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남쪽 땅도 아니고 북쪽 땅도 아닌 이곳의 굴곡진 역사

미군이 1953년 6월 16일 촬영한 판문점 사진. 아이를 등에 업은 아낙이 농사일에 한창이고, 등에 업힌 아이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 뒤로 보이는 건물이 휴전회담이 이뤄진 회담장이다 Image copyright 국사편찬위원회
이미지 캡션 미군이 1953년 6월 16일 촬영한 판문점 사진. 아이를 등에 업은 아낙이 농사일에 한창이고, 등에 업힌 아이는 카메라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 뒤로 보이는 건물이 휴전회담이 이뤄진 회담장이다

오는 27일, 전 세계인의 시선은 이곳에 향해 있을 것이다. 바로 한반도의 중간에 위치한 판문점이다.

이곳에서 한국 문재인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만나 악수를 하고, 대화하며, 만찬을 즐기는 역사적인 장면이 연출된다. 나아가 65년 동안 계속돼 온 한국전쟁의 종전 선언의 시작이 될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다.

판문점은 원래 초가집만 몇 채 있는 조용한 농촌 마을이었다. 널빤지로 된 문과 다리가 있어서 '널문리'로 불렸다. 하지만 1951년 10월 25일 널문리에서 휴전회담이 열리면서 운명이 바뀌었다. '냉전의 상징'이 된 판문점의 굴곡진 역사를 돌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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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51년 11월 미군이 촬영한 사진으로 널문리 일대의 모습이다. 원으로 표시된 곳이 휴전회담이 이뤄진 판문점이다. 오른쪽의 둥근 물체는 중립지대임을 표시하기 위해 띄운 열기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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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51년 10월 휴전회담이 지금의 판문점 지역에서 재개되며 조용한 마을의 운명이 바뀌었다

열기구로 중립지대 알려

판문점은 한국전쟁 휴전회담이 열린 곳으로 알려졌지만 사실 휴전협정은 처음에는 개성에서 열렸다.

하지만 개성이 공산군의 통제에 있었고, 이로 인해 중립지대 위반 사건이 종종 발생했다. 북한군은 대안으로 한반도 중간에 위치한 작고 외딴 마을 '널문리'를 제안했다.

개성에서 한양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널문리에는 당시 초가집 몇 채가 전부였다.

북한군의 제안이 받아들여져 1951년 10월 25일 휴전회담은 널문리에서 천막을 치고 재개됐다. 중국 측이 널문리를 한자표기로 '판문점'으로 표현하면서 지금의 이름으로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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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저녁 늦게까지 불이 켜진 휴전회담장의 모습. 1953년 6월 23일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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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휴전협정 조인을 위해 조인식장을 새로 짓는 모습. 이 건물들은 현재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에서 북쪽으로 1km 정도 떨어져 있어 북한 측에 편입된 상태이다. 1953년 6월 23일 사진

지금의 JSA는 휴전협정 이후 조성

휴전회담은 진전이 없었고 장기화되었다. 포로 교환 문제로 난항을 겪다가 1953년 4월에야 해결의 실마리가 잡혔다. 휴전협정 조인을 위해 조인식장이 지어졌다.

이후 회담장과 조인식장은 둘 다 북한 측에 편입되어, 방문할 수는 없고 판문점에 가면 멀리서 볼 수만 있다. 조인식장 건물은 북한이 전시시설로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지금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은 1953년 7월 휴전협정이 조인된 이후 새로 조성된 것이다. 공동경비구역을 대표하는 파란색 단층 건물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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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53년 10월 군사정전위원회 본부구역 및 공동경비구역 설치

유엔군사령부의 김영규 공보관은 이 건물들이 "임시를 뜻하는 템포러리(temporary)의 앞 글자인 T를 따서 T1, T2, T3 등으로 명명되었다"며 "당시는 아마 누구도 이곳이 이 상태로 이렇게 오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T1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T2는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 T3는 공동 일직장교 사무실이다. 인민군은 회색 회담장 4동을 관리하고 있다.

판문점 내 첫 남북회담은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1971년 8월 20일 열린 '남북적십자 파견원 제1차 접촉'이었다.

1971년 9월 20일 남북적십자 제1차 예비회담이 진행되는 판문점에서 한국의 여성 기자들과 북한의 여성 기자들이 활짝 웃고 있는 칼라 사진이 깊은 인상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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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71년 남북적십자 제1차 예비회담(중감위회의실)의 한국 기자들과 북한 기자들의 담소

'도끼만행 사건'으로 분할경비

오늘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의 상징적인 모습은 단연 대치 상태로 경비를 서는 남측과 북측이다.

하지만 원래 남측과 북측이 한데 어울려 경비를 섰었다. 이를 바꾼 건 1976년 8월 18일 '도끼만행 사건'이다.

'도끼만행 사건' 이전엔 공동경비구역 내에서 남북 군사 간 자유로운 왕래도 가능했는데, 이로 인해 물리적 충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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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75년 북한국 유엔사 헨더슨 소령 폭행 사건

1975년에는 군사 정전회담이 열렸는데 북한 측 기자가 UN 소속 헨더슨 소령에게 시비를 걸었고, 헨더슨 소령이 벌떡 일어서자 근처에 있던 북한군 10명이 달려들어 폭행한 사건이 있었다.

이듬해 도끼만행 사건이 일어나는데 북한군이 나무 가지치기 작업을 감독하던 미군 장교 2명의 도끼를 빼앗아 살해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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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 사건으로 미군 장교 2명이 숨졌고, 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긴장이 고조되면서 자칫 전쟁까지 이어질 뻔했다.

이후 판문점 내에도 콘크리트로 된 군사분계선(MDL)이 생겼고, 판문점 공동경비가 군사분계선에 따라 분할경비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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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78년 표류 북한선원 송환. 한국이 제공한 옷가지를 던지고 욕하며 귀환했다

남측이 '평화의 집' 짓자 북측도 '통일각' 지어

한국은 1965년에 '자유의 집', 북한은 1968년 '판문각'을 세웠다.

하지만 27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릴 '평화의 집'은 정부가 남북관계 개선을 예상하며 1989년 12월 19일 준공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은 중앙일보에 "처음 평화의 집이 지어졌을 때만 해도 그곳에서 회담을 몇 번이나 하게 될까 의문이었는데 정상회담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북한은 한국의 '평화의 집'에 대응해 1992년 '통일각'을 지었다. 이곳에 남북 연락사무소를 뒀고, 최근 열린 남북정상회담 실무회담이 통일각에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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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89년 임수경, 문규현 신부 불법 방북 후 귀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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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94년 지미카터 전 미국 대통령 방북

1980년대에서 1990년대 판문점에서 있었던 주요 사건으로는 임수경 학생·문규현 신부 판문점 귀환(1989년 8월 15일), 지미 카터 미국 전 대통령 판문점 경유 방북·귀환(1994년 6월 15일~6월 18일), 정주영 전 현대 회장의 소 1001마리 인솔 방북(1998년 6월 16일·1998년 10월 27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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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1998년 현대 정주영 명예회장, 소떼 방북

2005년 7월 20일 평화의 집에서 열렸던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는 돌발 상황이 발생했다. 줄다리기 협상 중 북측 대표가 쓰러진 것. 북한 수석대표였던 유영철 인민무력부 대좌가 갑자기 "억" 소리를 내며 쓰러졌고 유영철은 구급차에 실려 북측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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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제26차 남북군사실무회담(평화의집) 중 북한 유영철 단장(대좌)이 회담 중 쓰러져 들것에 실려 북측으로 이송되고 있다

판문점이 가장 최근 언론의 주목을 받은 사건은 지난해 11월 13일 북한 병사 오청성의 귀순이다. 그는 판문점을 넘어 귀순하다 북한 육군 병력의 총격을 받아 피를 흘려 쓰러진 채 한국 측에 구조됐다.

그는 귀순 당시 지프를 몰고 '72시간 다리'를 건넜다. 북한은 이 사건 이후 '72시간 다리'에 통문을 설치했다. 1976년 북측에 조성된 이 다리는 북한이 사흘만에 세웠다고 해서 '72시간의 다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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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2012년 북측 판문각 보수 공사중 한국 쪽을 바라보는 앳된 모습의 북한 근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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