 우려는 극도로 높아졌다.

"그 미사일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알리 시하비 아라비아재단 사무국장은 지난 주말 아랍에미리트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기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상황이 지금처럼 5년 동안 방치되면 리야드에는 4만 발의 미사일이 떨어질 겁니다."

중동 지역에 정치적인 파장이 일고 있던 4일 밤, 자정이 되자마자 세 번째의 폭탄이 떨어졌다. 수십 명의 왕자와 부호, 그리고 전직 장관들이 부패를 빌미로 소환됐고 몇몇은 해임됐다.

이는 모하메드 빈살만 왕세자가 대내외적으로 왕국에서 자신의 권력을 강화하려 한다는 것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건 누구도 법 위에 없다는 메시지였습니다. 보다 정확히는 그의 법 위에서요." 중동의 한 고위관계자는 32세의 왕위 계승자가 실시한 대규모 숙청을 두고 이렇게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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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하리리 전 총리와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중앙)의 회동은 사우디아라비아를 격분하게 만들었다 한다

사우디의 소식통에 따르면 사우디는 레바논의 취약한 연합정권에 대한 헤즈볼라의 영향력을 막기 위해 노력하면서 사드 하리리에 대해 점차 인내를 잃고 있었다.

작년에 타결한 30명으로 구성된 내각에 대한 합의는 수년간의 정치적 교착 상태를 타개할 수 있었다. 이는 인접한 시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증폭된 긴장을 가라앉히기 위해서였다.

"하리리는 자신의 행동으로 겉치장에 가까운 존경스러움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실상은 헤즈볼라에게 사로잡힌 상황이었다"고 알리 시하비는 말했다.

하리리가 지난 3일 베이루트에서 이란의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보좌관 알리 악바르 벨라야티를 만난 것이 결국 화근이 된 것으로 보인다.

레바논과 이란의 언론은 벨라야티가 레바논의 연합정권의 "위대한 성공"을 상찬한 것에 주목했다. 하리리의 측근들에 따르면 그는 그 직후 곤란에 빠졌다 한다.

한 측근은 하리리가 "3일과 4일의 일정을 취소하라고 하고는 떠났다"고 말했다.

이때부터 하리리 또한 사우디의 부패 척결에 휘말린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무성했다. 하리리는 레바논과 사우디 시민권을 모두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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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하리리는 사임을 발표한 다음날 사우디의 살만 왕을 만났다

이제 남은 질문은 '다음은 무엇인가?'다.

"사우디는 레바논에서 뭔가를 시작했지만 레바논의 모든 권력을 통제하고 있지는 못하다"고 에지드 사이흐는 말했다.

중동 지역에서 오랜 경력을 쌓은 한 서구 외교관은 다음 행보를 이렇게 예측한다. 주요 사우디 은행 계좌의 인출, 금수 조치, 그리고 레바논 군대의 행동이 이어지리라는 것. 미국과 영국은 헤즈볼라의 군사력에 대응할 수 있도록 오랫동안 레바논 군대의 훈련과 조직을 도왔다.

바로 지난달, 미국 하원은 헤즈볼라에 대한 새로운 제재를 승인했다. 이란에 보다 강한 압력을 넣고자 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조치였다.

아직 법제화가 되지 않은 이 새로운 제재안은 유럽연합으로 하여금 헤즈볼라의 군사 부문 뿐 아니라 정치 부문까지 테러단체로 지정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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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헤즈볼라는 시리아 전쟁에서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의 편에 서서 싸우고 있다

이스라엘의 행보에도 눈길이 쏠린다. 이스라엘은 미국과 사우디와 마찬가지로 이란 문제에 골몰하고 있다.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이달 초 런던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를 두고 "국제사회가 시리아를 제2의 레바논으로 만드려 하는 이란의 공세에 대항해야 함을 알려주는 신호"라고 말했다.

레바논의 동요를 가라앉히려 하고 있는 헤즈볼라의 지도자 하산 나스랄라는 사우디가 하리리에게 "자행"한 행위에 대해 "인내와 진정"을 촉구했다.

이란에서도 중동 지역에 긴장을 조성하는 모략에 대한 비난이 나왔다.

수많은 위기에 시달렸던 불안한 지역에서 늘 그러하듯, 전쟁의 위험만이 가장 큰 우려는 아니다. 어떠한 사건이 우발적으로 군사적 대치로 이어질 수도 있다.

"헤즈볼라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이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모든 이스라엘의 장군들은 군사적 행동에 대해 경고할 것입니다." 국제위기감시기구(ICG)의 장 마리 게노는 이렇게 말했다. 그러나 그는 "정치인들이 무슨 일을 벌일지는 결코 확신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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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레바논 대통령은 하리리가 베이루트로 돌아오길 기다린다고 말했다

급작스런 긴장의 고조 이후 지금은 모든 움직임이 면밀하게 관찰되고 있다.

"왕세자는 레바논 위기가 터졌을 때 사우디 내부의 숙청을 미뤘어야 한다." 한 아랍 국가 장관은 이렇게 말했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벌어지고 있다."

다른 이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하룻밤 새에 싹 처리해버리는 게 더 낫다." 한 사우디 전문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전까지는 계속 찔끔 찔끔 흘리는 수준이었다."

지난 4일의 결정적인 사건들과 마찬가지로 이 모든 일들은 점차 하나의 큰 사건으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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