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복서 이흑산 통해 본 한국의 난민심사제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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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삶을 꿈꾸는 난민 복서, 이흑산 스토리 / 최정민 BBC 코리아

지난 25일 서울 강북의 한 고등학교 체육관에서는 복싱대회가 열렸다. 한국,일본,필리핀에서 총 18명이 참가한 이번 대회의 하이라이트는 한국의 이흑산(34)과 일본 바바 카즈히즈로의 웰터급(66kg) 경기였다.

"홍코너 신장 183cm, 체중 66kg, 전적 5전 4승 2KO 1무 한국의 이흑산!" 레게머리를 한 흑인 선수가 링 위에 오르자 관중석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그의 본명은 압둘라예 아싼. 카메룬 출신의 난민 복서다.

이흑산은 지난 2015년 경북 문경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카메룬 대표선수 자격으로 왔다가, 선수단을 도망쳐 나와 난민 신청을 했다.

카메룬에 있을 당시 그는 군경찰 소속선수로 활동했다. 그는 난민심사에서 자신이 '구타와 협박 때문에 월급도 받지 못한 채 강제로 군에 구속됐다'고 증언했다.

그는 지난 21일 BBC 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카메룬에서 자신은 마치 '노예와 같은 생활을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자신은 군인이 아니었다며, "군사교육을 받은 적도 없고, 군대로부터 월급뿐만 아니라 숙식도 제공받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몸이 아파도 약을 살 돈이 없어 스스로 약초를 찾아 먹으며 견뎠다"고 당시 어려운 상황을 설명했다. 하지만 그에게 극심한 생활고보다 더 견디기 힘들었던 건 권투를 마음껏 할 수 없다는 사실이었다.

"한번은 제가 있던 도시에서 도망친 적이 있어요. 프로 복싱선수가 되고 싶었거든요" 하지만 얼마 후 그는 다시 군대에 붙잡혀, 탈영했다는 이유로 1주일 간 독방에 감금됐다.

이미지 캡션 카메룬 군경찰 소속 선수 시절

"완전 작고 깜깜한 독방이었어요, 그곳에 저를 가둔 후 때리고 묶어놨어요"라며 그는 당시의 아픈 기억을 떠올렸다.

일반 감옥으로 옮긴 뒤에도 구타와 협박은 한동안 계속됐다고 한다. 그런 그에게 한국에서 열리는 세계군인체육대회는 '노예'와 같은 현실에서 벗어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였다.

한국 도착, 그러나 거절된 난민 신청

마침내 한국에 도착. 그는 위험을 감수하고 선수단을 탈출해 서울출입국사무소에 난민 신청을 했다. 하지만 '군대로 인해 박해를 받은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그의 난민신청은 거절됐다.

아싼은 난민신청이 거절됐을 때, "혹시 카메룬에 잡혀가는 것이 아닐까 두려웠다"고 한다. 다행히 공익법인 어필의 도움으로 이의신청을 할 수 있었고, 마침내 지난 7월, 20개월의 긴 기다림 끝에 난민으로 인정받았다.

그와 함께 선수단을 탈출해 난민 신청을 한 에뚜빌 장 두란델은 2차 심사도 거절돼, 외국인보호소에서 1년 가까이 구금됐다가, 최근 재심사를 통해 난민지위를 얻고 풀려났다.

장 두란델은 비록 "난민심사 과정에서 어려움이 있었지만 안전하게 한국에 머물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만족한다"고 한다.

실제 아싼과 그의 동료처럼 한국에서 난민 지위를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법무부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서 난민이 될 가능성은 1%로, 신청자의 극히 일부만 난민 자격을 얻는다.

이미지 캡션 카메룬 출신의 난민 복서 이흑산

한국의 난민인정률은 1%

한국은 2013년부터 난민법을 통해 난민심사 및 난민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이전까지는 '출입국관리법'에 난민조항을 추가해 난민을 심사했으나,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아시아 국가로는 최초로 2012년 독립된 난민법을 제정했다.

난민법이 시행되면서 한국을 찾는 난민의 수도 크게 늘었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 2016년 한 해 동안 난민신청자는 총 7,542명으로, 2013년과 비교해 5배 가까이 증가했다.

문제는 매년 증가하는 난민신청자에 비해 난민으로 인정받는 숫자는 극소수라는 것이다. 실제 지난 2016년 98명만 난민지위를 인정받았다. 98명 가운데 가족결합, 재정착으로 인정받은 숫자를 제외하면, 실제 법무부 심사를 통해 난민으로 인정한 비율은 1%보다 더 낮다.

한국의 난민 인정률은 덴마크(72.8%), 네덜란드(74.6%) 등 난민에게 우호적인 일부 유럽국가뿐만 아니라 유엔(UN) 가입국의 평균인 38%에도 크게 못 미친다.

왜 한국에서는 난민으로 인정받기 어려운가? 공개적으로 발표하진 않지만, 한국 정부는 난민신청자의 상당수를 '경제이주민'으로 간주한다.

지리적 특성상 유럽처럼 중동과 아프리카의 난민이 쉽게 오기 어렵고, 또 이미 장기 불법 체류자 중에서 체류 연장을 위해 난민을 신청하는 사례가 많다는 것이다.

이흑산 선수를 변호했던 어필의 이일 변호사는 "현행 난민심사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난민으로 인정돼야 할 난민이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며 "가짜 난민을 걸러야 한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니, 정말 보호가 필요한 난민을 판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이일 변호사는 가장 시급한 문제로 1차 난민심사제도를 꼽았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실제 지난 2016년 난민신청자의 1차 심사 결정에 소요된 기간은 평균 5개월이었다. 문제는 이러한 1차 심사에서 난민으로 인정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는 것이다.

또 난민법에 난민심사 기간을 6개월 이내로 제한하면서, 실질적인 검토 없이 형식적으로 심사를 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난민지원제도 미비

난민심사제도뿐만 아니라 난민지원정책도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미 오래 전부터 난민을 받아들인 네덜란드의 경우, 현재 모든 난민신청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의식주(Bed, Bath and Bread) 정책'을 도입, 생계비와 주거를 보장한다.

반면, 한국 정부는 생계비, 주거비를 지원하는 대신 난민심사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취업 활동을 허가하고 있다. 비록 난민법 시행령에 따라 난민신청자는 신청일부터 6개월 동안 생계비 지원을 받을 수 있지만, 정보 부족과 서류 구비의 어려움 때문에 실제 혜택을 받는 이들이 적은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2016년 난민신청자 총 7,542명의 8.6% 가량인 651명만 생계비 지원을 받았다. 또 문제는 1인당 월 40만 원 가량의 생계지원비로는 기본적인 생활조차 어려울뿐더러, 6개월 이후부터는 스스로 생계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언어소통과 불안정한 신분으로 취업이 힘들어, 생계를 해결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이일 변호사는 말한다.

그는 "난민신청자가 일할 수 있는 곳은 모두 일하기 꺼리는 곳 뿐이며, 이런 곳에서 장시간, 불리한 노동조건을 감내하면서 일하고 있다"며 "난민심사를 기다리는 동안 최소한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또 난민신청자에 대한 법률지원도 지적했다. 1차 난민심사가 거절 될 경우 이의신청을 할 수 있으나, 법률지원이 미비하다 보니 신청서를 제출하기조차 쉽지않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아싼처럼 법무부에 이의신청을 통해 난민으로 인정받은 케이스는 2016년 단 10명 뿐이었다.

'인도적 체류자'의 권리

난민신청자뿐만 아니라 '인도적 체류자'에 대한 처우 개선도 문제다.

'인도적 체류' 허가는 난민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들 중 본국으로 돌아갈 경우 생명, 신체의 자유를 침해당할 수 있는 사람에게 거주를 허가하는 조치. 다만, 이들은 난민이 받는 최소한의 의료, 생계지원도 받을 수 없다. 현재 한국에는 1,300명 이상의 인도적 체류자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 중에는 내전을 피해 온 시리아인도 포함돼 있다.

이일 변호사는 "이들은 체류할 자격 외에는 아무런 권리가 없다"며 "앞으로 계속 한국에서 살아가야 할 사람들인데 장기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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