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수트를 사랑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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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806년 설립된 런던 새빌로우 거리의 헨리풀은 윈스턴 처칠, 오스카 와일드 등의 명사들의 옷을 만들어 왔다

런던 메이페어 인근 새빌로우 거리는 남성 수트의 '최고 중의 최고'와 동의어인 곳이다. 이 거리 한가운데에 헨리풀(Henry Poole & Co)의 매장이 있다.

이 회사는 1806년 설립됐다. 그후 100년 동안 영국의 패션은 세계적인 현상이 됐고, 영국이 선호하는 칙칙한 수트는 세계 표준이 됐다. 대체 왜일까?

헨리풀의 수트에 붙어 있는 가격표(약 580만 원)를 보면 비스포크 수트가 엘리트만을 위한 사치라고 여기기 쉽다. 그러나 헨리풀의 사이먼 컨디 전무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수트는 기능적인 옷입니다. 신사들은 여전히 수트를 입고 있으면 편안함과 안락함을 느낍니다. 자신에게 맞는 것을 입어 행복해 하죠." 컨디는 변함없이 지속되는 수트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일에 몰두하느라 자신에게 어울리는 옷을 찾기 위해 이리저리 돌아다닐 시간이 없어요. 값이 나가는 건 분명하지만 이런 수트는 보통 10년 동안 입을 수 있다는 걸 감안할 때 꽤 합리적이라 할 수 있죠."

수트의 기본적인 형태는 17세기부터 존재했고, 현대적인 형태의 수트는 20세기 초에 등장했다. 그 외형은 본질적으로는 동일하게 유지돼 왔다. 초기에는 엘리트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으나 그 이후 평범한 사람들 사이에도 유행했다. 마침내는 여성들도 비즈니스 수트의 변형판을 입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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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헨리풀의 재단사가 옷을 만들고 있다

뉴욕 주립 패션공과대학교 박물관의 국장인 발레리 스틸은 수트가 변함없이 사랑받는 이유가 "현대성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대적으로 보이고 효율적으로 보이죠. 누군가는 수트가 기능적이라고 말할지도 모르는데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수트는 현대성과 기능주의 그리고 신분을 함축하죠."

폴 스미스 경은 오늘날의 수트가 어디서 기원했는지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핑크플로이드부터 비틀즈, 데이빗 보위에게 옷을 입힌 패션 디자이너다.

"저는 매일 수트를 입습니다. 주말에도 입어요." 스미스는 이렇게 말한다. "그냥 저한테 가장 잘 맞아요." 1979년 코벤트가든에서 오픈한 이래 계속 유지하고 있는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스미스는 말했다. 그는 사업가이거나 결혼식, 장례식 또는 면접을 볼 때나 수트를 입던 옛 시절을 회고한다. 그러나 스미스와 조르지오 아르마니 같은 남성복 디자이너 덕택에 전통적인 수트는 변화하기 시작했다.

"우린 수트를 부드럽게 만들었어요." 클래식 수트 디자인에 대해 그는 이렇게 말한다. "어깨 패드를 부드럽게 하고 보다 입기 쉽게 만들었어요. 많은 사람들이 앞을 지퍼로 잠글 수 있는 데님 재킷이나 더 캐주얼한 옷들을 입고 다니기 시작했거든요." 그는 젊은이들이 자신의 매장에 와서 초크 스트라이프 무늬(짙은 배경에 흰색의 희미한 줄무늬가 들어간 디자인)가 들어간 전통적인 옷을 찾을 수도 있지만, 흰색 대신 레몬색 무늬를 넣을 수도 있다고 말한다.

스미스는 군중 속에서 튀는 옷을 만드는 데 노력하고 있지만 클래식 수트는 건재하다. 브라이튼 로열 파빌리언의 패션 큐레이터 마틴 펠은 클래식 수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훌륭한 평등주의의 도구라 할 수 있죠. 옷을 입은 사람이 어디 출신인지 등의 배경에 신경쓰는 대신 바로 일에 착수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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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뮤지션이자 배우였던 데이빗 보위는 수트를 즐겨 입곤 했다

발레리 스틸도 같은 생각이다. "수트를 입고 있으면 그런 건 사라진다는 느낌이 있죠. 튀는 것이 전혀 없고 그저 적절하게 옷을 입었을 따름인 거죠. 저는 이게 매우 중요하다 생각해요."

스틸은 패션 역사가 앤 홀랜더의 저작을 거론한다. 홀랜더는 "수트가 오래 살아남고 있는 이유 중 하나는 그것이 순간 신체를 이상적으로 만든다는 데 있다. 어깨에 패드를 넣고 비율을 조정하여, 대부분의 경우 별로 멋지지 않은 신체를 가림으로써 멋진 신체의 모사품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저술했다.

전시에는 이런 노동자의 외형을 입히는 것이 다른 역할을 했다. 1940년대 여성들은 남성의 역할을 도맡았고, 수트의 남성적인 윤곽도 차용했다. 마틴 펠은 이렇게 설명한다. "실용성에 관한 것이었죠. '해야 할 일을 하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았달까요. 남자들은 전쟁터에 나갔기 때문에 여성은 수트를 차용했습니다. 다만 바지는 입지 않았고 스커트를 입었죠. 그러니까 이제는 일을 하는 게 여자였던 거죠. 실용성을 우선한 옷이었지만 단순한 실용적인 옷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었어요."

단일성

그렇지만 역사적으로 의복은 권력을 확고히 하는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1966년 중국의 문화혁명은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던 마오쩌둥의 잔혹한 시도였다. 다른 권위주의적 지배자들과 마찬가지로 마오는 사람들의 일상의 세세한 부분까지 간섭했다. 무엇을 읽고 보고 말할 수 있는지는 물론이고 심지어 무엇을 입을 수 있는가까지.

중국인들은 인민복 또는 중국 최초의 민족주의 혁명가였던 쑨원의 호를 딴 '중산복'을 입어야 했다. 인민복은 세 가지 색으로 나왔다. 농부들에게는 푸른색, 공산당 관계자들에게는 회색, 그리고 인민해방군 소속에게는 녹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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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7년 6월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쇼에서 디자이너 폴 스미스가 손을 흔들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민주주의적 서구 문명 속에서 수트는 어떤 역할을 할까?

사이먼 컨디는 사업을 할 때 수트를 입음으로써 "당신이 뭔가에 투자를 하고자 하거나 어떠한 사업에 대해 만나서 함께 논의하고자 할 때 상대방은 훨씬 안심하게 될 겁니다"라고 말한다. "당신이 인생에서 뭔가를 진지하게 여기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는 징표라 할 수 있거든요."

"수트가 사라질 거란 생각은 안 들어요." 마틴 펠은 말한다. "정말 훌륭한 디자인적 산물이죠. 우리가 수트를 매일 입든 어쩌다 한번씩 입든 수트가 사라질 것 같진 않습니다."

그리고 폴 스미스가 말하듯 "당신이 13세이든 100세이든, 학생이든 락스타이든, 수트를 입을 일은 항상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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