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아베 신조 총리의 악몽같은 한 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Image copyright Reuters
이미지 캡션 아베는 배제된 것일까?

지난 8일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과 만나겠다고 한 깜짝 발언은 일본 정권에 결정적 '한 방'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과 일본이 함께 사전에 철저히 계획해 고수해 온 끈질긴 정치적, 경제적 압박 정책이 한순간에 미국 단독의 온건 정책으로 대체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후자는 임시적일 수 있지만 말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북미대화 수락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과 만나서 어느 정도의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예상치 못한 북미 정상회담은 일본에 1971년 미국 리차드 닉슨 대통령이 베이징에 가서 마오쩌둥을 만날 것이라고 한 발표와 마찬가지 수준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당시는 일본 정권에게 "악몽" 같았다고 표현해도 될 정도로 위기였다.

일본은 이 같은 결정에 대해 불과 20분 전에 연락받았다고 한다. 따라서 이 발표는 1950년부터 미국이 추진해오고 일본이 충실하게 따른 중국을 '억제'한다는 냉전 시대 정책을 미국이 단독으로 폐기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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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아베 총리와 트럼프 대통령

당시 일본은 동맹국 미국으로부터 소외당했고 배신당했고, 그로 인해 생긴 불신은 양국 간 관계를 수년간 시험했다. 과연 이번에는 다른 걸까?

이번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내민 손'이 다른 점이 있다면 타이밍이다. 시기가 이보다 더 나쁠 수가 없다.

일본의 딜레마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지 얼마 안 된 2016년 11월 아베 총리는 워싱턴으로 날아갔고, 미국의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인 새로운 수장을 이해하고자 노력했다. 그런 점을 생각하면 아베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신임을 얻었다고 자신했을 만도 하다.

하지만 단순히 신임을 잃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일본 정권을 깊은 근심에 빠뜨리는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일본은 미국으로부터 버림받거나 미국으로 인해 헤어나올 수 없는 덫에 빠지는 것, 이 두 가지를 가장 두려워했다. 5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면 이 두 가지 시나리오 중 하나가 현실이 될 수 있다.

동맹보다 국익

첫 번째 시나리오를 살펴보자. 거래의 달인이 트럼프 대통령이 어떤 형태로든 간에 김정은 위원장과 합의를 도출해낼 수 있다.

이 경우 그는 전직 대통령이 하지 못한 것을 했다고 내세울 수 있고, 또 러시아 대선 개입 관련 정치 스캔들 또한 어느 정도 덮을 수 있어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두 마리 토끼'를 위해 미∙일 동맹에는 금이 가는 것을 감수하는 거다.

왜냐하면 그 '합의'는 미국의 이익을 대변할 것이지 미국의 동맹국의 이익을 대변할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김정은 위원장은 자신들을 위협하지 않는 것을 조건으로 내세워 왔고, 이는 한국과 일본에 주둔하고 있는 미군의 축소를 초래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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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북미대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동맹국 이익을 얼마나 대변할지는 미지수다

마찬가지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본토를 위협하는 ICBM 동결에만 집중하고 일본이나 다른 나라가 우려하는 중거리 미사일에는 신경을 덜 쓸 가능성도 있다. 1970년대에서 1980년대까지 납북된 일본인에 대한 협상도 배제될 수 있다.

합의에 실패하면?

두 번째 시나리오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합의에 실패하는 거다. 이 경우 트럼프는 외교적 접근은 끝이 났다고 보고 이제 정말 군사옵션밖에 남지 않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난다면 한반도는 물론 일본과 일본 국민들도 엄청난 파괴와 희생을 치러야 한다.

외교적 접근을 강조해 온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경질되고 군사옵션을 선호해 온 강경파 마이크 폼페오가 지명되면서 군사옵션은 가능성이 더 커졌고 일본이 꼼짝없이 함정에 빠질 가능성도 마찬가지로 높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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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되살아난 악몽

문제는 일본 내 아베 총리 부부를 둘러싼 부패 스캔들 역시 아베를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거다.

모리토모학원이 국유지를 감정가인 9억3천400만엔(약 93억원)보다 8억엔이나 싼 1억3천400만엔(약 13억3천만원)에 사들이는 과정에서 아베 총리 부부가 직간접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은 지난해 처음 나왔었다.

그런데 하필 이 시기에 때마침 이 스캔들이 다시 이슈화된 것이다.

지난 2일 아사히신문이 재무성이 아베 총리 부부 관여 사실을 누락하는 등 문서를 조작했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지난 9일에는 국유지 매각 당시 실무를 담당한 직원이 자살하는 등 사건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야당은 내각을 거세게 비판했으며 야당의 사퇴 압박에 국유지 매각 당시 재무성 국장으로 재직했던 사가와 노부히사 국세청 장관은 결국 9일 사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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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모리토모학원 국유지를 감정가보다 훨씬 싸게 사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퇴 압박

야당들은 아베 총리도 이 문제의 책임을 져야 한다며 내각 총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2월 국회에서 이 의혹이 제기됐을 때, 아베 총리는 "나와 아내가 관여했다면 총리도 국회의원도 그만두겠다"고 큰소리를 쳤다.

아베 총리는 "전모가 밝혀지면 신뢰회복을 위해 조직을 재건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다"고만 밝힌 상태다.

야당들은 사임한 사가와 노부히사 국세청 장관의 직속 상관이었던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상도 사퇴해야 한다고 하고 있지만 아베 총리에게는 아소 부총리가 필요한 이유가 사건의 전모를 밝히는 거 외에도 두 가지가 있다.

우선, 아소 부총리가 있으면 그가 일종의 '방패'가 되어 비난의 대상이 된다. 두번째로 아소는 자민당내 제2파벌(의원 59명)을 이끌고 있기 때문에 그가 있어야 9월 총재 선거 때 3연임 가능성이 커진다.

이번 스캔들로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한 달 전에 비해 6% 포인트 가량 급락하면서 45~48% 수준을 기록했다.

지난해 사학 스캔들이 처음 나왔을 때 아베 총리의 지지율은 지난해 20%대까지 추락했던 거에 비하면 아직은 높은 편이다. 또 이번 스캔들로 일본 국민들이 외면해 온 야당들이 더 많은 지지를 얻을지도 알 수 없다.

역설적으로 이 시기 아베 총리의 구원 투수는 '북한'일 수 있다. 일본 국민은 북한의 최근 도발을 매우 우려스럽게 보고 있으며 5월 북미회담이 긴장을 완화하기를 바라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경험이 풍부한 정권이 필요하다.

좋은 통치에도 좋은 외교동맹에도 신뢰가 필수다. 일본과 미국이 신뢰를 회복하고 유지시킬 수 있을지 지켜볼 문제다. 아베와 일본 국민과의 신뢰도 마찬가지다.

존 닐슨-라이트 박사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일본 정치와 국제 관계에 대해서 강의하고 있으며, 채하우스에서 아시아태평양 프로그램의 동북아시아 분야 시니어 펠로우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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