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 블랙리스트' 논란이 박근혜 정권과 사법부에 대한 새로운 의혹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법원 Image copyright 뉴스1

'판사 블랙리스트 없었다' vs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사실로 확인됐다.' 같은 조사 결과를 두고 같은 날 쓴 기사의 헤드라인이다.

보수 성향 언론과 진보 성향 언론은 이른바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 재조사 결과에 대해 상반되는 보도를 내놓았다.

판사 블랙리스트 이슈에 대한 보수와 진보의 입장 차이가 그만큼 극명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게다가 이번 조사 결과로 사법부와 박근혜 정권의 유착 가능성이 드러나 향후 검찰 조사가 사법부의 전임 수뇌부 전반에 향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판사 블랙리스트' 이슈가 불거진 계기와 연관된 논란에 대해 살펴보았다.

또다른 '블랙리스트'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실에서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 문건을 작성해 보관하고 있다는 의혹이 작년 2월 제기되면서 블랙리스트 이슈가 불거졌다.

법원행정처는 법관들이 재판에 전념할 수 있도록 법원에 관한 행정 기능을 분리하여 만든 행정조직이다. 법원행정처장은 대법원장의 지휘를 받는다.

법원행정처가 관장하는 여러 업무 중 하나가 인사 업무다. 진급에 관심을 갖는 법관들은 법원행정처에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자신에게 비판적인 판사들의 '뒷조사'를 하고 이에 따라 인사상의 불이익을 줄 경우, 사법부의 독립성은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를 제기한 법관들은 진보 성향 법관들이 조직한 한 연구회에서 대법원장의 권한을 제한할 필요성에 대한 세미나를 추진하자 법원행정처가 압력을 넣었다고 주장했다.

Image copyright 뉴스1
이미지 캡션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은 법원행정처에 대한 의혹 조사 요구에 미온적이었다는 비판을 받는다

보수와 진보의 판이한 해석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가 작년 4월 판사 동향을 파악한 파일이 존재할 가능성이 없으며 확인된 정황도 없다는 결론을 냈지만 불충분한 결론이라는 비난이 거셌다.

결국 지난 11월 추가조사위원회가 구성돼 재조사에 들어갔다. 특히 판사 '뒷조사' 문건이 들어 있다는 법원행정처의 컴퓨터에 대한 직접 조사가 이뤄졌다.

추가조사위원회는 22일 법원 내부 전산망에 조사 결과를 게시했다. 문제의 법원행정처 컴퓨터에서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문건이 다수 발견됐다는 것이었다.

"인사나 감찰 부서에 속하지 않는 사법행정 담당자들이 법관의 동향이나 성향 등을 파악해 작성한 문서 가운데 정보 수집의 절차와 수단에 합리성이 인정되지 않고 그 내용이 사법행정상 필요를 넘어 법관의 독립을 침해할 우려가 있는 다수의 문서를 보고서에 담았다."

추가조사위원회는 법원행정처에서 작성한 일선 판사들에 대한 '뒷조사' 문건들도 함께 공개했다.

조사 결과에 대한 보수 언론과 진보 언론의 해석은 천양지차다.

보수 언론은 법원행정처가 소위 '요주의' 판사들에게 인사 불이익을 줬다는 증거가 없으며 오히려 문건에 등장한 판사들이 원하는 보직에 발령받은 사례를 열거하면서 '판사 블랙리스트'가 실체가 없다고 해석한다.

반면 진보 언론은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에 대한 문건을 만든 것이 사실로 드러났다는 데 주목했다.

새로운 의혹이 떠오르다

한편 이번 조사 결과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혐의에 대한 재판이 진행 중이던 2015년,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사이에 의견 교류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문건이 공개돼 새로운 파장이 일 가능성이 생겼다.

Image copyright 뉴스1
이미지 캡션 원세훈 전 국정원장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국정원 내부에 '댓글 부대'를 조직해 2012년 대선과 총선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었다.

추가조사위원회가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원 전 국정원장이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후 우병우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사법부에 대한 큰 불만을 표시하면서" 향후 상고심에서 전원합의체에 회부해줄 것을 희망했다고 한다.

실제로 원 전 국정원장의 3심 재판은 대법원 전원합의체로 넘어갔고 전원합의체는 2015년 7월 2심의 유죄 판결을 파기했다.

현재까지의 '판사 블랙리스트' 논란 관련 조사는 대법원 내부의 자체 조사위원회에 의해 이뤄졌으나 이번 조사 결과로 인해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나설 가능성이 커졌다. 이미 한 시민단체가 작년 5월 양승태 당시 대법원장 등을 직권남용 혐의로 고발한 상태다.

블랙리스트 의혹으로 시작된 논란은 이제 사법부와 정권 간의 유착에 대한 의혹으로 번져가고 있는 모양새다.

관련 토픽

관련 기사 더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