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미투 운동'... 제도적 미비점은?

19일 서울 30 스튜디오에서 열린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성추행 논란 공개시과 기자회견에서 피해 관계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Image copyright 뉴스1
이미지 캡션 19일 서울 30 스튜디오에서 열린 연극연출가 이윤택의 성추행 논란 공개시과 기자회견에서 피해 관계자들이 시위하고 있다

최영미(57) 시인이 '괴물'이라는 시로 문단 내 성폭력을 고발한 후 한국 문화예술계에 '미투(Me Too)' 운동이 거세다.

최영미 시인은 시를 통해 'En 선생'이라는 이니셜로 고은(85) 시인의 성폭력을 고발했다. 고은 시인이 아직까지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는 가운데 고은재단 측은 그가 수원시가 제공해 2013년부터 머물러 오던 창작 공간에서 떠난다고 전했다.

지난 14일부터는 연극연출가 이윤택(66)의 성폭력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그는 19일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했지만, "성관계는 있었지만 성폭력은 아니었다"고 말해 피해자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SNS에서는 그를 둘러싼 고발이 이어졌다.

공통점은 가해자가 절대적인 권력을 갖고 있고, 피해자가 쉽게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폐쇄적 문화를 가진 곳에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점이다. 이렇다 보니 피해자들은 수년간 침묵하다 결국 SNS에 고백하게 된 것이다.

SNS가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 피해 고발 창구가 된 것은 단순히 국제적인 미투 운동에 힘입어서라기보다는 업계 자체에 성폭력 문제를 공정하고 신속하게 다룰 수 있는 제도가 부재하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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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사과하는 연극연출가 이윤택

SNS가 고발 창구?

시를 통해 피해 사실을 밝힌 최영미 시인을 제외하면 최근 잇따른 성추행∙성폭행 고발은 업계 내 정식 고발 창구가 아닌 SNS나 인트라넷 혹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통해서 이뤄졌다.

왜일까?

대다수의 경우 공식 창구가 없거나, 있어도 고발이 묵살되거나 오히려 보복을 받을 수 있는 업계 분위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업계를 조용히 떠나 수년 후 SNS 등을 통해 고발하는 것이다.

최영미 시인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괴물'이 지난 12월 '황해문화' 겨울호에 게재되고 한 언론사에서 인터뷰 요청이 왔지만 "누가 나를 건드리지 않는 한 내가 먼저 말하지 않겠다"고 하며 거절했다고 밝혔다. 그는 "괴물과 괴물을 키운 문단권력의 보복이 두려웠다"고 설명했다.

이윤택의 성추행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한 김수희 극단 미인 대표도 "안 갈 수 없었다. 그 당시 그는 내가 속한 세상의 왕이었다"며 "한, 두 편의 작업을 더 하고 극단을 나왔다"라고 밝혔다.

16일 SNS를 통해 추가 피해를 폭로한 추은경도 "왜 도움을 청하지 않았느냐 묻고 싶을 것이다. 아직 세상 물정을 모르는 내게 그곳은 큰 성 같았고, 덤빌 수 없을 정도로 견고했다"며 "그 곳(극단)이 아니면 넌 어디에서도 배우로 서지 못할 거라던 이샘(이윤택)의 말이 가슴에 콕 박혀 있었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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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검찰 내 성폭력 사건의 진상규명을 촉구하는 캠페인의 일환으로 검찰청 입구에 뿌려진 흰 장미

이러한 양상은 최근 드러난 검찰 내 성폭력 사건과도 닮았다. 지난달 검찰 내 성범죄를 폭로한 통영지청 서지현 검사 역시 2010년 겪은 피해를 지난달 검찰 내부 통신망인 '이프로스(e-Pros)'에 올렸다. 영화배우 겸 대학교수 조민기(52)의 성추행 의혹 제기도 20일 새벽 디씨인사이드 연극·뮤지컬 갤러리에 올라온 글을 통해 알려졌다.

"범정부 기구 출범해야"

고발뿐 아니라 조사 및 재발방지 관련 제도에 대한 요구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연극연출가협회는 19일 이윤택을 영구제명한 뒤 연극계 차원에서 성폭력 대책위원회를 구성할 것을 촉구했다.

하지만 업계 내에서 해결하는 것보다 범 문화예술계 성폭력 조사 및 재발방지 공식 기구가 구성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한 예로 김소희(49)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19일 이윤택이 이끌어온 극단 연희단거리패 해체를 발표하며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법적 조치와는 별개로 극단에서도 도의적으로 내부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그는 안마 논란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이 성폭력이라고는 인식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서 연극계 내에서의 자체 조사 능력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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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김소희 현 연희단거리패 대표는 이윤택이 이끌던 연희단거리패 해체를 발표하며 내부 조사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문단의 경우도 크게 다르지 않다. 고은 시인 논란의 경우, 논란이 제기된 지 한 달 정도 됐지만 진척이 없다.

고은 시인이 한국작가회의 상임고문을 맡고 있고, 작가회의 측은 최근 새 이사장과 사무총장이 선출돼 집행부가 꾸려지고 난 뒤 4월 이사회에서 고은 시인 논란을 다룰 것이라고 밝혔기 때문이다.

최영미 시인은 17일 페이스북을 통해 "문단 내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적인 기구가, 작가회의만 아니라 문화부, 여성단체, 법조계가 참여하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조사 및 재발방지위원회가 출범하기를 요청한다"라고 썼고 다른 여성 작가들도 이 글을 공유했다.

최근 이윤택의 성추행 사태까지 불거지자, 문화체육관광부는 19일 문화예술계 전반의 성폭력 특별실태조사에 조만간 착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예술인복지재단 등을 창구로 피해 사례를 수집한 후, 여성가족부와 함께 대책 마련을 한다는 계획이다.

여성 예술인들은 문체부의 정기 예술인 실태조사에 성폭력, 성차별 항목이 없고, 여성가족부의 성폭력 실태조사 대상에도 문화예술계가 빠져 있다는 점을 문체부에 지적하고 대책 마련을 촉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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