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화약고' 중동: 사우디-이란 '천년 전쟁' 재점화 우려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왼쪽)와 이란 하산 로하니 대통령(오른쪽)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사우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왼쪽)와 이란 하산 로하니 대통령(오른쪽)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은 오랜 기간 앙숙 관계를 이어왔다. 두 나라의 갈등은 이슬람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싸움과 거리가 멀지 않다. 사우디는 수니파, 이란은 시아파 종주국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교의 종파는 200개가 넘는다. 수적으로 보면 주류는 수니파다. 전 세계 무슬림(이슬람교도인)의 80%가 수니파에 속한다. 사우디와 시리아, 이집트, 레바논 등이 수니파가 주류인 국가다.

시아파는 수적으로는 열세이지만, 이란과 이라크, 바레인 등이 이를 따르며 수니파 국가들과 대립각을 세워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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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메카 성지순례(하지)는 종파를 초월한 이슬람교 최대 의식 중 하나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은 이슬람 선지자 무함마드가 숨진 서기 6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함마드의 후계자를 놓고 의견이 갈렸다. 무함마드 사망 이후 제1대 칼리프(이슬람 정치·종교 지도자)로 선출된 아부 바크르를 계승자로 여긴 세력은 수니파로 분리됐고, 무함마드의 사촌이자 사위인 이맘 알리를 후계자로 추종한 세력은 시아파로 갈라졌다.

사우디와 이란 간의 갈등은 수니파와 시아파 간 '천년 전쟁'의 연장선인 셈이다.

또 두 나라의 갈등이 종파 싸움인 만큼 중동 지역뿐만 아니라 각 종파를 따르는 다른 나라들까지 연루될 수밖에 없다.

여기에 원유시장의 변수와 미국과 러시아 등 초대강국의 개입까지 더해지면서 혼란은 가중됐다.

'키 플레이어(Key Player)'들이 사우디와 이란 중 어느 세력과 손을 잡느냐에 따라 판세가 갈릴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는 수니파 종주국일 뿐만 아니라 무함마드가 태어나고 그의 시신이 묻힌 '메카'가 있는 이슬람교의 발생지다. 매년 9월 초 '하지(성지순례)' 기간 동안 수백만 명의 무슬림들이 모이는 메카는 종파를 막론한 이슬람교 최대 성지다.

전 세계 석유 생산의 약 10%를 담당하는 사우디는 하루 평균 1000만 배럴이 넘는 원유를 생산하면서 세계 최고 부자 나라 중 하나로 등극했다.

국제 원유시장뿐만 아니라 중동 지역에서의 사우디의 영향력은 절대적인 수준이다. 하지만 페르시아만 건너편에서 시아파 이란이 빠른 속도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역 패권을 잃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우디는 이란을 공개적으로 견제하고 있다.

특히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에 대해 부정적인 견해를 표명하면서 사우디의 반(反) 이란 호전성은 대담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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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사우디는 예멘 후티 반군 토벌전을 주도했다.

젊지만 점점 막대한 권력을 굳히고 있는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는 다른 이웃 국가 예멘에서 후티 반군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사우디 측은 이란이 같은 시아파인 후티 반군을 물질적으로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 측은 이를 부인해왔다.

사우디는 예멘뿐만 아니라 시리아 내전에도 개입했다. 사우디는 수니파 국가인 터키와 함께 시리아의 반군을 지원하고, 시아파 대통령인 바샤르 알아사드를 축출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사우디는 중동에서 가장 강력한 군대를 보유한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무기수입국이기도 한 사우디는 22만7000명으로 추정되는 병사들에게 최신 무기를 지급하고 있다.

이란

이란에선 이슬람 혁명을 통해 1979년 왕조를 몰아내고 이슬람 종교 지도자가 최고 권력을 쥐는 이슬람공화국으로 거듭났다. 이란에는 대통령과 의회가 있지만, 가장 높은 성직자를 의미하는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가 최고 지도자이자 실권자다.

이란의 8000만 명 인구의 대부분은 시아파 무슬림으로 역내 시아파 움직임을 주도해왔다.

이란의 영향력은 최근 10년간 눈에 띄게 늘어났다. 특히 이웃 국가 이라크에서 사담 후세인의 수니파 정권이 퇴출당하면서 그 영향력은 더욱 강해졌다.

시리아에선 알아사드 대통령을 지지하며 반군과 수니파 극단주의 무장세력인 이른바 이슬람국가(IS) 퇴치에 가담했다. 이란 정예군 혁명수비대(IRGC)는 시리아와 이라크에서 IS를 몰아내는데 중추적인 역할을 했다.

이란은 또 사우디가 레바논을 불안정화(destabilise)시키려 한다고 믿는다.

레바논에는 헤즈볼라라는 시아파 무장 정파가 있다. 이란은 헤즈볼라를 지지하지만, 사우디는 미국과 함께 헤즈볼라를 테러단체로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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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이란혁명수비대(IRGC)는 이란에서 막대한 군사, 정치, 경제적 영향력을 발휘한다.

미국의 동맹국인 사우디와 달리 이란은 미국에 적대적이다.

이란의 군사력도 무시하지 못할 수준이다. 이란은 핵 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로 핵무기를 포기했지만, 여전히 최고급 첨단 미사일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다. 또 53만4000명이 넘는 현역군인들이 정규군과 IRGC에 포진해있다.

미국

미국은 이란과 긴장 관계는 1953년 쿠데타로 본격화됐다.

당시 석유 자산 국유화를 단행한 무함마드 모사테크 정부를 미국이 중앙정보국(CIA)를 동원해 쿠데타를 일으켜 실각시켰기 때문이다. 미국 측에선 이슬람 혁명 직후 1979년 강경파 이란 대학생들이 수도 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을 공격하고 점거한 사건이 벌어지면서 반 이란 감정이 고조됐다.

반면 사우디는 미국의 동맹국이다. 버락 오바마 전 정권 당시에는 미국이 이란에 상대적으로 우호적인 모습을 보여 사우디-미국 동맹 관계가 다소 약해졌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한 뒤에는 다시 긴밀한 관계를 회복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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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미국은 오랜 기간 사우디를 지지한 주요국 중 하나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바마 정권 때 서명한 이란과의 핵 합의를 무효로 하는 등 이란에 대한 강경한 정책을 고수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을 종종 테러에 연관 지어 말하지만, 사우디에 대해서는 급진적인 이슬람 요소에 대해 거론조차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올 초 논란이 일었던 이슬람권 국가 입국 금지령에도 포함하지 않았다.

트럼프는 지난 5월 해외 순방의 첫 방문지로 사우디 수도 리야드를 방문해 살만 국왕과 만났고, 사우디 왕세자도 미국을 방문해 백악관 지도부와 회동했다.

한편 사우디는 미국 무기 수출의 주요 시장이기도 하다.

러시아

러시아는 사우디와 이란 양측과 동맹 관계를 유지하고 긴밀한 경제협력을 이어왔다. 심지어 양국에 첨단 무기를 판매할 정도다.

러시아는 사우디와 이란 간에 딱히 한쪽 편을 들지 않고 있고, 오히려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는 것으로 보인다.

중동 지역에서의 러시아의 활동은 냉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구소련은 시리아 군 간부들을 훈련하고, 무기를 제공해줬다. 소련이 붕괴한 뒤 중동에서의 러시아 영향력은 쇠퇴했지만, 최근 다시 힘을 키우고 있다.

시리아 내전에서도 러시아는 반군 기지에 공습을 가해 알아사드 정권의 승리에 힘을 실어줬다. 그 과정에서 알아사드 정권을 지원하던 이란도 간접적으로 이익을 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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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시리아와 러시아군이 시리아 영토의 90%를 '해방'시켰다고 말했다.

터키

터키는 이란과 사우디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고 있다.

수니파인 터키는 사우디와 종파적 유대감을 느끼고, 시리아 알아사드 정권에 대한 반감으로 같은 배를 타고 있다. 특히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이 대표인 이슬람주의 '정의개발당(AKP)'이 2002년 집권한 뒤로 중동 정세에 더 개입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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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터키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사우디와 갈등을 빚고 있는 카타르도 지지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터키가 이란과 적대관계에 있는 것은 아니다. 터키는 이란과 함께 쿠르드족의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고 있다. 양국 모두 쿠르드족을 위협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이라크 쿠르드자치정부(KRG) 분리 독립 투표에도 반대 의견에 입을 모으기도 했다.

이스라엘

이스라엘은 국민 대다수가 유대인인 만큼 수니-시아 종파 싸움과는 무관하다. 또 아랍 국가 중 이집트와 요르단 외에는 공식적인 수교 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다.

다만 이스라엘은 이란과는 앙숙이다. 이란은 1948년 건국한 이스라엘의 존재권 자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는 국제사회가 이란의 비핵화 압박을 부추기고, 핵 합의를 폐기하는 방안을 지지해왔다. 그는 이란이 "공격적"인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렇다고 이스라엘이 친(親) 사우디인 것은 아니다. 네타냐후 총리는 아랍 국가들과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지만, 사우디 측은 이스라엘과 이에 대해 아무런 협력도 없다고 반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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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이스라엘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는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테러 정권을 대담하게 직면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집트

이집트는 역사적으로 이란보다 사우디와 더 친밀했다. 특히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벌어진 뒤에는 사우디 쪽으로 더 치우쳤다.

사우디는 무함마드 모르시 전 이집트 대통령을 축출한 쿠데타를 지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집트와 이란 사이에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다. 한 예로 사우디 국영석유기업 아람코가 이집트에 석유 수출을 중단했을 때 이란이 이집트와 이라크 간에 새로운 석유 협약을 체결하는 것을 후원하기도 했다.

최근 사우디와 이란의 갈등이 고조되자 이집트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우리는 대화로 해결할 수 있다"며 양측 간 군사적 긴장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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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이집트 압델 파타 엘시시 대통령은 "나는 전쟁에 찬성하지 않는다"면서도 "사우디의 현명한 리더쉽을 신뢰한다"며 사우디를 두둔하는 입장을 보였다.

시리아

시리아 알아사드 대통령은 물론 자신을 지지하는 이란 편이다.

이란은 전통적으로 시리아 내전에서 현 정권을 지지하며,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이란은 시아파에 속한 알리위트(Alawite) 종파인 알아사드 대통령을 아랍권의 가장 가까운 협력자로 보고 있다.

시리아가 이란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에게 무기를 전달하는 데 거쳐야 하는 주요 거점인 것도 두 나라 간의 협력관계를 강화하고 있다. 또 헤즈볼라가 시리아 정부를 도우려고 수천 명의 병사를 파병한 것도 시리아-이란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했다.

시리아는 사우디가 중동 지역에 파괴적인(subversive) 정책을 펼치고 있다고 비난해 오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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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시리아 정부군은 일명 이슬람국가(IS)로부터 영토 대부분을 탈환해냈다.

레바논

시리아-이란 교착상태에서 레바논의 입장은 엇갈린다.

앞서 4일 사우디 방문 중 돌연 사임을 발표한 레바논 사드 하리리 총리는 친 사우디 성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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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레바논 사드 하리리 총리는 사우디 방문 중 사임을 발표했다.

반면 무장 정파 헤즈볼라는 자신들에게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란 편이다. 헤즈볼라의 최고지도자인 하산 나스랄라는 사우디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아 왔다.

걸프 국가들

과거에 카타르와 바레인, 쿠웨이트 등 걸프 국가들은 이란보단 사우디에 더 우호적이었다.

하지만 카타르의 경우 올 초 사우디가 이란과 단교를 강요하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카타르가 이를 전면 거부했기 때문이다.

이에 지난 7월에는 사우디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동맹국들이 카타르와 외교 관계를 단절하면서 보복했다. 사우디는 그러면서 카타르가 이란과 가깝게 지내고 극단주의 세력을 지원했다고 비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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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사우디는 카타르가 급진주의와 테러에 맞서는데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우디와 UAE 등은 카타르를 압박하고자 식료품 수출을 중단했지만, 이란이 카타르에 식량을 지원했다. 결국 이란과 카타르는 절친 관계가 됐다.

바레인과 쿠웨이트는 여전히 사우디 편이다.

바레인은 국민의 70%가 시아파지만, 왕가가 수니파다.

바레인은 이란이 "테러 조직"을 육성하고 있다며, 다른 나라를 전복시키려 한다고 비난했다. 또 바레인 정부는 자국 내에 시아파 정치세력들이 이란과 관계를 이어가고 있다는 의혹을 제기하며 불만을 표출하기도 했다.

쿠웨이트는 당초 친 이란 기조를 이어왔다. 2013년 이란 하산 로하니 대통령이 쿠웨이트를 직접 방문해 이란과 걸프협력기구(GCC) 간의 긴장 사태를 논의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카타르 단교 사태 이후 쿠웨이트는 사우디 쪽으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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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쿠웨이트 셰이크 사바 알아흐마드 알사바 에미르(군주)는 카타르와 사우디 간의 대화를 중재할 의지를 밝혔다.

쿠웨이트는 사우디가 주도한 카타르 고립 정책을 따르고 있지는 않지만, 단교 사태 이후 자국으로부터 15명의 이란 외교관을 추방하고 이란에서 온 군사, 문화, 무역 활동을 모두 폐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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