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정상회담을 보는 또 다른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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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L기 납치 피해자 황원 씨 가족의 이야기

경기도 부천의 한 인력시장. 황인철(51) 씨는 매일 새벽 동이 트기 전 이곳으로 향한다.

벌써 10년 가까이 일용직 노동을 하는 이유는 48년 전 '행방불명'된 아버지를 찾기 위해서다.

"일용직을 하면 언제든 제가 원할 때 시간을 뺄 수 있어서 좋아요. 직장이 있으면 그러기가 쉽지 않거든요"

지난 1969년 12월 11일 강릉발 서울행 대한항공 여객기 (KAL-YS-11기) 한 대가 이륙 15분만에 대관령 상공에서 납치되어 북한 원산 공항에 착륙했다.

북한은 이듬해인 1970년 2월 탑승객 50명의 전원 송환을 약속했다. 그러나 애초 약속과 달리 탑승자 중 승객 39명만 돌려보냈고 승무원 4명과 나머지 승객 7명은 여전히 돌아오지 못했다.

황인철 씨 아버지 황원(81, 당시 32세) 씨도 미송환자 11명에 포함됐다. 아버지는 당시 MBC PD로 강릉에 재직 중이었으며, 사건 당일 출장길에 올랐다가 아직도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어느덧 48년이란 세월이 흘러 이미 많은 사람의 기억에서 희미해진 사건이 됐다. 그러나 피해자 가족에게는 여전히 아픔으로 남아 있다.

이미지 캡션 1969년 12월 항공기 납치로 납북된 황원(81)씨는 당시 방송국 PD로 강릉에 재직 중, 서울 출장길에 올랐다가 48년이 넘도록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황인철 씨는 두 살 때 헤어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없다. 하지만 명절이나 가족모임 때마다 대화의 주제는 늘 아버지였다고 한다.

처음에는 궁금증과 막역한 그리움이 때론 원망이 되기도 했다. 아버지가 가족을 버렸다고도 생각했다.

그러나 그도 아버지가 돼서야 비로소 그 당시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릴 수 있었다.

"저도 자식을 보니까 가슴 아픈 거죠. 이렇게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예쁠 때, 보지 못하고 생이별을 했다고 생각하니 너무나 큰 고통을 느꼈습니다"

그가 아버지의 송환을 위해 직접 발 벗고 나선 건 지난 2001년. 그해 이산가족 상봉에서 아버지와 함께 납북된 승무원 성경희 씨가 포함된 것이다.

"제가 두 살 때 저희 아버지가 납치를 당했는데, 공교롭게도 그때 제 큰 딸이 두 살이었어요. 딸의 모습을 보면서 이렇게 예쁜데, 자식을 볼 수 없는 아버지의 심정은 어떨까 생각이 들었습니다"

성경희 씨가 어머니와 상봉하는 모습을 보면서 그도 아버지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됐다.

그는 올해로 벌써 17년째 아버지를 찾기 위한 캠페인을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아버지의 생사확인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지난 2006년 북한 적십자는 한국 측에 KAL기 미송환자의 '생사확인 불가' 통지서를 보냈다.

"2006년 생사확인 불가라는 통지서를 받았을 때 저는 확신했습니다. 살아도 북한에 계시고, 돌아가셔도 북한에 계실 텐데 생사확인 불가는 아버지가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황인철 씨는 전국을 다니며 아버지와 남은 10명의 송환을 위한 캠페인을 벌였다. 이를 위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두고 일용직을 시작했다. 또 여러 단체의 도움으로 유엔(UN)과 국제적십자위원회에 진정서를 보내기도 했다.

이미지 캡션 황인철 씨는 두 살 때 북한에 납북된 아버지를 찾기 위한 캠페인을 17년 동안 벌이고 있다

북한에 억류된 사람들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2014년 발표된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의 보고서는 KAL기 납치 문제를 언급했고, 이후 북한인권 결의안에도 포함됐다.

오는 27일 남북 정상회담을 앞두고 있지만 황인철 씨의 마음은 더 무겁다. 그는 KAL기 납북자를 '이산가족'으로 분류하고, 생사확인과 송환을 위해 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다며 한국 정부에 실망감을 드러냈다.

황인철 씨는 아버지를 찾기 위한 노력이 두 장벽에 가로막혀 있다고 한다.

"첫 번째 벽은 KAL기 납북 사건은 1969년에 발생한 과거의 사건으로 현재 우리와 관계없다는 시각이며, 또 하나는 이는 북한의 범죄 행위로 해결하기 어렵다는 논리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KAL기 사건은 "현재 진행 중"이라고 강조하며, 27일 정상회담에서 KAL기 납북자 문제를 "인도적 차원에서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권단체들에 따르면 현재 북한에는 KAL기 납치 피해자 외에도 10여 명이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통일부는 북한에 억류 중인 것으로 확인된 한국인은 모두 6명으로, 이 가운데 3명은 중국에서 탈북민을 돌보며 선교 활동을 해오던 종교인이라고 밝혔다.

나머지 3명은 탈북했다가 다시 북한에 억류 된 탈북민인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김정욱(55) 선교사는 중국 단둥에서 6년여간 탈북민 쉼터를 운영해오다 2013년 11월 북한에서 평양에 들어가 진 3일 만에 억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김 선교사는 2014년 5월 북한에서 국가전복 음모죄 등으로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받았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서 활동하다 억류된 김국기(64) 목사와 최춘길(55) 선교사도 같은 형을 선고받고 복역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북한은 이들이 국가정보원의 지원을 받아 '간첩행위'를 했다고 주장하며, 최고재판소에서 이들에게 무기노동교화형을 선고하는 법정 모습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정욱 선교사를 후원했던 주동식 씨는 "2014년 재판에 대한 보도 이후 김 선교사에 대해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평양 인근의 포로수용소에 들어갔다는 것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3월 한반도 인권ㆍ통일 변호사 모임을 비롯한 인권단체 30여 곳은 남북 정상회담에서 납북자 생사확인 및 송환, 북한에 억류 중인 6명의 석방, 국군 포로 생사확인 및 송환, 이산가족 왕래 등을 요구하는 청원서를 청와대에 제출했다.

북한 인권단체들은 이번 남북정상회담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 체제 구축' 두 의제에 집중돼, 정작 북한에 억류된 피해자들 문제는 논의하지 않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현재 북한에는 한국인 6명 외에도 미국 국적자 3명도 함께 억류 중이다. 이중 한국계 김동철 목사는 간첩행위 혐의로 노동교화형 10년을 선고받고, 2015년 10월 부터 북한에 억류중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은 지난 2016년 김 목사의 모습을 CNN 방송을 통해 공개하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미국은 북한과 정상회담을 앞두고 실무접촉을 가지며, 미국인 억류자 송환 문제를 협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Image copyright AFP/Getty Images
이미지 캡션 인권단체들은 최근 북-중 국경지대의 경계가 더 강화됐다고 한다

강제 북송

인권단체들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집권 이후 국경 단속이 더 강화됐다고 한다.

통일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에 입국한 탈북자 수는 1,127 명으로 이는 2011년 2,706명의 절반 수준이다. 한때는 탈북자 수가 3,000명에 달했던 적도 있다.

한동호 통일연구원 북한인권센터장은 "불과 3~4년 전만 하더라도 2차, 3차 탈북, 다시 말해 강제송환이 되더라도 다시 나오는 경우들이 있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제는 한번 잡혀 들어가면 일단 나오기도 힘들고, 기본적인 통제가 강화돼 탈북 비용도 비싸졌다"고 말했다.

최근 북-중 관계 개선 후 중국 내 단속이 강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김태훈 대표는 "현재 구금된 사람 중에는 새로이 탈북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국에 나온 지 7~8년 된 탈북자들도 있다"며 "그만큼 단속이 강화됐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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