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가족이 생각하는 '이산가족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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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이산가족협의회 인터뷰

지난 9일 열린 남-북 고위급 회담. 이날 한국 대표단은 북측에 이산가족 상봉을 제안했다.

당시에만 해도 평창 올림픽을 계기로 남북 간 대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어 이산가족 교류도 곧 재개될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

이날 북측은 대규모 응원단과 예술단을 평창에 보내기로 합의했지만 이산가족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또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의 선제조건으로 2016년 탈북한 북한식당 종업원 12명의 송환을 요구했다는 추측도 있다. 아직 남북 간 협상이 진행중이므로 평창 올림픽 전까지 협상의 여지는 남아있다.

하지만 정작 당사자인 이산가족들은 상봉 행사에 대해 기대가 크지 않다.

상봉에 앞서 생사확인부터

남북이산가족협의회 심구섭(84) 대표는 '상봉 행사'에 선발되는 것이 마치 "로또에 당첨되는 것처럼 어렵다"고 말했다.

또 이번 회담을 통해 이산가족들이 다시 만난다고 해도 "이전과 같이 100명씩 금강산에서 만나는 정치성 이벤트는 큰 의미가 없다"며 "현재 남아 있는 이산가족이 모두 상봉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는 "남측 이산가족 중에 90세 이상인 분이 1만 명 가량되는데, 이분들의 소원은 북에 있는 자식들의 생사확인이다"며 양국 정부가 이산가족 상봉에 앞서 남은 가족들의 생사확인과 편지교환을 추진하길 희망했다.

이미지 캡션 남북이산가족협회 심구섭 대표는 1998년 자신과 같은 이산가족을 돕기위해 협회를 만들었다

정치상황에 따라 중단·재개 반복

지금까지 양국 당국은 총 20 차례 이산가족 만남을 주관했다.

특히 지난 2000년 열린 남-북 정상회담에서 양국 정상은 이산가족들의 만남을 정례화하기로 합의했고, 이후 2007년까지 매년 1~3회 이산가족들의 상봉이 이뤄졌다.

하지만 2008년 금강산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북한군의 총격에 의해 사망한 사건과 이후 한반도에 고조된 긴장감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포함한 모든 교류가 중단됐다.

그 이후 이산가족 상봉 행사는 남북 간 긴장이 고조될 때는 중단됐다가, 완화되면 다시 재개되는 일을 반복했다. 그리고 지난 2015년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 열리지 못하고 있다.

이산가족의 고령화

통일부 집계에 따르면 이산가족수는 해마다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한국 정부는 1988년부터 이산가족 상봉 신청을 받아왔으며, 통일부는 '이산가족정보통합 시스템'을 운영해 매달 이산가족 현황을 공개하고 있다.

2017년 12월 31일 기준 상봉을 신청한 누적 이산가족 수가 총 13만 1344명에 달한다. 그러나 이 가운데 절반도 안되는 5만 9037명만이 생존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불과 일년전에 비해 약 3500명 가량 줄어든 수치다.

연령별 현황을 보면 현재 남아 있는 이산가족 가운데 80~89세가 42.8%(2만 5266명)로 가장 많았고, 90세 이상 초고령자도 18.9%(1만 1183명)로 나타났다. 

이러한 추세라면 수년 안에 이산가족 수는 절반 이하로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심 대표는 "이산가족 1세대가 살아있을 동안에 가족들의 생사확인을 해주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양국 당국차원에서의 이산가족 교류는 중단됐지만, 이산가족들은 스스로 또는 민간 단체들의 도움을 통해 편지교환 등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남북이산가족협회에 따르면 편지는 주로 중국을 거쳐 북한 내 주소지로 배송되며, 편지 뿐만 아니라 사진, 생필품, 의약품 등도 보낼 수 있다고 한다.

심 대표는 "국제특급우편(EMS)을 보내면 중국의 조력자가 취합해 북한에 들여보낸다"며 "대략 한달이면 북한 주소로 배송되고, 답장이 올 경우 다시 중국을 거쳐 한국에 전달된다"고 밝혔다.

다만 평양에서 보내는 편지는 한달 이상 걸릴 때가 많다고 한다.

서신교환 및 생사확인 정례화

이미지 캡션 심 대표는 북한의 동생으로 부터 편지를 통해 어머니의 사망소식을 들었다

통일부에 따르면 90년부터 최근까지 민간차원에서 서신교환 및 생사확인을 한 숫자는 총 1만 5453건이다.

통일부에 보고되지 않는 숫자까지 포함한다면, 2000~2015년 사이에 정부간 이뤄진 서신교환과 생사확인 숫자인 8649건을 훨씬 웃도는 수치다.

또 그동안 이산가족들 스스로 중국 등 제3국에서 북한의 가족과 상봉한 횟수도 총 1754건(3414명)으로 집계됐다.

하지만 북한이 국경 단속을 강화한 뒤로 숫자가 급격히 줄었고, 현재는 중국에서 가족상봉이 사실상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 만나는 것은 어렵지만 민간 차원의 편지왕래는 아직도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신의주 등 국경지대에서 중국 스마트폰을 이용해 통화 뿐만 아니라 위챗(Wechat) 등 모바일 메신저로 문자를 하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간혹 영상통화가 이뤄지는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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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5년 10월 금강산에서 열린 '이산가족 상봉'을 마지막으로 정부 차원의 교류는 중단됐다

함경남도 함흥이 고향인 심구섭 대표도 북한의 동생이 보낸 편지로 열네 살 때 헤어진 어머니의 소식을 들었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제 이름을 부르셨다는 말을 듣고 3일동안 울었어요."

그때가 1992년. 어머니와 어린 동생 둘을 남겨놓고 남한에 내려온 지 45년만의 첫 소식이었다.

어머니의 별세 소식에 그는 북한에 있는 동생에게 돈을 보내 어머니 산소에 묘비를 세워드렸다.

이후로도 그는 동생들과 계속 편지를 교환하고 있다. 그가 고향을 떠날 때 5살이였던 여동생은 이제 75세가 됐다.

"작년에 편지가 왔는데 편지에 '오빠 무릎 위에서 재롱부리던 제가 이젠 할머니가 됐습니다'라고 해요. (읽고) 또 울었어요. 70년 세월이 흘렀으니깐. 근데 이게 제 한 사람의 비극이 아니고 이산가족이 모두 같이 겪고 있는 거예요."

심 대표는 이산가족중에 아직 서신왕래가 가능하다는 것조차 모르는 이들이 많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또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이산가족 1세대들에게는 비용부담이 크다며 "정부차원에서 서신교환 정례화를 추진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내 아들이 살아있느냐, 내 딸이 살아 있는냐 이런 생사확인을 먼저 해주고. 그 다음에 편지를 왕래할 수 있게 해줬으면 좋겠다. 편지 왕래가 힘들면 엽서에 사진이라도 붙여 보낼 수 있게 양국 정부가 이번 회담에서 합의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글: 오규욱, 영상: 최정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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