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레 전 대통령의 사망으로 예멘의 미래는 더 어두워졌다

Female supporters of Ali Abdullah Saleh hold up posters during a rally marking his 70th birthday anniversary in Sanaa (23 March 2012) Image copyright Reuters

'아랍의 봄' 당시 다른 아랍 독재자들의 운명을 피했던 예멘의 전 대통령 알리 압둘라 살레가 수도 사나에서 도망치던 중 길거리 총격으로 사망했다.

살레는 비전을 갖고 현대의 예멘을 만든 이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권력을 포기하느니 예멘을 불태워버리려 했던 이로도 기억될 것이다.

죽음으로 인해 그의 협상력이 부재한 상황에서 그가 일으킨 예멘의 내전과 그로 인한 참혹한 인도적 위기는 악화일로를 걷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살레의 죽음은 대부분의 예멘인에게 충격으로 다가온다. 예멘에서 그의 존재감은 컸으며 그는 임기응변으로 나라를 이끌어왔다 (그는 예멘을 다스리는 것을 "뱀의 머리 위에서 춤추는 것"에 비유한 바 있다). 또한 그는 모든 예상을 뛰어넘어 생존해 온 탁월한 협상꾼이었다.

살레가 1978년 7월 북예멘의 대통령으로 취임한 지 얼마되지 않아 CIA의 예멘 지부장은 그가 6개월 안에 사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많은 예멘 지도자들이 내부 권력투쟁으로 사망했었다.

그는 거의 죽을 뻔했던 2011년의 폭탄 공격 등 여러 차례의 암살기도에도 불구하고 33년 동안 집권했다. 2011년 '아랍의 봄'으로 축출된 이후에 다시 권좌를 차지할 뻔하기까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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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살레는 2011년 다른 아랍 독재자들이 맞이했던 최후를 피할 수 있었다

대통령으로서 살레는 북예멘과 남예멘의 통일을 주도했고 두 번의 내전을 치렀으며, 그 과정에서 여러 집단과 동맹을 맺고 깨기를 반복했다. 토착부족들, 이슬람주의자, 기술관료, 지하드주의자, 그리고 최근에는 자이드파 반군이자 과거에는 자신이 절멸시키기 위해 십 년 가까이를 싸웠던 후티와 동맹을 맺었다.

살레는 이번에도 그답게 대담한 책략을 펼치고 있었다. 동맹이던 후티 반군을 공격하고 후티와 함께 싸우고 있던 상대인 사우디아라비아에게 동맹을 제안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책략은 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역설적이게도 그는 권좌에서 쫓겨난 이래로 줄곧 추구하던 것을 거의 이룰 뻔했던 상태였다. 그 또는 그의 아들 아메드 알리를 다시 권좌에 복귀하게끔 하는 제안을 두고 협상 중이었다. 그러나 평생을 위험한 도박으로 보냈던 그는 최후에 자신을 과신하는 우를 범했다.

지난 1일 살레는 자신이 2014년 9월 수도 사나를 함락시키는 것을 도왔던 후티와 갈라선다고 선언했다.

그는 사우디에게 "역사의 새로운 장"을 열자고 제안했다. 사우디는 이란의 배후 지원을 받는 후티를 격파하고 압드라부 만수르 하디 대통령을 복권시키기 위해 2015년 3월 예멘의 내전에 개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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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후티 전사들은 한때 자신의 동맹이었던 살레의 몰락을 축하했다

살레는 2011년 이후 자신 또는 자신의 아들을 다시 권좌에 앉히기 위해 후티 반군의 부흥을 도왔다. 사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나 미국에게는 가장 덜 나쁜 옵션이었다. 살레는 2000년대에 이들 국가의 대테러 작전을 긴밀히 도왔기 때문이다.

내전이 시작되자 살레는 후티의 편에 섰지만 사우디와 사우디의 가장 중요한 파트너인 아랍에미리트와 협상을 원한다는 신호를 꾸준히 보냈다.

그러나 사우디의 왕세자 모하메드 빈살만은 처음에 살레의 제안을 거부했다. 살레의 도움 없이도 이 내전에서 승리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었기 때문이었다. (보도에 따르면 왕세자는 2015년 살레의 아들 아메드 알리를 만났다가 거의 주먹질을 할 뻔했던 이후 살레에 대해 개인적인 적의를 품고 있었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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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알려지기로 살레는 사망하기 전 사우디와 협상을 성사시켰다 한다

2016년 후반부터 전선은 대체로 교착 상태였고 후티와 살레의 동맹에 균열이 가면서 지난 8월 사나에서 있었던 충돌로 살레의 주요한 동맹이 사망했고 이로 인해 역학관계가 바뀐 듯했다.

당시 살레가 후티와 결별한다고 발표하는 것을 조건으로 한 협상이 중재됐던 것으로 보여진다.

후티 반군의 우세가 점차 강해지는 상황에서 이는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높았지만, 처음에는 순탄하게 흘러가는 것 같았다.

살레의 동맹이 사나의 남부 지역을 상대적으로 빠른 속도로 장악했고 사우디는 후티에 대한 '혁명'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친사우디 언론은 살레에 대한 표현을 '쫓겨난 독재자'에서 '예멘의 전 대통령'으로 바꿨다. 그러나 살레의 묘책은 역효과를 낳았다.

3일이 되자 후티 무장대원들은 사나의 대부분을 장악했으며 살레의 가족들의 근거지에서는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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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후티 전사들이 4일 사나 중심부에 있는 살레의 자택을 습격했다

사우디의 지원을 받는 예멘군이 곧 수도 근처의 전선을 뚫고 살레를 구원하러 온다는 소문은 거짓으로 밝혀졌다.

점차 수세에 몰린 살레는 수도에서 도피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의 호송차량은 후티의 검문소에서 차단당했다.

살레는 뒤따른 총격전에서 사망했거나 (몇몇 지지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현장에서 처형당한 것으로 여겨진다.

살레가 사망하고 그의 동맹군이 후티 반군의 맹공에 의해 궤멸되는 상황에서 예멘의 미래는 암울해 보인다.

후티의 뒤통수를 치려했다가 실패했으니 사우디는 이제 '신뢰 제로'의 상태에서 중재에 들어갈 것인지, 아니면 지난 2년반 동안 거의 성공하지 못했던 군사 작전을 밀어붙일지를 결정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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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후티는 "반역 음모"를 격파한 후 수도를 장악했다고 말했다

살레는 분열을 초래하는 인물이었지만 현 상황에서 합의점을 끌어낼 수 있는 가능성이 가장 높은 인물이기도 했다. 그의 죽음은 예멘 내전의 양극화를 심화시킬 따름이다.

후티-살레 동맹은 어디까지나 정략결혼일 뿐이었다.

살레의 시신이 빨간 담요에 싸여 트럭 화물칸에 실리는 모습이 담긴 섬뜩한 영상에서 후티 무장대원들이 "신에게 찬양을!", "후세인의 복수가 이뤄졌다!"라고 말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후티의 창시자인 후세인 바드르 알딘 알후티는 2004년 예멘 북부의 사다에 있는 한 동굴에서 살해됐는데 살레의 명령에 따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살레는 이 정략결혼을 깨뜨리면서 그 이점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지만 처음으로 그의 예상이 그를 저버렸다.

피터 샐리스베리는 채텀하우스의 중동 북아프리카 프로그램의 선임연구위원이자 예멘 분석가이다. 트위터 @peterjsalisbu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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