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비핵화는 얼마나 쉬울까?

김정은 조선로동당 위원장 Image copyright STR/AFP/Getty Images

'판문점 선언'을 통해 남과 북은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없는 한반도를 실현한다는 공동의 목표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비핵화 문제는 남북정상회담 이후로 예정된 5월의 한미정상회담과 사상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에서도 주요 의제로 다뤄질 예정이다.

전례없이 파격적인 '완전한 비핵화' 합의. 그러나 비핵화는 그 시작보다 마무리가 더욱 길고 어렵다.

향후 한반도 정세를 좌지우지할 사안

비핵화에 대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입장은 확고하다. 자신의 임기 내에 북한을 완전히 비핵화시킬 것이라고 트위터를 비롯한 각종 채널을 통해 꾸준히 공언해왔다.

불과 몇개월 전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과 '말폭탄' 싸움을 벌여왔던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지난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기점으로 분위기를 180도 전환했다.

일련의 고위급 회담과 서울과 평양에서 차례로 열린 남북 합동공연으로 조성된 분위기가 위장이 아님을 보여주려는 듯 지난 20일에는 모든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을 즉각 중단한다고 발표하기까지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북한이 비핵화에 합의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는 듯하지만 북한이 핵실험 중단의 근거로 제시한 것이 '국가 핵무력 완성'이라는 사실을 볼 때 아직 트럼프의 견해에 동의하기엔 이르다.

문재인 한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은 판문점 평화의집에서 만나 완전한 비핵화를 하겠다고 합의했다. 그렇다면 비핵화는 실제로 이루어지기 위해선 어떤 과정이 필요할까?

'폭파'는 볼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에게 북한 비핵화의 이미지로 각인돼 있는 것은 2008년 영변에 있는 핵시설의 냉각탑 폭파 장면. 2007년 6자회담 합의에서 약속한 '영변 핵시설 불능화'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보여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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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캡션 북한은 2008년 6월 27일 영변 핵시설의 냉각탑을 공개적으로 폭파했다

냉각탑의 폭파는 볼거리는 제공하지만 진정한 비핵화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볼 때 상징적인 의미 이상을 부여하기가 어렵다.

비핵화의 핵심은 이런 볼거리보다는 그 이후의 '검증' 작업에 있기 때문이다.

비핵화의 본질은 '검증'에 있다

단순히 핵을 북한에서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비핵화'는 쉽게 들린다. 북한이 이미 생산하여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를 북한 바깥으로 내보내면 된다. 그리고 더는 핵무기를 생산하지 못하게 관련 핵시설을 폐기하거나 평화적 용도(전력 발전 및 의료용 등)로 전용할 수 있도록 감독하면 된다.

이런 행동 자체는 그리 어려운 게 아니다. 북한이 비핵화를 시도하는 최초의 나라도 아니다. 이미 우크라이나부터 남아공, 리비아 등 비핵화의 사례가 많이 남아있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관련 노하우를 잘 축적해놓았다.

문제는 이를 어떻게 확인하느냐다. 만약 핵무기 일부를 어딘가에 숨겨놓는다면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보다 정확하게는, 어떻게 북한이 지금 내놓은 핵물질이 이들이 가진 전부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여기서부터 '검증'의 문제가 발생한다. 비핵화의 검증 과정은 냉각탑 폭파와 같은 스펙터클보다는 길고 지루한 회계감사에 더 가깝다. 북한이 내놓은 핵물질이 그들이 가진 전부인지 검증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핵물질 '장부'의 차변과 대변을 다 점검해야 하기 때문.

리비아의 경우에는 우라늄을 모두 수입했고 수입량에 대한 자료를 확인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검증이 쉬웠다.

그러나 북한은 자체적으로 우라늄을 생산하고 있기 때문에 검증 작업이 더 복잡할 수 있다. 만일 우라늄 생산량과 실제 투입량에 대한 자료가 소실됐다면 어떻게 이를 검증할 것인가?

과거에 검증 방법에 대한 합의는 어떻게 결렬됐나

게다가 북한은 과거에 검증 방법에 대해서 매우 완고한 입장을 보인 바 있다. 북한이 영변의 냉각탑을 폭파한 이후의 진행 상황을 복기해보자.

당시 6자회담은 영변의 냉각탑을 무너뜨릴 수는 있었지만 그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북한은 비핵화 검증 방법에 대해 전문가들의 현장 방문과 핵시설 관련 문건 확인, 그리고 기술자들의 인터뷰만 가능하다고 하면서 핵물질 샘플 채취는 거부했다.

결국 검증 방법에 대한 합의는 결렬됐고 협상 중에 한국과 미국의 정권이 교체되면서 회담은 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북한은 오래지 않아 영변의 핵시설을 재가동할 수 있었다. 2010년에는 핵 전문가 지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영변에 초대해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여주기까지 했다.

비핵화 합의는 끝이 아닌 시작

한반도를 수십 년 넘게 괴롭혀 온 비핵화 문제가 마침내 세 번째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해결의 실마리를 보게 됐다.

그러나 비핵화의 길은 몇개의 핵시설이 해체되는 스펙터클이 아닌 길고 지리한 회계감사와도 같을 것이다. 그 길을 내닿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그 길의 끝을 보는 것 또한 그 못지 않게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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