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스 젠킨스 사망: DMZ 복무 중 월북, 40년 수용소 생활 등 순탄치 못했던 삶

젠킨스는 1965년 주한 미군에 복무 중 DMZ를 넘어 스스로 북한에 들어갔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 Image copyright Reuters
이미지 캡션 젠킨스는 1965년 주한 미군에 복무 중 DMZ를 넘어 스스로 북한에 들어갔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

주한 미군 복무 중 탈영, 북한에 들어갔다 40년 만에 풀려났던 찰스 젠킨스가 11일 숨졌다. 그의 나이 올해 77세.

젠킨스는 지난 2004년 북한에서 풀려난 뒤 일본인 아내와 함께 줄곧 일본에 거주해왔다. 그의 아내 소가 히토미(58)는 북한에 피랍됐던 일본인으로 그도 역시 25년 가까이 북한에 머물다 지난 2002년 풀려났다.

젠킨슨은 아내 히토미씨와 함께 일본 니가타현의 사도섬에 거주하고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지난 11일 사망 당일 그가 집 앞에서 쓰러져 있는 걸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으나 곧 숨졌으며, 사망 원인은 심장질환인 것으로 알려졌다. AFP 통신에 따르면 아내 히토미는 그의 사망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라고 한다.

그는 지난 1960년 주한 미군 하사로 복무 중 탈영해 북한에 들어간 뒤 후에 북한의 외국인 배우로 활약했다. 당시 그와 함께 탈영해 함께 북한에 들어갔던 동료 3명은 북한에서 사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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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젠킨슨은 일본인 아내 사이에 두 딸, 미카와 브린다를 두고 있다

잘못된 계획

젠킨스은 여러 인터뷰와 또 자서전을 통해 자신의 힘들었던 북한 생활을 고백한 바 있다.

1965년 당시 그는 비무장지대(DMZ)에 배치돼 복무 중이였다. 그는 비무장지대의 위험성과 또 이후 베트남 전쟁터로 배치될 수 있다는 판단에 탈영을 결심했다고 밝혔다.

그는 북한에 들어간 뒤 러시아 대사관에 난민신청을 하려고 했다. 난민 지위를 얻은 뒤 미-러 죄수 교환 등을 통해 다시 미국에 돌아가는 것의 그의 계획이었다.

일월의 한 겨울밤 그는 계획을 실행에 옮기기로 결심. 맥주를 몇 병을 비운 뒤 지뢰가 깔린 비무장지대를 걸어 북한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북한 병사에게 스스로 모습을 드러내 붙잡혔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러시아는 그의 난민 요청을 거절했다. 결국, 그와 그의 동료들은 북한 수용소 생활을 하게 됐다.

그는 지난 2005년 미국 CBS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돌이켜 보면 정말 무지했다. 만약 하나님이 계시다면, 정말 그의 도움으로 이겨낼 수 있었다"고 고백했다.

젠킨스과 그의 동료는 김일성 주석과 북한의 사상 교육을 강요 받았으며, 번역 및 영어교사 일에 동원됐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북한 선전영화에 주로 악역으로 출연했다.

젠킨스는 수용소 생활 중 간수로부터 폭행을 당했고, 또 의료행위를 빙자한 고문을 당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미군 상징 문신을 제거한다며 마취 없이 맨살을 파내는 '지옥' 같은 일도 경험했다고 고백했다.

악몽 같은 생활 중 유일한 빛은 아내를 만난 것이었다. 북한은 당시 공작원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일본인을 납치했고, 히토미도 피랍된 일본인에 포함됐다.

아내와 그의 첫 만남은 그들의 의사가 아니라 북한 당국의 지시에 의한 것이었다. 1980년 북한당국은 그와 히토미를 강제결혼 시킬 계획이었다. 하지만 그는 당시 같은 아픔을 지닌 히토미에게 마음이 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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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아내 하토미는 1970년대 북한 요원들에게 일본어를 가르치기 위한 목적으로 북한에 피랍됐다

'굿나잇', '오야스미'

그는 자서전에서 매일 밤 아내에게 '오야스미' (일본어로 잘 자요)라고 인사를 했으며, 아내는 그에게 '굿나잇'라고 답례했다고 한다.

그는 "정체성을 잊지 않고,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를 기억하기 위해 매일 밤 그렇게 했다"고 고백했다. 그는 일본인 아내 사이에 두 딸, 미카와 브린다를 두고 있다.

그는 수용소 생활 당시 다른 북한 수감자보다 배급이나 처우 등에서 우월한 대우를 받았으며, 심지어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절에도 배급을 받았다고 말했다.

아내는 일본과 북한 정부의 협상 뒤 지난 2002년 먼저 일본으로 돌아왔고, 젠킨스은 2년 뒤 딸들과 함께 풀려나 재회했다.

일본에 온 뒤 그는 주일 미군의 법정에 출두해 불명예제대 판결과 금고 30일 형을 받고, 복역 후 부인의 고향인 사도섬에 머물러 왔다.

그는 일본에 정착 후 관광지에서 안내원으로 일하기도 했다. 하지만 바뀐 환경과 또 북한에서의 오랜 생활 뒤 일본 사회에 적응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CBS와의 인터뷰에서 일본에 오기 전까지 한 번도 컴퓨터와 인터넷을 사용해 보지 않았으며, 또 군대 내 여성의 비중이 높아진 것과 흑인 경찰을 목격하고 놀랐다고 말했다.

그는 가장 최근인 지난 8월 LA 타임스와 인터뷰에서, 북한 수용소에서 받은 치료의 부작용과 후유증을 앓고 있다고 고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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