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바브웨 '악어' 음난가그와는 누구?

짐바브웨 새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에머슨 음난가그와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짐바브웨 새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에머슨 음난가그와

짐바브웨 새 임시 대통령으로 취임한 에머슨 음난가그와(75)는 과격하고 빈틈없어 '악어'란 별명을 지녔다.

별명에 걸맞게 그는 로버트 무가베(93) 전 대통령에게 부대통령직에서 해임당했지만 '반격'에 성공해 다시 고국으로 돌아와 권력을 쥐게 됐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비록 독재자 무가베는 물러나지만 음난가그와 역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실제로 음난가그와가 집권당 '짐바브웨 아프리카 민족동맹 애국전선(ZANU-PF)'의 잔혹한 탄압 행위의 배후라는 지적이 있다. 그와 함께 독립운동을 이끈 한 참전용사는 그는 "굉장히 잔혹한 사람"이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의 자녀들은 그가 절조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 딸인 파라이 음롯샤는 심지어 BBC에 마음이 약한 사람이라고 묘사했다. 음난가그와는 2명의 부인과 9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이 가운데 그의 지지자들은 그러한 그의 양면성을 대변하기에 적합한 부드러운 악어 인형을 들고 귀국을 환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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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악어 인형을 들고 있는 음난가그와 지지자들

그의 오랜 친구이자 ZANU-PF당 소속 정치인 조사야 헝게는 그가 비록 카리스마나 웅변술은 떨어지지만 실용주의적이라고 강조했다.

헝게는 "'정치는 정치고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 한다'라는 게 그의 철학이다"라며 "임기 중 경제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에머슨 음난가그와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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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치적 민첩함으로 '악어'라는 별명을 얻음
  • 20대에 중국과 이집트에서 군사훈련을 받음
  • 로디지아 정부로부터 고문을 당함
  • 1960년대~1970년대 독립전쟁을 이끎
  • 수천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한 1980년대 내전 당시 정보 당국을 지휘
  • 2008년 선거 당시 군을 동원해 야권지지자를 공격했다는 의혹을 받음
  • 일자리 창출 등 경제 개혁 단행할 듯

음난가그와는 집권당의 '경제통'으로 알려졌다.

2001년 유엔(UN)은 ZANU-PF당이 콩고 내전에 개입해 다이아몬드, 금, 광물 등의 자원을 착취했다고 비난했는데, 집권당에서 음난가그와의 역할을 고려하면 그도 이 의혹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이뿐 아니라, 음난가그와의 지지 세력의 상당수는 짐바브웨 동부 다이아몬드 광산개발로 재산을 불린 것으로 알려지는데 이곳에서 학살 등 심각한 인권 유린이 발생했다는 주장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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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콩고 내전에 개입한 짐바브웨 군

'핏빛 과거'

잠비아에서 자란 전직 변호사 음난가그와에 대한 평은 집권당 내에서도 갈린다.

ZANU-PF당 소속 한 정치인은 음난가그와가 새 임시대통령으로 취임하는 것에 대해 "무가베가 나쁘다고 하지만, '포스트 무가베'는 더 나쁠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나"라고 반문했다.

2000년 선거 당시 음난가그와의 적수였던 블레싱 체번도 역시 비슷한 의견이다. 체번도는 당시 ZANU-PF당 젋은 지지자들에게 납치됐다. 그들은 체번도의 몸에 휘발유를 들이붓고 불을 붙이려고 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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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짐바브웨는 70년대 독립전쟁을 이끈 자들이 수년째 권력을 잡고 있다.

음난가그와의 잔혹함은 1980년대 무가베와 그의 정적 조슈아 은코모의 세력 다툼에서 드러났다.

당시 그는 정보 당국의 지휘를 맡고 있었는데 군과 결탁해 민족운동지도자인 조슈아 은코모의 '짐바브웨아프리카국민동맹(ZAPU)'을 탄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수천 명이 학살당했으며, 탄압은 무가베 세력과 은코모의 ZAPU가 합쳐 ZANU-PF당이 출범하고서야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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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로버트 무가베(왼쪽)와 조슈아 은코모

북한으로부터 훈련받은 당시 군인들의 잔혹함은 극에 달해, 마을 주민들 머리에 총을 겨누고 그들의 가족들이 묻힐 무덤을 파게 하고 그 무덤 옆에서 무가베를 찬양하며 춤을 추게 했다고 한다.

음난가그와는 학살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하지만 당시의 고통은 아직 많은 사람에게 생생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백인 정권에 맞서 짐바브웨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참전용사들은 음난가그와를 지지하고 있다. 중국과 이집트에서 군사훈련을 받아 무력 투쟁을 지휘한 점을 높게 산 것이다.

'고문 상처'

음난가그와의 잔혹함을 그가 받은 고문에 연관 짓기도 한다. 그는 게릴라 조직인 '악어단'의 무력 투쟁으로 인해 1965년 로디지아 백인 정권에게 체포돼 고문을 받았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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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음난가그와가 권력의 중심에 서게 된 데는 독립을 위한 1970년대 무력 게릴라 투쟁이 있다

음난가그와는 공식 프로필에 "거꾸로 매다는 등의 고문 행위로 며칠 동안 의식을 잃기도 했다"며 "그 고문으로 인해 한쪽 귀가 들리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당시 21세 미만이었기 때문에 음난가그와는 처형되지 않고 10년형을 받았다. 그의 지인은 "당시 고문으로 상처가 남았을 게다. 그는 어렸지만 용감했다"며 "아마도 그때 경험으로 무뎌진 게 아닐까 싶다. 어린 나이에 끔찍한 일을 겪었다"고 해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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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무가베(왼쪽)와 음난가그와

로디지아 정부로부터 배웠건 아니건 간에 일각에서는 그의 무자비함이 2008년 선거에서 한 번 더 드러났다고 말한다. 당시 무가베의 라이벌인 모르간 츠반지라이에게 표가 몰리자 군은 야권지지자를 공격하고 이로 인해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수천 명이 이재민이 됐다.

결국 츠반지라이는 출마를 취소하고 무가베는 연임했다.

음난가그와는 그가 군을 동원해 야권지지자를 공격했다는 의혹을 아직 해명하지 않고 있다.

독살 음모

무가베의 오른팔이었지만 영부인인 그레이스 무가베가 권력에 야망을 품자 상황은 달라졌다. 음난가그와 세력은 지난 8월 그레이스가 음난가그와를 독살하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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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음난가그와와 전 영부인인 그레이스 무가베(왼쪽)

무가베 사임 후 첫 연설에서도 음난가그와는 이 음모를 언급했다. 하지만 그의 연설 설득력은 무가베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진다는 평이다.

영국 내 Zanu-PF당 대표인 닉 망과나는 음난가그와는 "말하는 자이기보다 행동하는 자다"라고 설명했다. 세인트 에모스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DJ인 음난가그와의 막내아들 역시 사람들이 아버지를 무서워하는 이유가 그가 과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매우 엄격하시지만 정말 좋은 아버지다"라며 "말이 없으셔서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것 같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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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음난가그와 지지자

한편 지난해 음난가그와를 인터뷰한 영국 기자 마틴 플레쳐는 짐바브웨의 정치적 변화는 쉽게 오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하지만 경제적 변화에는 기대를 걸어 볼 만하다고 했다. 짐바브웨 국민들은 평균적으로 1980년대에 비해 15% 더 가난한데 이는 주로 무가베 정권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경제를 살려야 그의 보안 부대를 먹여 살릴 수 있다. 그리고 (음난가그와의) 권력 유지는 그들의 충성에 달려있다"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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