틸러슨-트럼프: '잘못된 만남'의 시작과 끝

렉스 틸러슨 전 국무장관 Image copyright Getty Images

지난해 10월 있었던 라스베가스 총격 사건은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대통령으로서 처음 국민을 위로한 사례였다.

총격범은 라스베가스 중심가에 위치한 만델레이 호텔 32층에서 음악 페스티벌에 참가한 시민들을 향해 무차별 총격을 10분간 퍼부었다. 이 사건은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내며 역대 최악의 총기 난사로 기록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라스베가스로 가서 피해자 가족들, 구조대원들 등을 직접 만났다. '에어포스 원 (대통령 전용기)'으로 돌아가며 위기를 꽤 잘 관리했다며 만족했다.

하지만 그 감정은 오래가지 못했다. 워싱턴에 도착하자마자 그를 '화나게'할 일이 두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그의 라스베가스 방문이 주요뉴스로 다뤄지지 않았다. 대신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이 진짜 트럼프 대통령을 '멍청이 (moron)'이라고 비난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기를 거부한 일이 주요 속보로 다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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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청이 (moron)' 게이트

지난해 7월 있었던 이 '멍청이 (moron)' 게이트는 틸러슨 장관이 국방부 회의에서 미국의 핵 능력 강화를 추진하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멍청이'(moron)이라고 비난했다는 주장을 일컫는다.

누구나 '멍청이'라고 불린다면 이를 쉽게 잊기는 힘들 거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과 같이 개인적인 악감정을 고이 품는 성격은 더하다. 트럼프가 사적인 앙금을 품는 것은 마치 식물학자가 희귀 난초를 온갖 정성을 갖고 가꾸는 것과 비슷하다.

틸러슨과 트럼프의 어긋난 관계는 이때부터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잘못된 만남

틸러슨과 트럼프는 '물과 기름' 같은 조합이다. 둘 다 기업가 출신이라는 건 비슷하다. 물론 틸러슨은 세계적인 석유업체 엑손모빌의 수장이었고, 트럼프의 사업 영역은 미인대회도 포함했다는 면에서 사뭇 다르긴 하다.

하지만 기업가 출신이라는 거 외에는 굉장히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 틸러슨을 트럼프에게 추천한 건 콘돌리자 라이스 전 국무장관과 로버트 게이츠 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다.

그들은 틸러슨이 전직 엑손의 CEO로서의 경험을 살려 미국의 이익을 전 세계에 대변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다. 또 미국 내부에서는 애국심을 유도하며, 대외적으로는 전 세계인을 근심에 빠뜨린 '트럼프 화법'과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주의 (America First)'의 통역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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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틸러슨 장관 임명 반대 시위

'맞지 않는 옷'

하지만 취임한 틸러슨은 시종일관 그 역할에 맞지 않아 보였다. 마치 교회에 가기 위해 자신에게 맞지 않은 양복을 입은 어린아이와 같았다.

러시아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교장관과의 공동 기자회견이 이런 모습을 가장 잘 보여줬다. 라브로프는 시원시원한 매너를 뽐내며 달변가, 나아가 다변가의 면모를 보였지만, 이에 비해 틸러슨은 전형적인 텍사스 출신답게 말수가 극히 적었다. 오히려 긴장하고 무언가 두려운 듯 보였다.

사실 두려울 만도 했다. 트럼프에 지시에 따라 국무부의 대대적인 예산삭감에 나섰지만 막상 구체적인 대책이나 계획이 없었다. 인력·조직감축으로 관리직의 부재가 발생해 직원들은 두 배, 세 배의 업무량을 소화해야 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미국 외교의 허브인 국무부는 점점 무력화됐다.

위에서도 압박

상사인 트럼프 대통령과의 호흡도 당연히 안 좋았다.

'멍청이 (moron)' 게이트 뿐만 아니라 둘은 개인적으로도 일로도 어울린적이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늘 틸러슨 장관을 저평가했다.

북한 문제에 있어서 '틸러슨이 시간 낭비하고 있다'라고 트위터에 썼고, 다른 외교 이슈는 트럼프 대통령의 가족들에게 맡겼다.

직책만 갖고 있을 뿐 실질적인 권한은 없는 듯 보였다. '국무장관'이라는 직책으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지만 실제로 그 직책은 허울뿐 대통령의 생각에 미치는 영향력은 전혀 없어 보였다.

어찌 되었건 적어도 대외적으로 그는 충성하는 듯 보였고 트럼프 정권의 당당한 일원인 듯 행동했다. 물론 실상은 그와 사뭇 달랐지만 말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이 새로운 국무장관이 될 것이다. 그는 환상적인 일을 해낼 것이다. 그 동안의 임무에 감사하다, 렉스 틸러슨! 지나 하스펠 CIA 부국장이 새로운 첫 여성 CIA 국장이 될 것이다.모두 축하한다.

해고도 트위터로

단, 지난밤 아프리카 순방 귀국길에서는 태도가 달랐다. 러시아 출신 이중 스파이 암살 시도에 러시아 정부가 연루됐을 가능성이 크다는 영국 정부의 조사 결과에 이례적으로 솔직 담백한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백악관의 여태껏 태도는 러시아 비난 대열에 합류하지 않는 것이었는데 틸러슨이 전용기에서 영국 스파이 사건에 사용된 독성물질은 "분명히 러시아에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고 말한 것이다.

국무장관직에서 곧 물러날 것을 안 것일까? 아니면 그냥 이제 신경 쓰지 않고 속 시원히 말하겠다는 셈이었을까? 어찌 되었건 귀국길에 그의 운명은 정해졌다.

맞지 않는 두 정치인이 너무 오래 서로 엮여 있었다. 성격도, 시각도 그리고 스타일도 너무 달랐다. 그리고 그 '잘못된 만남'의 끝은 그동안의 그들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국무부 직원 한 명이 대통령이 트위터 메시지를 쓴 것을 알려줬다. 틸러슨은 트위터를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트위터 메시지는 틸러슨에게 출력된 종이로 전달됐다.

상사에게 해고 소식을 전해야 했던 담당 직원도 심란했지만, 트위터 메시지로 해고된 세계적인 대기업 전직 CEO의 심정은 과연 어땠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기자들에게 "렉스 (틸러슨)은 이제 더 행복할 거다"라고 말했다. 아마 그 이상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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