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북한이 대화에 나온 게 제재 때문이라는 생각은 큰 오산'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
이미지 캡션 정세현 전 장관은 1·2차 남북정상회담을 개최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냈다

한반도 정세가 급변하고 있다.

많은 이들의 예측을 깨고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5월 역사적인 만남을 갖기로 한 가운데, '평화협정', '북미수교' 체결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이와 함께 만약 북미정상회담이 잘 안 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과 같이 예측이 어려운 정상들이 어떤 선택을 할지, 그것이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로 몰아가지 않을까 하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4월 27일에 개최하는 것에 남북이 합의한 가운데, 남북정상회담 준비를 위한 자문단 중 한 명인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을 만나 그의 생각을 물었다.

정 전 장관은 통일부 출신으로 처음으로 장관(2002년 2월~2004년 6월)직에 오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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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조명균 현 통일부 장관(왼쪽)과 정세현 전 장관

Q. 북한이 대화에 나온 건 제재 때문인가?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이 선도한 제재의 결과로 북한이 굴복하고 나왔다고 얘기하는데 아전인수다. 북한은 2016년 5월 7차 당대회 때부터 핵미사일 능력의 고도화를 마무리하고 나면 경제 쪽으로 방향을 튼다고 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기도 전이다.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시절이다.

그걸 위해 5개년 경제 계획을 세워 놓았고 금년도가 3년 차다. (북한은) 11월 29일에 ICBM 발사 후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그리고 한 달 동안 준비해서 대화에 나온 거다. 이제는 미국이 자신을 1대1로 상대해줄 수밖에 없을 정도의 협상력, 외교력이 생겼으니까 '빅 딜'을 하자는 것이다.

북한의 대북제재가 10개가 넘는다. 그런데도 북한 경제는 꿈쩍 않고 해마다 3~4%씩 성장했다. 고기를 못 먹어도 세끼는 먹고 살았다는 얘기다. 제재가 아파서 나왔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북한 문제 푸는데 전략이 잘못 세워진다.

Q. 힘들게 만든 핵을 북한이 과연 포기하겠느냐는 주장도 있다.

그건 그동안 북한이 핵을 포기하지 않은 이유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북한이 비핵화와 바꾸려 하는 건 북미수교다. '체제 안전 보장'은 북미수교를 말하는 거고, '군사적 위협 해소'는 평화협정이 체결되면 된다.

북한은 25년 전부터 이걸 주장해 왔다. 그동안에 미국은 핵은 '나쁜 행동(bad behavior)'이다, 무슨 '대가(reward)'냐라는 입장이었다. 트럼프가 북미정상회담 하겠다고 나서는 거 보면, '비핵화 하겠다는 것만 확실히 해주면 그 정도는 (평화협정 또는 북미수교) 해줄 수 있다'는 의지가 있는 걸 수 있다. 김정은 또한 이번에 작심을 하고 미국으로부터 외교 정상화를 얻어내려고 할 것이다. 북한이 핵을 포기할 리가 없다고 말하는 건 이런 내막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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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지난해 화성12 미사일 발사 참관하는 북한의 김정은 위원장

Q. 그렇다면 미국이 주장하는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가 현실적으로 가능하긴 하나?

결국에는 핵물질, 핵시설, 핵무기인데, 핵물질은 (북한이) 신고해 (외부기관이) 반출하고, 핵시설은 파기하고, 핵무기도 들고 나가서 해체해서 폐기하면 된다.

'챌린지 인스펙션(challenge inspection)'이란 게 있다. 아무 데나 가서 이거 좀 볼 수 있냐 하고 보는 사찰이다. 북한이 받아들이느냐 안 받아들이냐 문제인데 챌렌지 인스펙션까지 받아들여야만 너희들이 필요로 하는 북미수교나 평화협정을 해줄 수 있다 하면 받을 거다.

Q. 북한 입장에서는 핵물질 조금 숨겨놓고 플랜B를 마련해 놓을 수 있지 않겠는가?

신뢰가 형성되지 않으면 시간이 길어지고 그렇게 되면 트럼프만 타격을 입는 게 아니라 김정은도 타격을 입는다. 국제적으로 더 나쁜 나라가 되면 안 된다. 경제 발전을 위해서 비핵화까지 약속하며 미국과 정상회담을 하는 거고, 북한 주민들한테는 줄 수 있는 파이를 키우기 위해 미국과 정상회담까지 하는 거다.

미국정상회담을 하려면 CVID(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를 주장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경제 지원을 받아내고 국제적으로 정상 국가 대접을 받아내려고 하는 건데 제대로 안 해서 중간에 미국이 '회담 그만하자', '다시 압박과 제재를 계속해야겠다'하면 아무리 정보가 차단된 북한이라고 해도 김정은의 리더십은 타격을 받는다. 그건 정치지도자로서는 결코 해선 안 될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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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매파 중 매파'로 알려진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

Q.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 내정자는 '리비아식' 비핵화를 주장하고 있다. 가능할까?

북한은 리비아 방식은 안 한다고 했다. '선폐기 후지원'은 안된다는 거다. 북한은 반드시 우크라이나 식 비핵화를 요구할 거다. 소련이 우크라이나에 배치했던 핵무기를 소련이 붕괴되면서 그냥 놔두고 갔다. 우크라이나는 독립했고, 나중에 이 핵무기를 폐기시켜야 하니까 미국이 돈 주고 갖다가 자기들이 폐기를 했다. 스와프(swap)한 거다.

2005년 9월 19일 9.19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6자회담 참가국들이 북핵문제 해결의 로드맵이라 했다. 내용이 '1. 북한의 비핵과, 2. 북미수교, 일북수교, 3. 대북경제지원, 4. 평화체제 전환, 5. 말대말 행동 원칙으로 이행한다'였다. 하지만 바로 이튿날 미 재무부가 '마카오은행(BDA) 북한 계좌의 돈세탁' 의혹을 제기하며 북한 자금 2천500만 달러를 동결시켰다.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인 지원을 줄게' 하고 안 줬다. 북한은 이제 '선폐기 후지원'은 안 믿을 거다.

Q. 남북회담과 북미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거라 보나?

안타깝고 서글픈 일이지만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최대 피해 당사자는 한국이다. 피해 당사국이지만 해결할 수 있는 결정권은 우리한테 없다. 북한하고 미국이 갖고 있다. 북한은 핵을 폐기할 수 있는 당사자고, 미국은 핵을 폐기하도록 설득하거나 반대급부를 줄 수 있는 결정권을 갖고 있다. 남북정상회담 후에 북미정상회담으로 바로 넘어가는 것은 북핵 문제가 상당히 빨리 해결될 가능성 시사하는 거다.

그런 점에서는 2007년 남북정상회담보다도 훨씬 더 핵무장 관련해서 희망이 있다. 사실 그때는 노무현 대통령도 임기 말년이었고 부시 대통령도 2008년에 임기가 끝나기 때문에 임기가 얼마 안 남은 상황이었다.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도 임기 초반이고 트럼프 대통령도 임기 초반이다. 남북정상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생기면 북미정상회담으로 넘어가면서 북핵 문제가 합의가 되면 트럼프 임기 중에 상당히 빠른 속도로 평화가 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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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김정은 북한 위원장은 지난 25일부터 28일까지 중국 베이징을 비공식 방문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Q. 김정은의 중국 방문은 어떤 영향 미칠까?

나쁜 영향은 주지 않을 거다. 트럼프가 처한 국내 정치 상황을 보면, 빠른 시간 내에 성과를 내야 한다. 섹스스캔들도 있고, 11월 중간선거도 있고 업적을 내야 한다. 이게 중국의 몸을 달게 했다.

'차이나 패싱' 때문에 시진핑이 김정은을 불렀을 것 같고, 김정은은 '그래, 그럼 설명해주지. 그 대신 앞으로 회담에서 한국과 미국이 2:1로 압박해올 때 말려달라' 그런 얘기를 했을 것으로 보인다. 특사 교환, 앞으로 정상 간 왕래도 자주도 하고 긴밀한 소통 하자고 했다. 앞으로 북핵 문제 해결하기 위한 6자 회담이 열릴 경우, 북한 편이 되어 달라는 메시지로 보인다.

Q. 김정은은 어떻게 평가하나. '비이상적이다' 등 안좋은 평가도 있다.

명색이 일국의 지도자다. 이상한 애고 불가측성이 많고 도저히 나라를 이끌 수 없다고 생각됐으면 (김정일이) 후계자로 지명하지 않았을 거다. 지금 30대 초반인데 집권 6년 차다. 저렇게 확실하게 권력을 장악한 거 보면 나름대로 굉장히 계산이 빠르고 정확한 거다. 실수 안 하기 때문에 버티는 거다.

폭압 정치만으로 되는 거 아니다. 아무리 북한이 폐쇄 사회라고 할지라도 그 밑에 있는 90대, 80대, 70대가 줄줄이 있는데 김정은 떠받드는 거 보면 뭔가 있다는 거다. 김영남은 1928년생으로 할아버지뻘이다. (처형으로) 복종을 끌어낼 수는 있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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