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웨아: 축구 스타에서 대통령이 되기까지

조지 웨아(51)는 28일 대선에서 현 부통령 조지프 보아카이를 누루고 당선됐다 Image copyright AFP
이미지 캡션 조지 웨아(51)는 29일 현 부통령 조지프 보아카이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당선이 확정됐다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당선된 조지 웨아(51)는 90년대 유럽에서 활약했던 축구 스타다. 그의 삶은 크게 세 시기로 나뉜다.

서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의 슬럼에서 보낸 유년시절, 유럽 최고의 클럽에서 뛰었던 선수 시절 그리고 정치인으로 이제 한 국가의 대통령이 된 현재의 모습으로 나눌 수 있다.

유년시절

웨아가 유년시절을 보낸 클라라 타운은 대통령궁으로부터 차로 30분 거리에 있다. 두 지역은 거리는 가깝지만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늪지대 위에 지어진 클라라 타운은 끊이지 않는 전염병과 과도한 인구로 몸살을 앓는 지역이다. 웨아의 부모는 라이베리아 남동쪽에 자리한 그란드 크루에서 일을 해 유년시절 할머니 품에서 자랐다. 이러한 평범한 배경은 오히려 그가 대중들의 지지를 얻는 데 도움이 됐다.

"웨아는 평범한 서민 출신에서 스타가 됐다. 그의 마음속에는 국가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며 몬로비아 외곽에 거주하는 39세의 올리비아 마이어씨는 로이터 통신에 말했다.

클라라 타운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재능과 의지 덕분이었다. 십대시절 그는 라이베리아의 클럽에서 축구를 시작했고, 축구를 계속 하기 위해 학교를 떠났다. 이 결정은 그가 세계적인 축구 스타가 되는 계기가 됐지만, 훗날 정치활동을 할 때는 발목을 잡기도 했다.

축구 스타

그의 인생을 바꿔놓은 건 21살 때 아르센 웽거 감독과의 만남이다. 당시 카메룬의 클럽에서 뛰던 그의 재능을 발견한 웽거 감독의 안목 덕분에 그는 유럽 무대에 첫발을 딛게 된다.

현재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을 이끄는 웽거 감독은 당시 AS 모나코의 감독이었다. 웨아는 AS 모나코를 시작으로, 파리 생제르망, AC 밀란, 첼시, 맨체스터 시티, 올림피크 마르세유 등 유럽의 여러 명문 클럽을 거치며 세계적인 스타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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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웨아 누구?

  • 1966년 10월 1일 출생
  • 1987년부터 5년간 AS 모나코에서 뛰며 축구선수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
  • 아프리카 출신으로 유일하게 발롱도르 수상
  • 2002년 축구선수 은퇴
  • 2005년 라이베리아 대선 도전 실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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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웨아는 라이베리아 수도 몬로비아의 슬럼에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웨아는 1995년 피파(FIFA) 올해의 선수상과 함께 아프리카 출신 최초로 발롱도르 상을 받으며 축구선수 커리어에 가장 큰 획을 그었다.

그는 유럽에서 화려한 선수 생활을 하면서도 고국의 어려운 상황을 잊지 않았다.

라이베리아 국가대표팀의 원정경기를 자비로 지원하기도 했고, 음악적 재능을 발휘해 내전을 반대하는 헌정 노래를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2014년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 직후에는 사태의 실상을 알리기 위한 노래를 만들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은 라이베리아 대중들의 기억 속에 각인됐다.

과거 그와 함께 선수 생활을 했던 토마스 클롭은 로이터 통신에 "그가 라이베리아를 생각했던 마음은 정말 대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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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05년 대선에서는 현 대통령 엘렌 존슨 설리프에게 2차 라운드에서 패배했다

정치인 웨아

축구 선수였을 땐 많은 대중이 따랐지만, 그가 정치인이 되려 했을 땐 비판하는 이들도 있었다.

하버드 출신의 엘렌 존슨 설리프와 대선을 치렀을 당시에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지 않은 그의 학력이 공격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2005년 대선 당시 지역 신문은 '자질 vs 인기'란 제목의 기사를 1면에 싣기도 했다.

2005년 대선은 설리프의 승리로 끝났다. 웨아는 훗날을 기약했다.

그는 2007년 고등학교 졸업 자격을 획득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4년 뒤 미국 플로리다의 디브라이(DeVry) 대학에서 경영학을 이수했다. 같은 해 그는 부통령 선거에 나섰지만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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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05년 대선 이후 그는 꾸준히 대중의 지지를 받아왔다

2014년 그는 정치인으로서 첫 승리를 맛보게 된다. 라이베리아 몽세라도 카운티 하원의원에 당선된 것이다.

2016년 4월 그는 다시 한번 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야망을 발표한다. 대선 캠페인기간 자신이 서민 출신이란 것과 어려운 경제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것을 피력하며, 정치 경험이 부족하다는 지적에 정면대응했다.

그는 앞서 '올 아프리카 닷컴'과의 인터뷰에서 "제가 프로축구 선수가 되려고 했을 때도 부정적인 시각이 있었다"며 "주변에선 내가 성공하지 못할 거란 얘기를 했지만, 귀담아 듣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전 온갖 악조건들에 굴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하여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축구 스타 중에 한 명이 됐다. 과거 내가 축구선수로 실패할 거란 했던 사람들이 이제 나를 '최고'라 부른다"고 밝혔다.

이제 그의 다음 과제는 대통령이란 칭호에 익숙해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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