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폭로 자체보단 피해자 보호 절실'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열린 시위 참가자가 #미투 손팻말을 들고 있다 Image copyright JUNG YEON-JE
이미지 캡션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열린 시위 참가자가 #미투 손팻말을 들고 있다

미투 운동의 열기로 한국 사회에서도 성폭력에 대한 의식은 고양된 듯하지만 세심한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단 목소리는 여전하다.

대학생 A씨는 자신의 학과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한 후 이를 교내에 설치된 기구를 통해 신고했으나 오히려 신고 처리 과정에서 2차 가해의 가능성에 노출될 뻔했다.

A씨는 BBC 코리아에 자신이 겪은 일을 털어놓았다.

용기를 내 신고하기까지 2년

대학생 A씨는 2015년 자신의 학과 교수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한다. (추행의 세부적인 내용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다루지 않는다.)

A씨가 마침내 용기를 내 신고를 하기까지는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신고 이후 학교 내 구성원들이 절 어떻게 평가할지에 대해 두려웠고 걱정이 컸습니다." A씨는 BBC 코리아에 말했다.

가해자가 자신의 전공 학과 교수라는 사실도 컸다. 현재 A씨는 학업을 마친 상태다.

2017년 말부터 시작된 미투 운동은 A씨에게도 용기를 줬다.

"제가 공론화를 하기 바로 직전에 (A씨의 가해자와는 다른) 모 교수의 성추행 사건이 #성신여대미투 라는 해쉬태그로 공론화되며 문제의 심각성이 야기되었었습니다." A씨는 말했다.

"저는 몇개월 전부터 준비를 하고 있었고 언제 공론화를 해야 할지 고민 중이었습니다. 그러다 지금이 때인 것 같아 용기를 내게 되었습니다."

A씨는 학교 내에 설치돼 있는 기구를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자 했다.

A씨가 재학 중인 성신여자대학교는 교내에 성윤리위원회를 두고 있다. 학교 측에 따르면 성윤리위원회는 현직 교수들로 구성된 기구이며 처벌 권한까지 갖고 있다 한다. A씨는 성윤리위원회를 통해 자신의 사례를 신고했다.

'삼자대면'

학교 소속의 상담사는 A씨에게 신고 이후의 사안 처리 절차에 대해 설명했는데 A씨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가해자와 대질을 한다는 것이었다.

가해자가 전공 학과 교수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경우 자신의 학교 생활은 물론이고 졸업 이후의 진로 선택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걱정으로 2년이 넘는 시간동안 전전긍긍해왔던 A씨로서는 수용할 수 없는 절차였다.

"신고를 했으니 내가 짊어져야 하는 첫 번째 십자가인 것 같아 비참했습니다."

"내가 가해 교수의 얼굴을 볼 수 있을까? 가해 교수는 나에게 뭐라고 할까? 나는 그 자리에서 담담하게 내 의사를 표현할 수 있을까? 마음이 약해져 울지는 않을까? 내가 약자라는 것을 나 스스로 들통내지는 않을까? 걱정이 들었습니다."

그는 대질에 대해 항의했으나 절차가 그렇다는 답변만 들었다고 한다. 신고를 한 이튿날 위원회 소속의 교수로부터 대질은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A씨는 위원회의 조사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이에 대한 학교측의 주장은 A씨의 주장과 상충된다. 학교측은 당초 상담사가 A씨에게 "비밀보호, 피해자 보호 원칙을 준수함을 알리며 신고사건 처리과정을 설명"했으며 '삼자대면'을 말한 적이 없다고 한다.

A씨와 학교측 모두 당시 통화 내용을 입증할 녹음 자료를 제시하지는 못했다.

성폭력 가해자와 피해자의 대질조사는 '2차 가해'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한국 경찰은 성폭력 사건에 대한 규칙에서 "대질신문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실시하되, 시기·장소 및 방법에 관하여 피해자의 의사를 최대한 존중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한 여성 단체 활동가는 '삼자대면' 조사가 반드시 문제가 되지는 않으나 당국의 세심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만약에 피해자가 가해자를 대면해서 진실을 밝힐 용의가 있다고 한다면 이 절차 자체가 문제가 되진 않을 것입니다."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는 김현지 씨는 BBC 코리아에 말했다.

"하지만 현재 피해자가 놓여있는 상황에서는… 분명히 다른 방법들을 모색해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신고인 서약서

조사를 받기 위해 위원회를 찾은 이후, 위원회는 신고인에게 일정한 양식의 서약서에 서명할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서약서를 받은 A씨는 포함된 조항들의 목적이 의심스러웠다고 한다.

이미지 캡션 성신여대 측에서 성폭력 신고자에게 서명을 요구한 서약서

서약서의 처음 조항들은 분명 신고인의 보호를 위한 것들로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1조 5항은 "상담기구는 한번 조사해서 종료된 사항에 대해서는 다시 심의하지 않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서약서의 내용만으로 보자면 졸속으로 사건을 종료시키거나 새로운 증거가 나오더라도 교내에서는 더는 이를 자체적으로 처리할 수는 없는 것이다.

학교측은 재조사 자체에 대해서는 규정에 명시돼 있지는 않으나 새로운 사실 관계나 증거 사실이 나오면 재조사가 가능하다고 BBC 코리아에 말했다.

"교내 신고된 미투 사건을 조사하고 처리할 시, 충분한 사실관계가 증명될 때까지 증인이나 자료를 확보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학교측은 말했다.

위원회가 전원 성신여대의 교수로 이루어진 상황에서 동료 교수에 대한 신고 사항을 과연 객관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까?

"성윤리위원회 위원은 원칙적으로 가해 교수와 직간접 관련이 없는 중립적이며 이 분야에 전문적인 교직원들로 구성됩니다." 성신여대는 BBC 코리아에 말했다.

"또한 같은 학과 소속인이 피신고인이 될 경우, 모든 조사와 의결에서 제척됩니다."

학교측은 위원회에 학생측 위원에 관한 규정이 있어 학생대표를 위원으로 위촉하려 했으나 현재 학교 총학생회가 구성이 안돼 위촉을 할 수 없었다면서 위원회 내 학생위원 구성이나 외부위원 위촉 등에 관한 규정을 개선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신고인의 의무에 관한 규정인 2조 2항은 "사건 내용 및 관련 인물의 개인신상에 대하여 비밀을 유지하여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하지만 사법기관에 대해서도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지, 언제까지 비밀을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부연은 없다.

"(서약서를 보고 나니) 이게 지금 신고인을 보호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학교랑 가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더라고요." A씨는 BBC 코리아에 말했다.

그러나 A씨는 의심스러운 조항에 대해 적극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기가 어려웠다고 말한다.

"하나 하나 예민하게 굴면 제게 불리하게 조사가 이뤄질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성민우회의 김현지 활동가는 이러한 서약서 요구가 피해자의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런 서약서에 동의할 경우)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식 처벌이 결정되는 등의 상황이 나오게 되면 피해자로서는 이 절차에 대해 '미투'와 같은 공론화의 방식이라든지, 문제 제기를 다시 할 수 있는 방법이 사라져 버리는 게 되죠." 김씨는 말했다.

학교측은 서약서의 내용이 "명예훼손이나 무고죄로부터 신고인을 보호하기 위한 선언적인 조항"이라고 말한다.

"서약서의 내용은 신고인에 대한 강제사항이 아닙니다." 성신여대측은 말했다. "불필요한 송사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입니다."

다만 학교측은 '서약서'라는 단어 사용이 신고인에게 강제사항으로 느껴질 경우 표현을 바꿀 용의가 있다고 밝혔다.

폭로 이후의 '피해자 보호 절실'

A씨는 폭로 그 자체보다 피해자의 보호에 집중하는 연대 단체의 활동이 절실하다고 말한다.

"미투 운동이 거세지면서 급히 만들어진 학생 자치단체는 시행착오 속에서, 몇가지 사건에 단기적인 목표를 두고 움직였던 조직이었습니다."

"단체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생들과 피해 학생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범위를 법 관계자에게 설명 듣고 (법적으로) 안전한 범위 안에서 목적에 맞는 운동을 펼칠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씨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된 데에는 지난 3월 같은 학교의 다른 교수가 자신을 고발하는 내용의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A씨는 한국에서는 사실을 적시해도 명예훼손으로 처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는 보다 '안전한 범위'에서 피해 구제를 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고민하게 됐다고 말했다.

그는 학생들이 법적 자문을 구하기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면서 학교가 피해 학생에 대한 법적 자문을 제공한다면 피해자에게도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한다.

"학교 차원에서 이에 대한 지원을 해주었다면 어땠을지 생각해봤어요. 너무 이상적이었나요?"

본 기사는 5월 4일 처음 발행되었습니다.

BBC 코리아는 취재 과정 중 4월 16일 성신여대 측에 질의서를 보냈으며 , 기사가 발행된 후 답변서를 받아 이를 반영하여 기사를 수정했습니다. '삼자대면' 논란과 서약서 내용에 대한 학교측의 입장을 추가하였으며 이에 따라 기사의 헤드라인을 수정했습니다. (2018년 5월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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